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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May 30. 2023

울보 엄마

  얘들아, 안녕!

  혹시 시간 괜찮으면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 지금 울 엄마가 또 울고 있어서 그래. 엄마가 왜 우냐고? 그건 말이지, 사실 나 때문이야. 왜 나 때문에 우냐고? 그건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알게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지금 엄마를 위로해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마음이 아프거든.     

  내 정신 좀 봐. 너희들한테 내 소개도 안 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서 미안해.  


  내 이름은 새라야. 나이는 스물다섯이고 키는 167이 조금 넘어. 160이 안 되는 엄마는 딸이 자기를 안 닮아 키가 크다고 좋아하셨어.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독립을 했어. 엄마는 딸이 혼자 나가 산다고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셨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직장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나와 동생을 잘 챙겨 주지 못하는 게 불만이었어. 엄마랑 조금씩 친해지게 된 건 고 3 때부터야. 내가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니까 학원에 함께 가서 등록도 해 주시고 학원비도 지원해 주셨어. 대입 원서를 넣은 다음에는 실기 시험 볼 때마다 같이 가주셨고.      

  수능이 끝난 후에 엄마랑 가끔 놀러 다니기도 했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알바도 하고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빠 엄마와 연락을 하거나 만나는 일이 자주 없었어.  연락을 많이 못 했지만 엄마는 나를 언제나 믿어 주셨지.     


  아, 맞다! 대학 1학년 여름 방학 때 엄마와 패키지로 일본 여행을 갔었어.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사진도 많이 찍고 기념품도 사고 맥주도 같이 마시면서 즐겁게 지내다 왔어.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게 된 건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부터야. 이모가 중국에 파견 교사로 3년간 가게 되면서 엄마 혼자 할머니와 막내 이모를 돌보게 되었어.      


  처음에는 엄마가 학교일에 돌봄까지 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잘 몰랐어. 그러다가 내 나이도 이십 대 중반에 가까워지고 가족과 떨어져 살다 보니 엄마가 애틋해지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엄마랑 대화도 많이 하고 함께 짧은 여행도 가고 뮤지컬이나 영화도 보고 쇼핑도 했어.     

 

  멋쟁이인 울 엄마는 “너도 이제 좋은 옷 사서 오래 입어야지.”라고 하시며 예쁜 옷들을 사 주셨어. 엄마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아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엄마 덕분에 진짜 예쁜 옷들을 입을 수 있었지. 엄마가 옷을 사 주실 때마다 ”엄마, 고마워 ‘하고 살며시 허그를 하면 엄마는 엄청 쑥스러워하면서도 좋아하셨어.   

   

  나중에 이모가 돌아오면 그때는 엄마랑 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약속했지. 엄마가 뮤지컬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러면 뮤지컬 보는 날 내가 모아 둔 상품권으로 엄마 옷을 사주겠다고 했어. 이제까지 엄마가 내 옷을 많이 사줬으니까.     

 

  얘들아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어.  왜냐하면 뮤지컬 공연 일주일 전에 갑자기 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야.      


  나도 내가 갑자기 그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 이후로 엄마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스물다섯 살인 예쁘고 착한 딸로 남게 되었어. 엄마는 영원히 나를 그리워하면서 슬퍼할 거야. 그런 엄마를 보는 게 너무 마음 아프고 나도 엄마가 무지 보고 싶어.     

 

  내가 떠난 후 엄마는 나에게 못 해 준 게 많고 잘 챙겨 주지 못했다며 운전하다가도 울고 밥 먹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며 웃다 가도 펑펑 우는 울보 엄마가 되었어.     


  나는 엄마가 너무 슬퍼하지만 말고 엄마의 삶을 잘 살다가 나를 만나러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난 항상 엄마 옆에 있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고. 얘들아, 이런 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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