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의 레고 조립

레고에도 방향이 있다구

by 해센스

사무실 한 구석의 카페에서 모은 종이컵 빌딩으로 이루어진 1기 신도시가 타의로 싹 밀린 이후, 남자친구가 레고를 조립해서 올려놓으면 어떻겠냐며 레고를 사줬다. 나는 주변에서 쉽게, 자주 볼 수 있는 것들인 나무와 새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작은 레고 장난감 중에서 나뭇가지가 달려있는 새둥지에 새들이 모여있는 작품을 골랐다. 그리고 주말에 만나 카페에서 같이 레고를 조립했다.


동봉된 설명서를 보고 1번부터 5번까지 따로따로 포장된 레고 조각이 들어있는 비닐을 뜯어 순서대로 레고를 조립했다. 전체의 일부를 구성하는 각 피스를 돌아가며 조립했는데 누군가가 조립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매의 눈으로 조립되고 있는 레고와 설명서의 그림을 대조했다. 각 피스에서 색깔 배치와 모양, 작은 조각의 방향까지 다 설명서와 정확히 일치해야 모자라는 구성품 없이 작가의 의도와 동일한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


남자친구의 피스 조립품을 유심히 검수하던 나는 설명서와 다른 부분이 발견되면, “오빠, 이거 틀렸어. ”하며 수정해 놓았다. 그 역시 내가 조립하던 피스에 미세하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너 틀렸어. ”라며 작은 복수를 감행했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은 레고를 다시 끼울 필요 없이 방향만 돌리면 되는, 단순히 지적을 위해 지적한 것일 뿐이다. 반면 그가 잘못 조립한 부분은 초록색 잎사귀 모양 피스의 한 면에는 잎사귀의 금이 그려져 있고 반대쪽 면에는 금이 그려져 있지 않은데 금이 그려져 있는 부분을 아래쪽 방향으로 향하게 끼운 것과 같은 디테일에 충실하지 않은 실수였다.


나의 그런 디테일까지 순식간에 검수하는 모습에 소름이라고 했다. 내 눈에는 작은 레고 피스의 색깔, 모양, 방향 등의 모든 디테일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그런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취합해 작가의 의도대로 레고를 조립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쉽다. 레고를 만들다가 2번 구성품을 조립할 때가 되자 레고의 조각에 다른 조각과의 결합을 위한 동그라미 모양에 LEGO가 새겨져 있는데, 그동안 그 LEGO 로고의 방향은 무시하고 조립을 해왔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레고의 볼록한 동그라미 결합부분에 새겨진 LEGO 모양이 모두 한 방향을 향하게 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고, 이것까지 신경 쓰면서 조립하면 피곤해질 것 같아 마음에서 흘려보냈다. 하지만 레고 조각 속의 LEGO 로고를 보고, 로고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또다시 소름이라고 했다. 내 브런치 글을 얼마나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디테일에 아주 강한 아스피이고, 아스피가 아스피한 것일 뿐이다. 그는 집에 가서 다 부수고 다시 조립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혼자 시간을 충분히 들여, 무언가를 조립한다면 LEGO 로고의 방향까지 일관성 있게 다 맞출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이럴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이런 재능과 특성이 있는데 왜 회사에서 사무직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디자인을 하고 있거나 디자인 검수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대학교 때 의류학과를 복수전공이나 부전공한다면서 2학년 때부터 의류학과 수업을 열심히 들었었는데, 언제나 디자인과 디테일은 나에게 놓을 수 없는 무언가였다.


새 눈동자를 조립하며, 새 양쪽눈의 눈동자의 방향이 완벽히 일치해야 한다고, 혹시 누군가가 양쪽 눈동자 위치를 다르게 조립한다면 나는 마음이 식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첫 번째 새의 눈동자를 달았고, 그는 다른 새의 눈동자를 달았다. 이렇게 말까지 했으니, 그도 눈동자 위치가 한 방향으로 향하게 동그란 피스를 돌려 조정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조립한 새의 눈동자를 보니 양쪽 눈의 위치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과도하게 솔직하고, 기상천외한 재밌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아스피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함께 레고를 조립해 보니 그는 뉴로티피컬일지도 모르겠다.


찐사랑인지 눈동자 방향을 다르게 조립했지만 마음이 식지는 않았다. 새들은 시야가 넓어서 눈동자 위치가 다를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납득할만한 이유를 댔으니, 눈동자 방향이 다른 것에 대해 내 머릿속에도 이것을 정당화할 논리가 생겼고, 그대로 두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는 물건을 주로 조립하고 고치던 아빠도 디테일에 강해서 손으로 조립한 무언가를 볼 때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잘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 누군가가 조립한 물건을 보면 엉성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아빠와 나, 동생 모두 손재주가 좋고 디테일에 강하다. 나는 바느질은 귀찮아서 못하지만 드릴로 못을 박는다거나 물리적으로 피스를 조립해서 집에서 교체나 수리가 필요한 곳을 손보는 것은 잘한다. 눈은 정교한데, 손과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은 그만큼 정교하지는 못해서 바느질은 완벽히 잘하지는 못한다.


아빠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어린 시절 내 사진과 가족사진이 많다. 나도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꽤 잘 찍고, 동생의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 사진도 동생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을 취미로 찍기로 했는지 집에 동생의 카메라가 생겨있었다. 시각적 재능처럼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재능 같은 것이 있다.


세상에는 레고 조각 속의 LEGO 로고 방향까지 생각하는 디테일한 사람도 필요하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을 세상에 줄 수 있는지, 미래의 나의 아이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날지 생각해 본다. 나의 특성을 관찰하며, 내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어떻게 살려줄 수 있을지 미리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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