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된 사람

미웠던 교육생이 내게 준 선물

by 썬파워이쌤

01. 마음에 걸리는 교육생

교육 내내 마음에 걸리는 교육생이 있었다.

말이 곱지 않았다. 항상 미간을 찌푸리고, 얼굴엔 불만이 가득했다. 고집이 세서 웬만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분이었다.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조금 강하게 말했다.

"떨어지는 게 자존심 상하는 게 아니에요. 도망가는 게 자존심 상하는 거 아닌가요?"

감정적으로 미운 게 아니었다. 그 행동이 미웠다. 그 차이를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웬만하면 나는 사람 꼴을 본다.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고, 꼴을 보는 것. 그게 내 장점이라고 스스로 믿어왔다. 교육기간 내내 거슬리고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기다렸다.

02. 자아가 강한 사람

3차 시험을 다시 설득하고, 함께 공부를 하면서 한마디 건넸다.

"님은 자아가 강하세요. 듣기 좋은 말로는 자아가 강하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고집이 세고 본인만의 생각이 강해서 잘 안 받아들이세요."

순간,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공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이 다 보인다. 특히 어른들의 수업은 더 그렇다. 살아온 세월만큼 각자의 고집이 있으니까. 그분은 유난히 셌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다. 하지만 나는 강사니까. 내 교육장 안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바뀌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말을 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다음 날, 혼자 버스를 타고 전주로 시험을 보러 다녀오셨다.

03. 10명 중 혼자 떨어진 사람을 기다리며

10명 중 혼자 떨어졌다. 오죽했으랴. 그 마음을 이제는 달래주고 싶었다. 시험 끝나고 돌아오는 그분을 기다렸다. 늦은 점심으로 둘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조금은 가지 않았던 곳으로 모시고 싶었다. 근사하고 조금은 비싼 샌드위치 가게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교육 시간에 내 이야기를 많이 한다.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수업 내용에 녹여서 교육생들한테 오픈하고 던진다. 그분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준 강사가 대단하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그 말이 물꼬가 되었다. 그분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04. 강사 12년, 입만 살아버린 나

삼성생명에서 지원 업무를 할 때는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일이 됐으니 말이 많지 않았다. 목소리가 크다는 말은 들었어도, 말이 많다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런데 강사 12년. 어느새 입만 살아서 말이 많아지고, 말투는 더 세졌다.

한박자 쉬고 이야기해라. 한 톤 낮춰라. 액션을 줄여라. 말투 하나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늘 듣던 조언이었다. 의식하다 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교육생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타인에게 나의 모습이 이렇게 비쳐지는 게 아닐까?

이거였구나. 아, 이거였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고쳐야지 마음을 먹고,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다.

"님을 통해 나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액션이 크시죠? 저도 그런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나도 목소리가 크지만, 님도 정말 크세요."

우린 서로를 인정했다. 마음을 더 열었다. 강주은 씨 이야기도 했다. 노력 끝에 바뀌었다는 이야기. 우리도 노력하자고, 서로 다짐했다.

05. 말랭이 마을 골목, 전통찻집에서

식사가 끝나고도 아쉬워서, 손을 잡고 군산 말랭이 마을로 향했다. 골목골목을 함께 탐방하고, 내가 좋아하는 전통찻집으로 들어섰다. 찻집에 들어서는 순간 "너무 좋다"며 말을 쏟아내는 그분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모습에서 나를 봤다. 어쩌면 마음이 외로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도 그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더 씩씩하게, 더 강하게 이야기했던 시간들이 있었으니까.

06. 작은 상자 속에 갇혔던 나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고 사방팔방 헤매이던 시간들. 타인의 시선에 갇혀있던 나를 회수하고, 내 내면에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고요와 고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너무 좋아한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나를 좋아하고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외로움을 두려워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들 조군이 고등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면서, 조군이 성년이 되어 나를 떠나면 뭘 하지, 누구와 놀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끝이 없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작은 상자 속에 나를 가둬놓고 열쇠를 잠근 채 지하 깊은 곳으로 던져놓았다. 삶의 의미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서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만 하다가, 아들이 성년이 되는 생일날 스스로 내 정신에게 한 대 때리고 일어났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었다.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매일 나와 싸우면서, 내 안에 정답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매일매일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어제보다는 오늘 더 좋은 날로.

그런데 하나, 바뀌지 않는 게 있었다. 말투와 톤. 말 많이 하는 것. 내면은 이미 고요해졌는데, 겉에 드러나는 그 마지막 껍데기가 아직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내 내면을 볼 수 없으니까. 그건 나만 아는 거니까.

07. 오늘부터, 한 발짝

그날 저녁, 합격 소식이 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한 하루였다.

그 교육생이 내게 준 것은 합격 소식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거울이 되어준 것. 나를 마주하게 해준 것.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하는구나, 라는 깨달음을 준 것. 그걸 깨닫게 해준 그분에게 너무 감사하다.

지금부터다. 천천히 말하고, 한 톤 내리고, 강의할 때도 손동작 액션도 작게작게. 말을 이쁘게 하는 나를 상상하며, 오늘부터 한 발짝 나아가려 한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오늘의 이 한 방울이 언젠가 반드시 돌을 뚫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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