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요
나의 시선이 틈과 모서리를 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늘 점심을 먹으며 직장 선배가 누군가의 콧구멍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콧구멍 정리를 잘 안 한다는 것이었다. 콧구멍 안이 깨끗하지 않고 코털이 삐져나와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분명 나도 회의시간에 있었고 일주일에 몇 시간은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한 번도 콧구멍을 본 적이 없었다.
내 시선은 그럼 어디로 향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주로 그 분이 가진 헤어라인의 빈 틈새를 보고 있었다. 민머리에 가까워져 가는 정수리에 일자로 나열된 머리카락 뭉치와 머리카락 뭉치 사이의 빈 틈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있을 일이 생기면 코의 모서리를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헤어라인을 제외하면 그분의 코끝의 뭉툭도에 대해 관찰하고 있었다. 아, 코끝이 뭉툭한 편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콧구멍 안이 어떤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코 끝은 사람 얼굴의 모서리에 해당한다. 나는 사람과 사물을 볼 때 그 모서리가 만들어내는 모양에 대해 주로 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bridge)나 스카이라인을 보는 것에 대한 선호와 약간의 집착이 있었던 것 같다. 다리를 보면 멋있고 좋았다. 다리는 틈과 모서리가 확실한 사물이다. 스카이라인도 그렇다. 건물의 모서리들이 만들어내는 틈과 선은 늘 매혹적이었다.
다른 선배는 4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부기가 빠져 보이길래 빠진 것 같다고 했다. 그 선배를 그리 자주 대면하지는 않지만 주로 그 선배를 볼 때 나는 몸의 퉁퉁도(몸선이 둥글어진 정도)를 보곤 했다. 잘 붓는 체질인지 볼 때마다 차이점이 꽤 드러나는 편이었다. 여행에서의 휴식이나 식습관으로 부기가 빠졌는지 턱선과 몸선이 약간 날렵해져서 돌아왔다. 나는 사람과 사물의 모서리를 잘 보는구나 다시 깨달았다.
나무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무를 볼 때 나는 몸통도 보지만 가지 하나하나와 잎사귀의 틈새도 세부적으로 본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 나뭇가지와 나뭇잎들이 하늘을 부분 부분 가려 수많은 틈과 모양을 만들어낸 모습이 멋있다.
작년 말 웩슬러지능검사를 하며 그림검사도 했다. 나무를 그리라는 요청이 있어 나무를 그렸다. 크게 뿌리와 몸통, 전체적인 모양도 그렸고 거기에 비교적 얇은 가지와 얇은 가지에 붙어있는 더 얇은 가지, 그리고 거기에 붙어있는 나뭇잎들도 그렸다.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전체적인 나무의 실루엣은 뭐고 하나하나의 나뭇잎들은 뭐냐고 물어봤는데 전체적인 나무 그림은 멀리서 봤을 때고 나뭇잎들 하나하나는 가까이서 봤을 때라고 대답했다.
ASD에 대한 이해도가 깊은 선생님이었다면 그림 검사를 통해서도 단서를 찾았어야 했다. 물론 ASD 진단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 스스로에 대해 직접 분석을 할 수 있다.
최근 나의 시각적 특수성에 대해 깨달으면서 버린 작은 행동과 습관들이 있다. 회사에서 문서작업을 하며 표를 만들 때 줄간격 맞추기 버튼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내 눈으로 보고 맞춘다. 내 눈에 비슷해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간격이 맞아 보인다는 확신이 생겼다.
눈으로 보면 되니 체중계도 굳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체중계가 있지만 족히 2년은 사용하지 않았는데 당근에 올리면 될 것 같다.
주식투자를 할 때도 고민을 버리고 차트를 보고 확신의 매매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각적인 것에 강하다. 반복해서 보면 무의식적으로 차트 패턴을 어느 정도 외울 수 있다. 봉과 봉의 간격이나 봉들이 만들어 내는 모양에 대한 내 직감을 믿는다. 빠른 판단을 직감이라고 부르지만 직감의 기반은 나의 디테일에 강한 시각적 재능이다.
출근을 하며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며 생각했다. 패션의 기본은 길이감과 부피감이 만들어내는 실루엣이라고. 옷을 잘 입는 것처럼 보이려면 트렌드에 맞게 길이감과 부피감을 조절해야 한다. 선호되는 길이와 부피에 대한 트렌드는 조금씩 변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길이와 부피의 비율이나 조화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눈에 아름답고 조화롭게 보이는 황금 비율이라는 것은 시대를 거쳐서도 유지되어 왔다.
비싼 옷, 고급스러운 옷이 패셔너블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바지단의 길이, 상의, 하의의 길이감과 부피감 매칭이 더 중요하다.
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 할 땐 틈이 많은 곳을 보자. 뻥 뚫린 곳, 하늘이 많이 보이는 장소에 가자. 무의식으로 도심 속 나의 휴식 장소는 건물이 낮게 보이고 하늘이 많이 보이는 곳이었다.
사람의 시선은 흥미롭다. 어떤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