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에서 처방 받은 약을 먹어서이지 잠도 늦게까지 자고 감정도 무뎌진 듯 하다. 딸이 떠난 지 이제 겨우 3주 지났는데 이렇게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 맞는 걸까.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해 약의 도움을 받는 엄마라니. 게다가 딸이 남기고 간 과자를 맛있다고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징그럽게 느껴진다.
딸은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도 못 먹고 좋아하는 옷도 못 입고 가보고 싶었던 곳도 못 가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모임도 못 가지고 차가운 땅에 누워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따뜻한 집에서 먹고 자며 편히 지내고 있다.
이렇게 사는 자신이 꼴보기 싫지만 약 안 먹고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한 상태는 더 못 견디겠다. 인간의 나약함에 치가 떨리고 환멸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