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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은 소설가 May 08. 2024

[벚꽃 신호등 - 2화]

단편소설

*


    아버지가 또 이상한 약을 몇 개나 여러 개 드시고 하루 종일 깨질 못하신다. 이걸 어쩌냐? 어머니와 통화에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싶었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거처럼 아버지도 그렇게 발전하셨나 생각했다. 할아버지 이야기는 어머니께 전해 듣기만 했다. 건망증이 심해지는 걸 그러려니 여겼었다고. 그때는 그게 다 나이 들어서 그러는 거라고 받아들였다. 옆집 봉수네도 작은할아버지도 앞집 원석이 네 할머니도 그러셨으니 그렇게 된다고 다들 확신했다. 아버지도 젊었을 적 당신 나이 들고 그리되면 어디 공기 좋은 요양원에 데려다 놓고 일 년에 한 번씩만 생각나면 오라 한 적 있다. 깜빡하면 다음 해에 와도 좋다고 했다. 그때 되면 본인 기억 못 할 걸 아는데 주말마다 오지 말라 당부했다. 서운해할 거 없고, 그리되면 내 말 허투루 흘리라고 말했다. 오늘 이렇게 될 것도 아버지가 진작 알고 있었다. 무얼 한다고 어찌 달리할 방도가 없으니 오늘내일 맛있는 거 드시면서 벚나무에 꽃 피는 거 기다리며 보내셨다. 추운 겨울이 지날 무렵 밤이 되면 푸릇푸릇 새싹 돋아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벌레 소리 속에 감춰진 푸른 닢 자라는 소리가 도서관에서 소곤소곤하는 친구 목소리처럼 난다고 하셨다. 가방 뒷주머니에는 박경리의 시 「산다는 것」을 찢어 넣고 다니며 읊었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상인들은 이제 채비를 다 하고 상품도 볼품 있게 진열했다. 소리가 나는 장난감들은 하나둘 배터리가 끼워져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벚나무가 자라는 소리 말고 고요했던 마을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섞이고 있다. 꽃봉오리가 아직 새끼손톱만 한 데 목 좋은 자리를 뺏길까 벚꽃 신호등이 켜지기도 전에 장사판을 쳤다. 그러니 이른 아침 마을 길목을 지나가는 손님 없이 한산하게 담뱃불 붙이고 있는 주인이 대부분이다. 매년 찾아오던 솜사탕집 쌍둥이네 아줌마는 바로 옆에 들어선 탕후루 가게 아가씨가 맘에 들지 않는 눈치다. 새벽녘이 지자마자 미니 용달차를 주차해 놓고 가버리니 수 일전부터 봐뒀던 길목 초입을 뺏겨버렸다. 그것도 그런 것이 행사장을 옮겨 다닐 때마다 어떻게 알고 꼭 쌍둥이네 옆으로만 붙어서 장사를 차리는 모양새가 경쟁이라도 하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시집도 안 간 젊은 처자가 바로 옆에 붙어 있으니 자기 모습이 더 초라해 보여 자격지심이라도 치밀어 오르는 듯했다. 목 늘어난 티셔츠에 앞치마 두르고 전동식 손수레를 펼치고 있자니 오늘만큼은 속도가 붙지 않았다.


    속사정을 알 리 없는 덕진이는 멀찌감치 보이는 가게 앞 솜사탕과 탕후루를 바라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가게 중 하나이다. 두 가게가 서로 붙어 있어 더 그러해 보였다. 아버지는 두 가게의 단골이다. 기억력 회복과 심신 안정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달달한 음식을 몇 해 전부터 드시기 시작했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면 마을 길목에 솜사탕 집 단골이 되신다. 뭐가 그리 맛있다가 천방지축 손자, 손녀들이 오면 손잡고 데려 나가 한 손에 탕후루와 한 손에 솜사탕을 움켜 쥐여 준다.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연신 내뱉으며 졸졸 따라오는 아이들은 벚꽃만 피면 시골에 가야 한다고 아우성친다. 탕후루 할아버지 네 가고 싶다는 아들도 솜사탕 할아버지 집 가야 한다는 딸도 날씨가 풀리면 새싹 돋듯 기억한다. 세 살 때부터 여덟 살이 되도록 솜사탕을 끈적끈적 묻혀가며 먹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잊겠느냐만 벚꽃 신호등에 한 번 더 번쩍 뇌리를 스친다. 너무 단 음식 드시면 몸에 안 좋다는 어머니의 말도 귓전으로 듣지 않으신다.


    깜빡깜빡 잊는 날이 늘면서 아버지는 스스로 파출소에 찾아가 주거지 등록을 하셨다. 이 년 전이었다.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 신분 확인을 위한 연락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일하다 받은 전화에 ‘대리마을 파출소입니다.’라고 하니 덜컥 놀랐다. 귀띔도 없이 찾아가셔서 등록하자니 보호자로 적은 자식한테 주소와 연락처 정보를 하나하나 다시 물어가며 확인했다. 무슨 일이냐며 어디냐고 서너 번을 대답 없이 되물었으니 경찰 담당자도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여러 번을 대답하며 설명했다. 끝내 덕진가 대답이 없자 아버지를 바꿔줘서 더 놀랐다. 전화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해 들은 아버지 증상은 심각해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겠지라며 안심하고 안심했지만 결국 무심했던 거라고 느꼈다. 한 번만 멈추고 돌아봤어도 이상함을 알아차렸을 텐데. 병원이라도 한번 가보자고 했었을 텐데. 어머니랑 상의라도 해 봤을 텐데. 전화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했다.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만 귓가에 들렸다. 뭐가 바빴을까. 아버지 한 번 돌봐보지 못할 만큼 본인을 몰아쳤던 시간이 전화기 앞에 멈췄다. 도심 속 사무실 차장 너머로는 또 다른 빌딩 사무실 유리만이 반사되어 보였다. 비둘기조차 날아오르지 못하는 빌딩 속 사무실은 구름마저 없다면 어디 한 군데 눈 쉴 공간 없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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