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그리고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
모든 따돌림과 괴롭힘은 아주 작은 이유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보통 남과 다름이다. 내 기준에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르게 행동하면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문제 삼고 입 밖으로 꺼내는 사람이 생긴다.
먼저 문제 삼기 시작한 사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을 그렇게 무리 지어 누군가를 욕하고 괴롭힌다. 동조하지 않으면 무리로부터 배척당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사회에서나 어른들의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동조한다.
자폐니까 나는 당연히 달랐다. 당연히 때때로 그 다름을 알아보고 먼저 문제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늘 밖에서 사귀었다. 즉, 야외에서 사귀었다. 돌이켜보면 교실과 같이 막힌 곳에서는 늘 거의 말이 없었다. 눈부신 형광등 조명 아래, 소리가 퍼져나갈 곳 없이 막힌 곳에서 몸은 늘 초긴장 상태였다. 모든 소리들이 뒤엉켜 웅성거렸고, 내 목소리를 공기에 실어 보낼 용기도 에너지도 없었다.
유치원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아이들은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하고 노는데, 나는 늘 혼자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내게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에 같이 갈 친구들이 있었고, 동네에서 같이 놀 친구들이 있었다. 집에는 가족들이 북적였다. 혼자만의 세상으로도 꽉 찬 데다 밖에만 나가면 늘 놀 친구들이 있어서 전혀 외롭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자, 내가 말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반 친구들 앞에서 큰 소리로 문제 삼기 시작하는 친구가 등장했다. 그 친구는 내가 반에서 두어 명에게 외에는, 그것도 두어 마디 이상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매의 눈으로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나에 대해 먼저 말했던 사람, 그들의 말을 직접 듣거나 건네 듣고 홀로 괴로워하게 했던 사람들은 참 관찰력에 좋고 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나의 다름이 언어라는 형태로 까발려지는 것이, 그래서 문제시되는 것이 괴로웠는데 어찌 보면 그저 그들은 순수한 발견을 나누고 싶은 욕망을 실현한 것뿐이었다.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비슷하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은 어렵고,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와 관심 없는 주제의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어렵다.
왜 이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 힘들까라고 30살까지 생각했는데, 스스로를 수용하게 된 뒤에는 그래도 편안해졌다. 이제는 누가 말이라는 매개로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남들보다 적게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한다고 해도, ‘나는 그냥 그래. ’라며 편안하게 넘길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가까운 사람조차도 말을 잘하는 내가 갑자기 말을 못 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조잘조잘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아는데, 말을 하다가 말을 못 하게 된 것에 대해 답답해한다.
왜 말이 없냐고 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긴장되니 말을 할 수가 없고, 내 얘기를 할 수가 없다. 말을 한다고 해도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테고, 괜한 오해만 하게 될 텐데 그러면 마음이 더 힘들어질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을 말로 관철할 힘도, 사회적 능력도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지레 포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꿈틀거리는데 목 끝에서 모든 소리가 멈추어 버린다.
나는 어차피 잘못된 행성에서 태어났고(아스퍼거인들은 다른 표현으로 wrong planet syndrom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회로로 사고를 하고, 감각을 받아들이는 것도 달라서 내가 느끼고 수용하는 세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데, 나의 입장을 말해서 오해받는 편이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물어 버리기를 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