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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걸까?

by 비니

귀갓길에 단골 반찬 가게에 들러 반찬 몇 가지를 고른 후 판매대에 올려놓았다.


“만원입니다. 포인트 뒷 번호 어떻게 되시죠?”

핸드폰 뒷자리를 말했더니 이름을 물어본다. 항상 반찬을 구입할 때마다 이름을 물어보길래 정확하게 처리하려고 확인하나 보다 하며 무심히 넘어갔다.

“번호를 조회하면 여러 사람이 뜨기 때문에 저희가 매번 이름을 물어보게 돼요. 그런데 손님이 몰릴 때면 같은 말을 계속 해야 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맞아요. 같은 말 여러 번 반복하면 피곤하죠. 계산대 앞에 문구를 붙여 놓으시면 어떨까요?”

“벽에 붙여져 있는데도 손님들이 안 보세요.”

그 말에 판매대 벽을 보니 ‘포인트 번호를 말할 때 성명도 같이 말해 주세요.”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앗! 그러네요. 저도 오늘 처음 봤어요. 벽보다는 눈에 잘 뜨이게 계산대 앞 쪽에 붙여 두시면 어떨까요?”

“그래도 잘 안 보세요.”

“그렇긴 하죠.”

사장님의 대답에 동의했지만 그래도 앞쪽에 붙여 놓으면 좀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봉투 필요하신 가요?”

“아뇨.”

내 대답에 사장님은 손님들한테 이름 물어보고 그다음에는 봉투 필요하냐는 말까지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해야 해서 너무 힘들고 지친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포인트. 번호와 이름, 그리고 봉투 구매 여부까지 말해달라는 거다.


전에 인터넷에서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주문받을 때마다 메뉴와 사이즈 물어보고 다음에는 핫인지 아이스인지, 드시고 갈 건지 테이크 아웃할 건지 확인하는 멘트를 계속 반복하는 게 힘들다, 그래서 자기는 카페에 가면 주문할 때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로 주세요. 매장에서 먹고 갈 거예요.”라고 본인이 먼저 말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도 카페에 갔을 때 그렇게 말하려고 노력한다. 깜박할 때도 있긴 하지만.

단골 고객들 중에서 이해해 줄 만한 분들한테 이렇게 말씀드린다는 사장님의 얼굴이 유독 피곤해 보였다. 사장님의 고충이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이 간다. 나는 앞으로 반찬 가게에 갈 때마다 사장님이 부탁한 멘트를 잊지 않고 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내내 뭔가 찜찜했다. 왠지 잘못해서 선생님께 훈화 말씀을 들은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손님한테 피곤한 얼굴로 가게 올 때마다 해야 할 멘트를 전달하는 건 듣는 사람의 기분을 헤아리지 못해서가 아닐까.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하기 어렵다. 나도 사장님과 같은 경험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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