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소공포증(Claustrophobia)과 김밥과 칼국수
삼각김밥은 잘 먹는데 김밥은 싫어한다. 김밥에 대한 불호는 여러 가지 향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것에도 있지만 입안을 가득 채우는 김밥의 크기에도 있다. 입 안에 음식물이 가득 차서 숨 쉴 틈이 없어지는 것이 괴롭다. 삼각김밥은 한 입, 한 입 내가 원하는 사이즈로 잘라서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김밥은 보통 한 입에 넣는다. 그게 불편하다. 모양과 크기의 문제이다.
또 한 가지 싫어하는 것은 칼국수이다. 파스타, 짜장면, 팟타이는 찾아서 먹기도 한다. 막국수와 메밀소바 애호가이다. 쌀국수도 먹는다. 하지만 칼국수는 안된다. 물에 면이 불어 부피감이 커진 것이 싫다. 입 안에 부피감이 큰 것이 들어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면이 국물 안에 들어가 있으니 한 번에 정확히 얼마큼 딸려 나와 입 속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파스타는 먹을 때 양이 눈에 보이니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칼국수를 한 가닥씩 먹는 사람은 잘 없다. 그리고 한가닥만 먹는다고 해도 부피감이 꽤 있다.
게다가 난 밋밋한(bland) 맛의 음식을 잘 못 먹는다. 맛도 밋밋하고 질감도 밋밋한 음식이 입 안에 머무르는 것이 괴롭다. 예를 들면 흰쌀밥이나 칼국수가 맛과 질감이 밋밋한 음식이다. 수제비 같은 것도 썩 선호하지 않는다. 파스타나 수타나 족타 우동면은 꽤 쫄깃하다. 하지만 칼국수는 상대적으로 쫄깃하지 않다. 입 속에서 커다랗고 밋밋한 음식을 분해하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다.
음식이 입 안을 막아도 안되지만 소화기관도 막으면 안 된다. 그래서 잘게 쪼개서 삼킨다.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키는 것은 불편하다. 그러니까 지루함을 무릅쓰고 씹어야 한다. 그게 싫다.
김밥과 칼국수보다 앞서 절대 먹지 않았던 음식이 있었는데 냉면이다. 냉면은 내 기준에 씹히지도 않고 잘리지도 않으니 분해도 할 수 없고 끊고 싶을 때 끊을 수도 없다. 여러 가지 공포를 한 번에 주는 음식이다. 면이 잘 끊기고 향이 있는 평양냉면을 알게 된 후 평양냉면은 좋아한다. 사람들은 평양냉면이 밋밋한 맛이라고 하는데 내 기준 밋밋함은 간이 아니라 향의 부족이다.
나는 한식을 대체로 선호하지 않는데 향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밀면은 메밀향이 진한 반면 밀가루면은 향이 없다. 한국 음식은 대체로 간이 진하지만 향이 약하다. 나는 치즈, 허브, 재료 고유의 향 등 향이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한국 음식은 참기름이나 들기름향, 마늘, 고춧가루로 재료의 향을 덮어버리는 음식이 많다. 깨로 만든 기름, 파, 마늘, 멸치, 된장이 향의 거의 전부고 고춧가루로 통각을 자극하는 형태의 음식이 많다. 한국 음식은 지루하다. 야채를 먹을 때 이런 한국적 양념으로 향을 덮은 형태보다 생 야채에 올리브오일을 뿌려서 먹는 것이 더 좋다.
음식의 한 입 사이즈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 입에 많이 못 먹었다. 엄마가 나는 티스푼으로 밥을 먹어야 된다고 하소연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가기 전에 급하니까 엄마가 밥을 먹여주는데 조금만 수저에 밥을 많이 떠도 웩 웩 거리며 못 먹었다. 사이즈가 그때보다는 약간 커지긴 했지만 나의 한 입 사이즈는 따로 있다. 밥도 수저의 반 이상 채우면 안 되고 고기도 잘게 잘라서 먹는다. 내가 한 입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는 빵처럼 뜯어먹는 류의 음식을 선호한다.
나의 한 입 사이즈에 대한 고집은 폐소공포증과도 맞닿아 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가득 찼는데 내가 안쪽에 있는 상황, 워터파크의 원통형 슬라이드,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가운데 좌석에 앉았는데 앞뒤 간격이 다리를 살짝 뻗을 공간도 없이 좁은 상황에서 숨 막힘과 공포를 느낀다. 이중문으로 되어 있는 건물의 문과 문 사이, 회전문의 작은 칸 안에서도 갇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느낀다. 비행기나 기차를 탈 때 늘 통로석을 예매한다. 좁고 갇히고 막힌 곳에 대한 공포가 있다. 숙소를 예약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면적인지를 꼭 확인한다. 아주 좁은 면적은 폐소공포증을 유발하기 때문에 숨 쉴 수 있는 최소 면적인지 확인한다.
입안이든, 내가 머무는 공간이든 일정한 빈 면적이 확보되어야 한다. 시간 활용이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틈이 많이 필요하다. 정해진 시간 동안 한꺼번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많은 양의 일이 쏟아지면 숨이 막힌다.
스스로를 잘 다루려면 모든 일을 할 때 내 수저 사이즈에 맞는 일인지를 잘 확인해야 한다. 내가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양인지 잘 확인하고 나눠서 먹어야 한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혼자서 충전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사람이면 같이 좀 더 오래 시간을 보내도 괜찮다. 함께 있어도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그런 틈, 매 순간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서도 쉴 수 있는 그런 틈이 필요하다. 나의 틈, 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시공간을 침범해 오면 숨이 턱턱 막힌다. 어쩔 땐 그래서 관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