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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Jul 23. 2023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며칠 전에 동네 근처 쇼핑몰에 있는 리빙 SPA 브랜드 매장에서  속옷을 몇 벌 샀다. 집에 와서 세탁을 하려고 텍을 분리하다가 도난방지텍이 붙어있는 옷을 발견했다. 직원이 실수를 한 거다. 잘 보고 있을 걸 그랬다고 꼼꼼하지 못한 나를 자책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너무 믿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이 것 때문에 매장에 다시 가야 하다니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로 사람을 귀찮게 한다.

  일단 속옷들을 세탁기에 돌리며 ‘그래, 당장 입을 게 없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 날 때 가면 되지.’라고 마음을 추슬렀다.

  바쁜 일들이 계속 해결하느라 피곤하고 지친 데다가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리다 보니 매장에 가는 일은 자꾸 미루어졌다. 사소하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으니 스트레스가 쌓였다. “사소한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 있냐”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손을 번쩍 들고 나라고 크게 외칠 것이다.

  일요일인 오늘, 동네 카페에 가다가 중간에 위치한 문제의 그 SPA 매장에 들리기로 했다. 에코백에 책이랑 속옷을 넣고 집을 나섰다.

  매장에 갔는데 직원이 안 보여 기웃거리는 내가 “뭘 도와드릴까요?”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며칠 전에 속옷을 샀는데 그중 하나에 도난방지텍이 붙어있어서 가져왔어요.” “혹시 구매 영수증 있으세요?”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고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직원이 실수한 모양이라고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들을 줄 알았는데 영수증 있냐니.

  아무 말도 안 하면 나중에 집에서 이불 킥할 것 같아서 가방에 들어 있던 영수증을 꺼내 내밀며 말했다. “아니, 직원분이 실수해서 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매장에 들렀는데 영수증부터 보여 달라시니 당황스럽네요. 혹시 점장님이신가요?” “네. 저희 직원이 실수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본사 규정상 이렇게 처리해야 해서요. 다른 매장에서 구입하고 여기 와서 떼어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여기가 집 근처여서 구매했는데 이렇게 영수증까지 보여 드리며 확인받아야 하니 기분이 좋지는 않네요.” “그러시죠. 제가 고객님이라도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말하는 저희도 무척 조심스러워요. 정말 죄송합니다.”

  도난방지텍 하나 떼는 것도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니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참으로 다양하다.

  매장을 나서는데 집을 나설 때는 우산이 필요 없었는데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매장에서 길게 말하지 않았으면 비 안 올 때 카페에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비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릴까 하다가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 쓰고 카페로 걸어갔다. 내가 별 거 아닌 일에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 걸까. 살면서 어이없고 화날 때는 실수나 잘못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내가 피해를 입었음을 스스로 힘들게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실수나 잘못을 하며 살아왔고 그걸 다른 사람이 해결하느라 고생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부조리한 일에 당당히 맞서는 것과 매사에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타인의 실수에 ‘그럴 수도 있지’라며 관대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호구가 되기는 싫다. 어떻게 하면 넉넉하면서도 만만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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