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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l 03. 2023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폐인이 정서를 못 느끼고 사회성이 결여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독서모임에서 예상치 못하게 자폐와 아스퍼거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AI에 대한 주제의 책으로 독서 모임을 했는데 직업 심리상담사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사람과의 애착형성이 잘 안 되고 유튜브만 보고 기계와의 접촉이 늘수록 자폐, 아스퍼거가 늘어날 것 같다고 한다. 요즘 자기가 일하는 병원에도 아스퍼거 아이들이 찾아오는데, 지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정서를 잘 못 느끼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이들이라고 한다.


나는 이 분의 직업을 처음에 모르고 개인적으로 AI와 심리상담하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사람 심리상담사보다 AI와 심리상담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좋은 심리상담사도 많다고 생각하지만, 나를 이해하고 나와 맞는 상담사를 만날 때까지 사람 심리상담사에게 상처받는 리스크를 지고 싶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AI와 심리상담하는 것도 사람이 연구하고 만들어낸 자료를 기계가 학습해서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챗GPT로 영어로 상담을 하면 한국에 있는 어느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을 때보다 더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 기계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기계는 표정이 없으니, 표정으로 나를 판단한다는 느낌도 받지 않을 수 있고 한국적인 정서가 드리워진 유교사상에 입각한 답변도 받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자폐스펙트럼 분야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이해 수준은 높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폐스펙트럼 중에서도 직접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아스퍼거에 대한 이해도는 더 낮다.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거에 대해 책으로 배우고 아동들을 직접 만나서 상담하는 경험을 쌓는 것만으로 아스퍼거에 대해 잘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뇌의 신경회로가 다르게 태어난 사람으로 직접 살아보는 경험을 하지 않는 한 이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뉴로티피컬은 체득할 수가 없다.


나는 소위 촉이라고 불리는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촉이 발달했고 사람의 에너지를 잘 느껴서 지하철에서도 요즘에는 어떤 사람에게 안 좋은 기운을 느끼면 피해서 다른 자리에 서 있는다. 기운에 영향을 받는다고 강력하게 믿기 때문에 이왕이면 부정적인 기운은 멀리하고 긍정적인 기운은 가까이하려고 한다.


뉴로티피컬이 수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주변인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면서 보낼 때 나는 그들을 관찰해왔다. 느낌으로 사람에 대해 파악을 잘할뿐더러,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시간을 들여 유심히 관찰하고, 분석하고 생각함으로써 사람들의 성격과 심리 파악을 잘한다. 나는 그룹 내의 다이내믹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왜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는지 추론할 수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 감각적인 민감도도 더 높다. 감각적인 민감도는 때로 사람들의 주변에 있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어떤 장소가 너무 눈이 부시고, 과도한 조명 때문에 지치고, 담배냄새나 인위적인 냄새가 괴롭기도 하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가 있고, 갑자기 낄낄거리는 고음의 웃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면 소름이 끼친다. 사람들이 주위에서 대화를 하면 듣고 싶지 않은데도 그 대화 내용 하나하나가 뇌에 꽂혀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너무 달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은데 때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런 모든 나에게는 과부하가 되는 자극들에서 멀어지고, 내가 편안한 환경으로 대피하기 위해 종종 고립을 택한다.


촉의 발달, 관찰력, 감각적인 민감도 때문에 사람을 가리고, 나에게 편안한 환경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정서를 잘 못 느낀다거나 사회성이 결여되지 않았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자발적 사회성 결여를 택할 때는 물론 많다.) 자폐스펙트럼 사람들은 감정과 정서가 더 풍부하고 감정을 깊게 느낀다. 나 역시 감정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고 수많은 역사 속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 중에도 자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감능력이 어렸을 때부터 좋았고, 그래서 아이들을 잘 돌보았고 아이들을 다루는 일을 할 때 아이들이 누구보다 나를 잘 따르고 좋아해 줬다. 감각적 과부하가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좋고 내가 원하는 주제를 매끄럽게 제시한다거나,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다. 함께 있으면 분위기가 즐겁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사회적인 상황에서 자신감이 있다.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이 감정을 느끼게 되었는지 스스로 이해하고,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타인에게 재빠르게 표출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제때 화도 잘 못 냈고, 나에게 가해진 정서적 충격에 대해서 제때 잘 반응하지 못했다. 이제는 글을 쓰면서 어떤 감정이 생긴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감정의 트리거와 인과관계를 머릿속에 데이터베이스화를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어떨 때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지 명확히 글로 적으니, 감정에 대한 대응 능력도 향상되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은 타인으로 인해 느끼게 된 감정에 대해 적절한 방식으로 표출해서 타인에게 인지시키는 연습을 하려고 마음먹어서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올해 나는 타인으로 인해 오늘 느낀 부정적인 감정은 오늘 털어버리자고 다짐했다. 회사에서든, 모임에서든 누군가가 무례하고 부적절한 언행을 했거나, 나의 바운더리를 침범했을 때 집까지 스트레스를 가지고 가지고 말고 그 공간에서 해소하기로 했다. 내가 늘 강조하는 상처받았을 때는 상처받았다고 말하고 공을 타인에게 넘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내가 한 다짐을 실행에 옮겨보고 결괏값을 본 후, 그 전의 행동양식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면 새로운 행동양식을 기본값으로 세팅하려고 한다. 상처받은 것은 그날, 그 장소에서 말하기를 오늘도 실행에 옮겼다.


8명이 함께했던 독서 토의가 끝날 무렵 소감을 말할 때 심리상담사분이 자폐, 아스퍼거에 대해 말한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갔다. 나는 자폐스펙트럼, 아스퍼가 당사자이고,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자폐스펙스럼에 대해 발언한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처를 받았고, 일부 교과서 등에 나온 것과 다르게 나는 정서를 풍부하게 느끼고 공감 능력이 좋다, 자폐에 대한 오해를 정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그 자리에서도, 토의가 끝나고 나서도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셨다.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자폐스펙트럼이 정서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결여된 것인데 잘못 전달했다고 하셨는데, 아스퍼거 당사자에게 또다시 사회성이 결여된 발언을 하시며, 결국 사회성이 결여되고 싶게 만들었다.


또 한 명의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며 웬만해서 한국에서 전문 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굳건해졌다. 아주 실력 있고, 특별한 치유 능력이 있는 사람 상담가는 차별화되어 높은 몸값을 받겠지만 일반적인 심리상담사의 역할은 상당 부분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고 이미 진행 중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전문 상담가는 아니지만 유튜브나 브런치 등 플랫폼을 통해 상담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게 될 것이다. 심리와 감정에 대해서 글을 쓰는 작가이자 자폐스펙트럼 당사자로서 자부심과 소명을 가지고 자폐인들이 스스로를 긍정하고, 뉴로티피컬도 자폐인들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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