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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Sep 25. 2024

어떻게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자폐스펙트럼과 의사소통의 오해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자폐스펙트럼이나 아스퍼거증후군의 경우에도 실질적인 의사소통에는 꽤나 어려움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려면 단순히 발화된 문장 자체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발화가 행해지는 맥락도 고려해야 하고, 타인의 감정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맥락 고려하기와 타인의 감정 읽기, 이 두 가지 부분에서 자폐스펙트럼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의사소통에서 크고 작은 오해가 발생한다.


“어떻게 이걸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어?”, “어떻게 넌 나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있어?”


남자친구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때 스스로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라고 종종 생각한다.


남자친구가 떡볶이집에서 소스가 잔뜩 묻은 계란을 권하길래 안 먹는다고 하면서 인상을 썼던 적이 있다. 그는 “왜 인상을 써?”라며 끝을 내리며 말했다.


나는 ”일부러 인상 쓴 것 아닌데. “라며 곧이어 기분 나쁜 내색을 숨기지 못하고, 인상을 쓰든 말든 내버려 두라고 왜 고치려고 하냐고 했다.


며칠 전 비슷하게 왜로 시작하는 말로 지적을 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있어서 발끈한 것도 있지만, 나는 그 문장 자체를 톤이나 형태를 고려했을 때 인상을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부드럽게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자기가 언제 너를 바꾸려고 한 적 있냐며 서운하다고 했다. 어떻게 자기를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 수가 있냐고 했다.


전에는 비슷한 말을 할 때 “왜 인상 써?”하며 끝을 올리거나, “괜찮아? 뭐가 불편해?”라고 말해서 질문인지 알았는데, 이번에는 끝을 내려서 다르게 이해했다고 했다.


단순한 오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인에게는 비슷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자폐 스펙트럼인들은 뇌신경학적으로 보통 통계적(패턴적), 직선적 사고를 한다.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한국어에서 예를 들어, 질문형 문장일지라도 끝을 올려서 말하면 진짜로 질문하는 것, 끝을 내려서 말하면 질문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말하는 것 등으로 통계적으로 사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 사람의 처한 상태와 감정, 성격 등 여러 가지 맥락을 의사소통 상황에서 실시간으로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고 대화에 임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적 과부하(sensory overload) 상태에서나, 타인에게서 평소와 다른 패턴이 나타나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에서는 맥락적 사고가 더 잘 안되고, 더 직선적이고 경직된 사고 패턴이 나타나기가 쉽다.


떡볶이집에서의 상황을 대입해 보면, 이것저것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서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고 낯설고 자극적인 소스가 이미 불편했다. 조금 먹다 보니까 불편한 자극에 대한 감각과부하가 와서 더 이상 안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그 소스가 잔뜩 묻은 계란을 권하길래 안 먹는다고 하면서 나도 모르게 미간에 인상이 써졌다.


그런데 문장 높낮이의 패턴상 왜 인상을 쓰냐고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상을 쓰지 말라고 타이르는 것으로 해석되어서 안 그래도 머릿속에 그에게 지적받기 싫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던 찰나에 뭘 하든 좀 내버려 두라고 급발진을 하게 되었다.


감각과부하로 불편하지 않은 상황에서나 일상적인 루틴이나 패턴이 비교적 깨지지 않는 비교적 평온한 상황에서는 맥락적 사고가 더 잘되고, 타인의 의도나 감정을 이해하는 게 조금은 더 수월하다.


그런데, 심리적으로 불편한 상황에서는 한 번 한쪽으로 간 생각의 흐름이 잘 바꿔지지 않는 경직된 사고 패턴이 강화되고, 상대방과 눈 맞춤을 더 피하게 되기 때문에 눈, 그리고 표정을 통해 전달되는 감정을 읽는데 더 어려움이 생긴다.


의사소통에 오해가 생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인은 감각과부하로 인한 불편함, 불편한 상황에서의 눈 맞춤의 어려움과 이로 인한 타인의 감정 해석 능력 저하, 맥락적 사고의 결여, 경직된 사고 패턴 등으로 의사소통의 오해와 이로 인한 갈등이 종종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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