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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Jun 18. 2023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반찬 가게에서 생긴 일

   어제 집 근처에 있는 반찬 가게에 들러 엄마가 드실 반찬들과 내가 먹을 소시지 부침을 구매했다. 그중에 열무김치를 먹어 보니 유통 기한은 7월 13일까지로 되어 있는데 너무 시어 있었다. 당장 반찬 가게로 갈 기운은 없어서 내일 가봐야지 하고 잠이 들었다.

   일요일은 오늘은 아침부터 일어날 기운이 없어 계속 누워 있다가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없는 에너지까지 끌어 모아 밖으로 나왔다.  반찬 가게에 들고 갈 열무김치와 쓰레기 분리장에 갖다 버릴 박스를 잔뜩 챙겨 들고서.

   반찬 가게에 가서 “어제 구입한 열무김치가 너무 시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갖고 왔어요.”라고 하니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여자분의 말. “이거 이미 드신 것 가져오셨네요.”

   황당했다. 먹어 보지도 않고 않고 짠지, 신지, 상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안 먹어 보면 너무 시었다는 걸 어떻게 아나요?”

  “제가 일요일에만 근무해서 이럴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놓고 가시고 내일 다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

  “사장님한테는 오늘 전혀 연락이 안 되는 건가요?”

  ”네. “

  “제가 이거 놓고 갔다는 거를 증명할 수 있는 종이라도 받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님 제 이름을 남기고 갈까요?”

   내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열무김치 사진을 찍더니 휴대폰으로 “지점장님, 손님이 열무김치가 너무 시어서 못 먹겠다고 가져왔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니, 좀 전에는 연락이 안 된다, 자기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더니 그분의 행동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환불해 드릴까요, 아님 다른 반찬으로 가져가실래요?”

  “제가 지금 다른 데를 가야 해서 반찬을 들고 갈 수 없으니 환불해 주세요.”

  영수증을 발급받지 않아서 휴대폰에 있는 문자로 어제 반찬을 구매한 시간과 액수를 알려 주었다.

   컴퓨터로 어제 날짜 매출을 확인하는데 일하는 분은 네가 말한 액수로 결제된 게 안 보인다고 하더니 여러 차례 화면을 오르내린 끝에 겨우 찾았다.

  어제 결제한 카드로 취소를 하고 다시 결제를 했다.

  “적립도 해 주세요.”

  “적립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데요.”

  이 분은 뭐든지 일단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버릇인가 보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해 놓고 다 하기 때문이다.

  삶이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 모르거나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무조건 모른다고 할 것이 아니라 해결하기 위해 알아보고 시도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나도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갑자기 생긴 문제라도 어차피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짜증 내지 말고 차분하게 처리하자. 그게 정신 건강에도 좋은 거지.”

  그렇게 마음먹었다고 해서 완전히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달라지려고 노력할 뿐이다.

  오늘 반찬 가게에서 일하는 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이왕 할 거, 먼저 모른다는 말부터 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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