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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May 30. 2023

동화와 그림 세상에 살 거야

나이가 든다는 건 나의 완벽한 세상을 구축하는 일이야

디즈니플러스를 구독했다. 무더운 여름이 오면 밖에 나가는 대신 디즈니 세상에서 살 것이다. 디즈니 영화와 마블 영화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개봉한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세세하게 기억이 잘 안나기도 하고 어른이 돼서 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니, 옛날 애니메이션과 영화부터 다시 정주행 할 것이다.


동화 같은 세상을 구축하고 동심을 유지하며 살고 싶다. 디즈니 영화와 원작 동화를 섭렵해서 사물과 동물, 식물 하나하나를 동화 속 캐릭터와 연결 지으면서 세상을 보면 재밌을 것 같다. 나는 이상하게 주전자를 엄청 좋아했다. 카페에 가서 차를 시키면 주는 주전자. 커피 애호가가 되기 전까지 주전자 때문에 카페에서 계속 차를 시키고, 예쁜 주전자에 차를 주는 카페가 있으면 가고 또 갔다. 애니메이션에는 주전자가 자주 등장한다. 미녀와 야수에서 말하는 주전자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디즈니 영화에서 사물과 동물이 말을 하는 것이 좋다. 사람이 사물과 말을 하고, 사람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자연, 동물, 사물 가운데 하나인 것이 좋다. 주토피아처럼 아예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도 좋다. 아스피들은 인형이나 자연, 사물도 마치 사람인 것처럼 의인화를 잘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 위화감이 하나도 없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만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안 보고 포켓몬스터나 디즈니 애니메이션만 봤다. 사람들끼리만 대화하고 사람이 만화체의 캐릭터가 되어 나오는 것은 안 좋아했다.


동물 캐릭터는 괜찮은데, 사람 캐릭터는 그렇게 정이 안 간다. 디즈니 영화에서도 동물들은 애니메이션 버전도 괜찮은데, 사람은 실사로 나오는 것이 좋다. 실사로 나오거나 아니면 아예 예전 디즈니 캐릭터 같아야 한다. 눈이 커지고 코가 작아지고 몸이 길쭉해진 형태로 예쁘고 멋지게 변형해 만들어낸 사람은 싫다. 사람 눈을 보는 것을 안 그래도 어려워하는데 눈이 커지고 얼굴이 뾰족해진 그런 모양새는 별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주인공인 웹툰은 보지 않는다. 동물캐릭터처럼 귀여운 애들이 좋다.


석가탄신일 대체 공휴일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앨리스 인 원더랜드) 애니메이션과 2010년 버전 팀버튼 감독의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았다. 원서를 오래전에 사두고 거의 못 읽었는데 원작도 곧 천천히 읽기 시작할 것이다. 원서로 언어유희를 읽으면 재밌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도 영어로 해놓고 영어 자막으로 봤는데 완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해서 한글 자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영어 자막으로 다시 볼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교훈이 없는 풍자 동화이다. 그래서 더 좋다. 그저 이상하고 이상한데 이상한 플롯과 언어유희를 천재적으로 잘 구성해 냈다. 그래서 아스퍼거인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어렸을 때 봤다면 다시 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세상을 반대로 보고 싶고, 기울여서 보고 싶고 우리의 기준으로 해석해 보고 싶은 아스피들의 시각과 마음을 대변한다.


아마 작가 루이스 캐럴도 아스퍼거인이었고 앨리스도 아스퍼거 캐릭터일 것이다. 게다가 실사판 영화는 아스퍼거인인 팀버튼 감독이 그의 시각을 더해 새롭게 만들어냈으니, 더 힐링 그 자체이다. 아스피가 이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알 수 있다. 영화 속 앨리스가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는 장면부터. 아스피들은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나도 어릴 때부터 꿈을 많이 꿨고, 같은 꿈을 계속 꿨고, 꿈을 연결해서 꾸기도 했고, 원하는 꿈을 소환해서 꾸는 능력도 있었으며, 꿈속에서 나만의 어떤 세상 자체를 구축했다.


먹고사니즘(먹고사는 문제에만 몰두하는 라이프스타일)에만 관심 있었을 때는 동화에 몰입한다든지 하며 내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는 조금 동떨어져있었다. 나름 몇 년간 고민해서 방향성을 찾은 것도 있고, 글 쓰는 것도 직업정신을 가지고 하고 있다 보니 이제 다시 동화에 몰입할 여유가 생긴다. 스토리텔러가 되려면 좋은 스토리들을 낫낫이 알면 좋으니까.


나도 언젠가 동화를 직접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디즈니와 고전 동화 덕질을 하고 끝나면 마블세계관과 각종 신화 덕질을 해봐야겠다. 시간이 꽤 많으니까. 동화를 좋아하는 동심이 파괴되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야겠다.


꽤 오래 동심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는데 20대 후반에 동심이 산산조각 난 일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완벽한 세상과 또 하나의 완벽한 세상이 충돌하던 일. 심리 상담을 받을 때 그 문제를 들고 가서 이건 옳지 않지 않다고 그랬는데 한국 정서의 기성세대 상담사의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은 답변만 들어서 상담에 대한 신뢰가 와장창 깨졌다. 그래서 다시 책을 찾아서 읽으며 내 가치관을 정립했고 동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았다.


내 동심은 내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 그리고 나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을 부모님이 무조건적으로 좋아하고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조건이나 환경 등을 따져도 우리 엄마는 안 그럴 줄 알았다. 그게 나의 동심이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다른 동심은 내가 만나게 될 사람이 내가 아스피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그런 말을 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것이다. 글을 보고 알더라도 그냥 눈앞에 있는 나를 보고 알아가는 것이지 그런 레이블 따위에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미 내 세계와 어느 정도 통하는 독특하고 엉뚱한 사람만을 좋아하는데 이런 걸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그런 사람이 어딘가 있다면 아마 스스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닐까?


내 동심이 지켜지기를! 해일리 인 원더랜드에서의 6가지 믿음 중 하나로.


Why, sometimes I've believed as many as six impossible things before breakfast.

- Lewis Carroll, Alice in Wonder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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