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장소와 상황에서의 공황 발작
오늘 아침 공황 발작(panic attack)이 있었다. 난 공황 장애 진단은 받은 적은 없지만 마일드한 공황 발작은 이따금씩 있다. 보통은 공황 발작으로 가기 전 일단 밖으로 나가서 좋아하는 커피를 사거나 몇몇 아지트로 가서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발작을 방지한다.
오늘은 트리거가 불러일으킨 트라우마로 인해 아침에 공황 발작 수준의 증상이 왔다.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지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맞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공황 발작.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불편하다, 도망가고 싶다, 두렵다, 걱정된다, 감각적으로 불편해서 피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다.
어떤 결정을 내리면 안 될 것 같으니 일단 땅굴로 대피해서 적당한 습도가 있고 빛이 없고 사람의 소리가 없는 곳에서 고요하게 쉬고 싶다는 감정. 써놓고 보니 그거다. 빛과 사람의 소리가 불편했다. 근데 그 불편한 자극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완전히 탈진했다. 그러다 보니 트리거가 트라우마로 그대로 과속 주행을 했다.
내 틀 밖의 일들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너무 불편하고 마음이 괴로웠다. 내가 편안한 그런 빛을 보고 그런 소리를 듣고 그런 일을 하고 싶다.
맘껏 편안한 일들을 하려면 혼자여야 한다. 공원에 가서 혼자 앉아서 삼각김밥이나 먹고 싶다. 혼자 간접 조명만 켜놓고 방에서 쉬거나 자연, 아니면 뻥 뚫린 야외에 있고 싶다.
어쩔 수 없는 ASD 사람인가.
공간적인 트리거는 어수선하고 사람 많은 골목과 인테리어가 좋지 않은 쇼핑몰이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하는 모든 것이 있는 영화관.
원래 어릴 때부터 영화관 데이트나 약속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난 일관적이었다. 이유를 몰랐었을 뿐. 이제는 영화관도 가끔 갈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 자리 선택에도 규칙이 있다. 대피로와 가까운 곳, 사이드 통로 자리. 한가운데 영화가 잘 보이는 자리는 필요 없다. 큰 화면으로 너무 강렬한 빛이 쏟아지는 스크린은 어차피 감당할 수 없다. 주말엔 그냥 대놓고 선글라스를 쓰고 영화를 봤다.
빛 과민 자폐인에게 라식 수술은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10년 전에 한 라식 수술 때문에 심각한 빛 번짐과 야맹증을 얻었다. 영화관에 들어갈 때부터 일단 아무것도 안 보이니 무섭다. 그리고 영화 플레이시간 동안 문명인처럼 보이려면 가만히 착석해서 영화를 끝까지 봐야한다는 압박감에 숨이 막힌다. 고정된 장소에서 꼼짝없이 앉아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스피이자 ADHD인 나에게 힘들다. 기차나 비행기에서는 사정없이 빛과 소리 공격이 있지는 않는다. 그런데 영화관은 불편한 자극 속에서 갇혀 있는 느낌이다. 화면에는 빛 자극이 스피커에서는 소리 자극이 쏟아진다. 이 자극들은 뉴로티피컬에 맞춰진 수준의 자극들이다. 자폐인에게 영화관은 그런 공간이다.
4D 영화를 도전해 봤다. 이 모든 자극에 더해 의자가 흔들리고 물이 나오고 바람이 나온다. Oh my GOD! 진정한 아스피지옥이다. 갑작스러운 인공적인 자극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 의자가 흔들리는 건 나름 스릴도 있었다.
영화관은 세 달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영화는 혼자 아트시네마에 가서 괴상한 자세로 잔잔한 독립영화 보는 게 좋다. 사람이 없는 심야 시간이면 더 좋고.
과거의 남자친구와 쇼핑몰에 가서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싸웠다. 그가 쇼핑몰에서 옷을 한 장 한 장 다 구경해서 지겨워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쇼핑몰이 불편해서였다. 과한 조명과 수많은 물건들과 수많은 사람들, 묘하게 불친절한 점원, 안 좋은 공기 모든 게 불편하고 힘들었다.
어렸을 때도 엄마 따라 마트에 갈 때마다 마일드한 공황을 겪였다. 생각해 보니 더 어렸을 땐 쇼핑을 할 때마다 나의 상태 변화와 투정으로 인해 엄마가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다. 길에 놓고 간다고 한 적도 있었다. 엄마의 입장도 답답했겠지만 공황에 빠진 자폐 아이를 버리고 간다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극도로 무서웠을까.
쇼핑몰이라는 장소가 문제였다. 쇼핑몰에 가면 정신이 없어진다.
내가 쇼핑을 간다면 아주 빠른 속도로 필요한 것만 사서 그런 불편함을 최소화한다. 먹는 것은 늘 사는 것만 사고 옷도 빠르게 나한테 어울리는 것,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수 있다. 쇼핑몰에선 쇼핑을 하는 것이지 오만 것들을 다 구경하지 않는다.
마지막 내 생일에 어제도 우연찮게 갔던 그 쇼핑몰에서 생일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 하필 그때 일이 너무 많아서 미리 준비 못했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공황 발작이 왔다. 쇼핑몰과 이어지는 지하철역에서 그냥 울었다. 왜 싫고 불편한지 말로 표현을 정확히 못했다. 아스피는 감정을 즉시 인식해서 말로 표현을 못하니까.
생일인데 불편한 곳에서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라는 거였다. 원하는 것은 따로 정확히 있었다. 그런데 그 어수선하고 인테리어도 안 좋은 쇼핑몰에서 인생 경험 상 통계적으로 미혼 여성에게 터치, 넘겨짚기, 선 넘는 발언을 많이 하는 중년 여성과 대면해서 물건을 고르라고? 난 인생의 몇몇 경험으로 중년 여성 공포증도 얻었다.
내 취향이 아닌 걸 골라주면서 마치 이게 예쁘다는 식으로 권할 것 같은 그 상황. 미적 감각이 뛰어나고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아는 나에게 별로인 취향을 권하는 그런 상황. 내 의견을 그 자리에서 잘 말 못 하는 내가 속으로 불편해하면서 스트레스 받을 그 상황 때문에 공황 발작이 왔다. 이미 한 번 지나가면서 얼굴은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쇼핑몰 점원들의 인구통계학적 특성을 다 훑었다. 난 다 그려졌고 다 느낌이 왔다. 그리고 분명 난 바디랭귀지로 빨리 떠나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난 늘 표현을 한다. 어떤 게 좋은지, 싫은 지 평소에 말도 하고 그 자리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은 한다. 다른 데 갈까라고 한다든지 어떤 액션을 취한다든지 표현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스피의 특정 공간과 상황에서의 불편함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더 잘 설명하고 더 잘 의사표현을 해야 된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으로 통계 분석을 하고 취향 파악을 하는 것처럼 그들이 나에게 배려를 해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표현을 한다고 해도 자폐인이나 아스피의 관점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쉽게 묵인한다. 불편해도 참을 수 있겠지, 막상 이렇게 해보면 이 친구도 괜찮아 할 거야란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서 공황 발작이 생기거나, 그 장소를 떠나고 하루 이틀 뒤에 공황 발작을 겪을 나를 상상하지 못한다.
아스피 가족, 친구와 자주 보고 싶다면, 그리고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와 주면 된다. 아스피 친구가 매일 샐러드 먹으면 만나서 한번쯤은 같이 샐러드 먹어주거나 메뉴로 샐러드 시켜주면 된다. 어떤 장소에 갈 때 시각적 자극과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대면과 접촉이 불편해서 목적지를 정해놓고 목적지만 가고 싶다고 말했으면, 굳이 돌아다니면서 끌리는 대로 들어가자고 안 하면 된다.
좋은 곳, 색다른 곳에 데려가는 것도 좋지만 그들이 좋아하는 곳은 그들이 자주 가는 곳이다. 그들이 가는 그곳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면 된다.
아스피는 늘 배려한다. 타인을 잘 관찰하고 맞춰준다. 그런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같이 해주고 타인의 취향에 맞춰 주는 것이 때론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혼자일 때 비로소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