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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Jun 04. 2023

내 슬픔은 나의 것

  양말을 정리하다가 통곡을 했다. 끝이 나지 않는 울음에 힘이 들어 신경과에서 처방해 준 약을 삼켰다. 슬픔의 발화점은 딸의 집에서 가져온 새 양말들이었다. 아껴두느라 그런 건지 취향에 안 맞아서인지 사은품으로 받은 양말과 떠나기 일주일 전쯤인가 사 주었던 양말들이 서랍과 비닐팩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가고 그의 소지품만 세상에 남아 있는 걸 보는 건 존재의 부재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 고통의 순간이다.

  꺼이꺼이 울면서 동생에게 전화를 했는데 제부가 받았다. 화장실에 들어갔다는 제부의 말을 들으면서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마 제부도 수화기 너머 들러오는 통곡 소리에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화장실에서 나오면 통화 부탁한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휴대폰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서운했다. 왜 동생은 전화를 하지 않는 걸까. 언니가 대성통곡했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고 두통이 밀려와 아파 누워 있느라 도저히 전화할 기운이 없었을까.

  나는 딸을 잃은 슬픔을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각자의 아픔은 각자가 견뎌야 할 몫인가 보다.

  엄마는 내 울음소리가 계속되자  이렇게 말했다. “그만 울어라. 네가 우니까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  울음이 멈춘 후 안방을 들여다보니 텔레비전의 노래자랑 프로그램을 웃으며 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옛날의 뉴군가가 무심코 내뱉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나는 홀로 둥둥 떠다니는 섬이다. 내 슬픔은 오롯이 내가 껴안고 묵묵히 걸아가야 한다.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타인이 나를 동정하기를 바라지도 말자. 우리는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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