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쿠션이 뜯어져도 바느질은 못해요

절차대로 따라야 하는 일은 어렵다

by 해센스

시바견 모양 애착쿠션이 뜯어져서 솜이 삐져나온다. 안 꿰매었더니 점점 더 뜯어져서 자고 일어나면 나와있는 솜뭉치 크기가 커지고 있다. 그래도 그냥 사용하고 있다.


고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실과 시간 이후에 바느질을 직접 해본 적이 없다. 단추가 떨어질 것 같으면 엄마한테 달아달라고 했다. 다시 달랑거리면 피곤해지니까 엄청 단단하게 달아달라고 했다.


급하게 꿰맬 게 있으면 남자친구한테 꿰매 달라고 했다. 삐뚤빼뚤한 건 싫지만 직접 할 순 없으니 대충이라도 꿰매 주면 만족했다. 군대 갔다 왔으면 보통 바느질을 할 줄 알아서 부탁하면 해줬다.


애착인형이 뜯어졌지만 직접 꿰맬 생각은 안 든다. 그냥 계속 쓰다가 똑같은 걸로 새로 사든지 커다란 쇼핑백에 넣어서 집에 갈 때 가지고 가서 엄마한테 꿰매 달라고 해야 된다.


옷도 살짝 뜯어졌지만 꿰매서 입을 수 입는 것들이 있는데 그냥 쇼핑백에 넣어둔 채로 몇 달째 방치 중이다. 낡아서 뜯어진 것은 아니고 실 같은 것을 확 잡아 뜯다가 뜯어졌다. 수선하는 데 가서 꿰매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수선집에 가져가는 것조차 성공적으로 못했다.


퇴근하고 가려고 회사에 쇼핑백을 가져간 적은 있는데 며칠 동안 회사에 두고 퇴근했다. 그러다가 그냥 집으로 가져와서 다시 방치 중이다. 기억했다가 그 쇼핑백을 수선집까지 가지고 갈 수가 없다. 휴가이거나 주말에도 늦잠 자거나 까먹어서 성공적으로 완수한 적이 없다. 늘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수선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그래서 몇 달째 그냥 쇼핑백 속에 있다.


바느질은 너무 절차가 복잡하다. 그렇게 절차가 복잡한 것은 못한다. 실과 바늘을 구비해야 되고, 그 물건들을 어딘가에서 꺼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바늘에 실을 넣어야 하고 그다음에 어떤 순서에 따라서 바늘을 왔다 갔다 해야 꿰매는 것을 완수할 수 있다. 게다가 방법을 기억 못 하니까 유튜브에서 찾아서 습득해서 해야 한다. 도저히 너무 귀찮아서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단추가 달랑거리는 것도 너무 거슬리지만, 애착쿠션에서 솜이 나오는 것도 신경 쓰이지만 이 귀찮은 바느질이라는 것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바느질을 못하는 것에 대한 글은 쓸 수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절차가 단순하다. 아이폰 메모장을 열어서 그냥 쓰면 된다. 실도 바늘도 손을 섬세하게 움직이는 작업도 필요가 없다.


친척이 십자수 가게를 해서 그분에게 십자수를 잠깐 배워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도저히 너무 화가 나서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섬세한 작업은 나를 너무 화나게 한다. 어떤 아주 구체적인 절차를 따라서 어떤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다.


요리와 청소는 괜찮다. 그런데 빨래나 바느질은 싫다. 요리에도 절차가 있지만 약간 달라도 상관없다. 창의력을 가미해서 내 마음대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봐도 된다. 청소도 그냥 아무 순서로 대충 해도 된다. 했던 곳을 또 해도 상관없고 비효율적이어도 어쨌든 하기 전보다 깨끗해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빨래는 정해진 절차가 있고 절차가 많다. 기존의 옷을 걷어서 개야 하고 세탁기 안에 세탁물을 넣어야 한다. 그다음에 다시 세탁물을 빼야 한다. 절차를 따라야 하는 일이 너무 싫다. 머릿속으로 이미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데 그것을 내 몸으로 옮기고 싶지가 않다. 운동이야 몸을 단련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만 가사노동은 좀 다르다.


흰 도화지에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텅 빈 메모장 위에 글자를 채워나가고 싶다. 매뉴얼이 있는 일을 순서대로 하는 것이 너무 지루하다. 어제 스타벅스에서 메뉴 6개를 주문하려고 메모장에 적어서 갔다. 그래서 메모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주세요. ”라고 했더니 포스에 입력을 해야 하니 직접 불러달라고 했다. 직접 불러줬는데 한 개를 빠뜨렸다. 그래서 다시 사러 갔다.


여섯 줄의 커피메뉴를 빠짐없이 주문해서 가지고 돌아오는 것도 실수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고,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다. 기획을 해서 어떤 책에 들어갈 글을 차곡차곡 써 내려갈 수 있다. 브런치에 10개의 다른 책을 써나가고 있다. 사물을 보면 거의 비슷하게 그릴 수 있고 사람을 보고 특징을 잡아서 그릴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잘 쓸 수 있고 외국어를 듣고 곧잘 따라 할 순 있지만 매뉴얼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따라서해야 하는 작업에는 서툴다. 내 시야와 생각이 자동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데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억지스럽게 그 순서로 맞춰야 한다.


책을 읽을 때도 보통 우하향 방향으로 읽긴 하지만 한글로 된 글은 펼쳐진 페이지를 빠르게 훑는 편이고 세부 사항을 놓쳤으면 다시 그 부분을 따라가서 본다. 글은 모양이 일자로 있으니까 일자로 따라가서 보기가 그나마 쉽지만 메모 같은 것이나 컴퓨터 화면은 일자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정보가 중구난방으로 보이는데 누락을 방지하려면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확인해야 한다. 내가 설계하지 않은, 내 뇌의 작동 방식과 다르게 설계된 화면을 보고 작업을 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회사의 단순 반복 업무도 그래서 겨우 겨우 하고 있다. 한 가지에만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할 수 없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책을 읽을 때를 제외하고는 뇌를 한 개만 가동할 수 없다. 이미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는 알지만 절차가 복잡한 이 업무를 하고 있으면 뇌가 반쯤 죽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동시에 뇌에 다른 자극을 계속 주면서 뇌를 깨워가며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멀티태스킹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뇌의 작동 방식이 달라서 멀티태스킹을 해야 효율적이다. 뭐라도 학습하고 있으면서 단순 반복적인 작업을 해야 그 지루함과 뇌가 죽어가는 느낌을 견딜 수가 있다.


사물이 열 개가 동시에 인식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사물을 한 개씩 순서대로 인식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순서가 없다. 열 개의 정보가 동시에 보인다. 신경다양인의 뇌는 이렇다. 소리도 열 명이 말을 하고 있으면 열 개의 말소리가 동시에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서 한 명의 말만 집중해서 들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신경다양인이 시끄러운 장소를 싫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열 개의 책을 동시에 쓰고 싶은데 한 개의 책을 다 쓰고 그다음 책을 시작하라고 하면 그게 더 힘들 것이다. 도화지 속 그림처럼 순서가 없는 전체가 하나인 그런 완결적인 일이 나와 잘 맞다. 가운데에서부터 그리든 오른쪽 아래에서부터 그리든 그림이 완성되는 일.


그래서 어떤 순서와 방향으로 해나가야 하는 바느질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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