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니 Feb 12. 2023

똥손 엄마와 금손 딸

  <캐나다 체크인> 5회에서 가수 이효리가 웨이크 서핑 강습을 받는 장면을 봤다. 첫 강습인데도 운동 신경이 좋아서인지 비교적 잘 타는 걸 보며 감탄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과 움직이며 하는 놀이나 체육 시간이 싫었다. 운동 신경이 하나도 없어서인지 뭘 하더라도 너무 못해서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똥손이라 만들기도 꽝이다. 요리에도 관심이 전혀 없다. TV 예능에서 연예인들이 음식을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건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요리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한다. 나에게 음식 만들기는 세상 귀찮은 일이다.  

  요리도, 빵이나 쿠기 만들기도 잘했던 딸이 생각난다. 그림도 제법 잘 그리고 만들기도, 노래도, 운동도, 다른 사람 챙겨주는 것도 잘하던 딸. 게다가 단신인 내 유전자를 울려 받지 않아서 키가 167이 넘어  딸을 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자랑스러웠다.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살다 떠났기에 딸을 데려가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

   딸이 떠난 지 세 달이 되어 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슬픔의 바닷속으로 점점 가라앉고 있다. 물론 매일 그렇지는 않다. 평온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날이 이틀 정도 되면 문득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죄책감과 미안함이 밀려온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딸의 부재를 인정하기 싫어 악몽을 꾸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지만 방에 걸려 있는 딸의 영정 사진을 보다 보면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딸의 죽음 이후 다니게 된 신경과에서 처방해 준 약 중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 때 먹으라는 약은 복용 후 묘하게 기분 나쁜 두통이 생겨 웬만하면 잘 안 먹는다. 그런데 오늘은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두 번이나 먹었다. 약의 힘을 빌려 딸을 잃은 슬픔을 조금이나마 달래려는 내가 싫다.

  조금 전부터 가슴속에서 스멀거리는 이 허무한 감정의 정체는 뭘까.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차가운 바람이 드나든다.

  자신이 개발한 디저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꿈을 가지고 있던 딸. 디저트 이름까지 만들어 상표 등록 신청까지 했었는데 미처 그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떠났다.

  점점 엄마의 취향과 생각을 닮아간다고, 나중에 엄마랑 둘이서 살아도 좋겠다고 말해주던 딸. 딸과 대화도 나누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맛있는 것도 같이 먹고 싶고 뮤지컬이랑 영화도 보러 가고 싶다. 앞으로 그럴 시간이 많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나의 오만한 착각이었다.

  나는 똥손 중에서도 똥손이라 딸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내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딸 없는 세상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막막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개의 알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