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생각하다가
올해 들어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을 몇 차례 했다. 2023년 5월 28일 일요일, 오늘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말을 했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다면 특히나 더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고통은 두렵다. 그래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 자체, 사라진다는 것,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 않다.
아낌없이 사랑을 쏟았고, 표현했고,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기도 해 봤고, 인정 같은 것도 받아봤고, 무탈한 나날들도 있었고, 고요하고 푸르른 공원을 홀로 산책했고, 산책하며 든 생각들을 글로 썼다. 늘 나를 만족시키는 치즈피자, 구운 냉동 만두, 소금빵, 아인슈페너를 틈날 때마다 열심히 먹었다. 나와 대화하고 나를 겪어볼 기회가 있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좋게 평가하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 특히 동그랗고 납작한 형태의 음식을 많이 먹어서 만족스러웠다.
나는 고통에 강하다는 말도 최근에 했다. 고통에 강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았다. 어릴 때도 여렸고, 지금도 마음이 여리고 섬세하다. 그러나 고통에는 강해졌다. 고통에 강해지고,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나를 너무나 많이 고통받게 했고 나를 이미 죽음으로 여러 차례 몰고 갔다는 뜻이다. 몇 번이나 영혼이 죽임을 당했기에,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은 것이다.
애리얼(인어공주)이 목소리를 빼앗긴 것처럼 말을 못 했다. 주변인들의 고통과 괴롭힘에는 목소리를 냈지만, 내 고통에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았다. 말문이 턱 막힌 것처럼, 목젖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빠져나가 목소리를 빼앗겨버린 것처럼 말을 못 했고, 제대로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다. 나를 고통 속으로, 그리고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사과받지 못했다.
사과받지 못했던 그 장소들을 애증하게 되었다. 좋은 기억과 추억도 있기에 사랑하면서도, 괴롭힘의 근원지였기에 증오했다. 송파를, 천안의 특정 건물을, 여의도에서 내가 일하는 건물의 특정 장소를 나는 증오한다. 늘 이사를 가고, 어느 장소를 떠날 때마다 나는 시원하고 후련했다. 드디어 이곳을 떠나는구나. 그리고 떠나간 그곳들을 절대 자주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떠나간 그 건물에 다시 발을 디디는 것을 싫어했다. 괴롭힘을 당했고,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사과받지도 못했던 그 공간을 다시 가면 우울함에 잠기곤 했다.
사람에게 폭력과 괴롭힘을 당한 것인데, 애꿎은 장소만을 미워했다. 사람은 기억에서 죽이려 하고 장소는 싫어했다. 최근에는 그 장소를 아직 떠나지 않아 계속 봐야 하는 사람을 오브젝트로 치환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는 하나의 물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고통받았던 과거를 쓰는 것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어떤 책과 글에서는 고통을 쓰면 고통을 다시 살아가는 것이니 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니,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10대를 겨우 살아내고 나서 20대 초반의 나는 내 고통을 헛되게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와 같은 일들을 겪었고 고통받았던 어린 친구들, 학생들을 무조건 도와주고 살려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결심처럼 내 고통과 가장 가까이 갈 것이다. 우울함이 감도는 책을 읽으면 이상하게 치유된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인드를 장착해 좋은 일들을 끌어당기며 사는 사람으로 탈바꿈했어도 고통 속에 오래 있었던 사람의 우울한 정서를 치유하는 것은 비슷한 기저 정서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뿐이다. 나도 결국 그런 책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다. 브런치에 올리기 어렵겠지만 출간하는 작가가 되면 나는 그런 이야기들을 혼자 써나갈 것이고 세상에 짠하고 내보일 것이다.
사과받지도 못한 과거를 혼자 없던 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폭로할 것이다. 말을 할 줄 알지만 괴롭힘 앞에서 목소리를 빼앗긴 애리얼이 되고 마는 자폐인에게 행했던 폭력과 폭언, 집단 따돌림, 괴롭힘의 역사를 한 줄 한 줄 써서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그래야 어느 날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