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순 Jun 14. 2020

[어드밴스드_07]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굴러가 어쨌든


석굴암 말고 길을 자세히 보여달란 말이다...






"경로를 이탈하여 재탐색합니다.”



나는 대체 어디까지, 언제까지 경로를 이탈할 셈인 걸까...






걸어 다닐 땐 스마트폰 지도를 보고 골목골목 잘만 찾아다니는 나인데, 내비게이션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일반 도로로 빠져나오는 게 가장 어렵다. 그래서 주로 끝차선으로 달린다. 여차하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데 이 운전법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목적 지점도 아닌데 자꾸 어디론가 빠져버리는 불상사가 수도없이 발생한다는 거다. 그 덕분에 전에는 이름만 들어봤던 수도권의 여러 도시 구경은 실컷 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유독 적응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미터법’에 익숙치 않은 탓이다. 1km 앞에서 좌회전이나 200m 앞에서 우회전이라니. 도대체 200m가 어느 정도 되는 거리인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만들었다. 먼저, 고속도로 기준으로 목표지점 200m 전이라는 안내가 나오면 마음의 준비(?)를 한다. 차선 변경의 마지노선은 100m 무렵이다.  초보운전 동지들께서는 마음 속 깊이 이 '100m 룰'을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 지점을 지나쳐버리면 위험하게 급히 차선 변경을 해야하거나 끝내 경로를 이탈할 가능성이 큽니다.


약간의 꼼수도 있다. 어떤 차선에 차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그 뒤에 줄을 서는 거다. 100%는 아니지만, 남들 다 가는 그 길이 나도 가야할 길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면? 그냥 빠져나오면 된다. 그건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기는 어렵다. 각자의 운전 상황과 도로 상황에 맞춰 한번 활용해 보기를 추천한다.


툭하면 경로를 이탈하는 건 어디까지나 나의 미천한 운전실력 탓이지만, 솔직히 내비게이션의 유저 인터페이스에 아쉬운 점도 있다. 초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지도 디자인이나 안내 멘트를 분명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비게이션에 따라 운전의 질이 달라지는 것을 체험한 적도 있는데, 네이버에서 개발한 내비게이션기기 '어웨이'를 써봤을 때다. 공유차를 타면 그때 그때 이용하는 차가 다르다보니 새로운 옵션을 체험할 기회가 많다. 우연히 어웨이가 장착된 차를 타게 됐는데, 고속도로에서 빠져야할 때 등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그래픽도 보기 편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앞으로 보기 편한, 쉬운 내비게이션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아스라다


어릴 때 한참 빠져있던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라는 만화가 있었다. 카레이서의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에는 인공지능(AI) 시스템 ‘아스라다’가 등장한다. 마치 눈알(?)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모의 아스라다는 드라이버의 요구에 따라 차를 움직여주고 거리나 속도 계산은 물론 확률 계산, 심지어 농담까지 가능한 친구다. 만화가 방영된 지 어언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아스라다 같은 시스템은 상용화되지 못했다. 아스라다를 능가하는 AI 자동차가 일상화하면 운전은 어떻게 변할까? (자율주행은 차치하고) 좀 돌아가더라도 초보자가 운전하기 좋은 편한 길, 복잡하지만 훨씬 빠른 길,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1시간 코스 등을 그때 그때 추천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시대가 올때까지는 일단 지금처럼 운전을 하는 수 밖엔 없다.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도록 끝차선을 고수하면서, 200m 전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대세에 묻어가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길은 다 통하게 돼 있다는 마법의 주문을 외면서.

이전 23화 [어드밴스드_06] 비 오면 원래 차선이 안보이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