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삶'이 시작되다

간병 새내기의 고군분투기

by 비니
노인 인구는 앞으로도 급속도로 증가해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65세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그 사이 노-노 간병 외에도 장애를 지녔거나 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들은 간병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p.213)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독박 간병이 시작된 2월 17일부터 지금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다. 끝이 안 보이는 간병 생활 속에서 내 일상은 점점 무너져 가고 그럴 때마다 원망과 분노가 나를 집어삼켰다.


사실 간병은 나한테만 일어난 특수 상황이 아니라 살면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간병을 해야 할 수도, 간병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간병이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인 것처럼 여기며 살았던 것이다.

간병을 전담하면서 알게 되었다. 간병이 육아 못지않게 힘들다는 것과 그동안 엄마가 동생을 돌보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를 말이다.

내가 간병해야 할 가족은 지난 2월에 택시에서 내리다 넘어져서 고관절을 다치신 엄마와 지적 장애 1급인 막내 동생이다. 엄마는 아직 걷지 못하시기 때문에 요양 병원에 계시고, 엄마가 돌봤던 동생을 내가 혼자 돌보고 있다. 엄마는 수술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외래 진료를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모시고 가야 한다.


독박 간병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가면서 몸에 무리가 왔는지 일주일 전부터 왼쪽 손이 저리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니까 더 우울해졌고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은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정신없이 자다가 깜짝 놀라서 일어나 동생에게 약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면서 우울함과 막막함이 밀려왔다. 으슬으슬 춥고 소금에 푹 절인 배추처럼 몸이 무거워 이러다가는 아무래도 쓰러질 것 같아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병 외출을 달고 근처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고 수액을 맞았다.


비싼 수액을 맞은 데다가 날씨도 화창하고 내일은 석가 탄신일이라 쉰다는 즐거움이 겹쳐서인지 오후에는 왠지 흥이 나고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짧은 간병 생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지금 나는 '월화수목금월월, 퇴근이 없고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언니, 지금 많이 힘들겠지만 힘내. 건강 잘 챙기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말이야"


얼마 전 중국에 파견 근무를 나간 동생과 위쳇으로 통화했을 때다. 동생은 자신이 출국하기 3주 전에 고관절을 다친 엄마와 지적 장애를 가진 막내 동생 돌보는 일을 도맡아 하게 된 나를 걱정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간병 생활에 지쳐서 내 몸 챙길 여유도 없어졌고 대충 먹고 지내고 있다.


전에는 퇴근한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뿌듯함이 있었는데 지금은 몸과 마음이 지쳐서 다 귀찮아졌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독박 육아로 힘든 후배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권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너무 힘들면 독서와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브런치에 '슬기로운 간병 생활'이라는 매거진을 만들고 글쓰기를 시도했는데 그때마다 신세 한탄과 넋두리, 원망이 담긴 문장을 잔뜩 나열하고 있는 내가 싫어졌다.


러다가는 영영 글쓰기와 멀어진 삶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래서 원망과 넋두리가 담긴 글일지라도 일단 쓰기로 마음먹었다. 간병에 얽힌 내 일상을 쓰다 보면 자꾸 약해지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