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결함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스퍼거인이 비난과 지적에 취약하다는 것은 읽고 들었다. 상세하게 이유를 설명하는 유튜브도 접했다. 이유를 설명하는 영상이나 다른 자료를 참고하기보다 내가 지적받을 때 어떤 생각이 들 길래 지적을 받으면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 지 적어보려고 한다.
지적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1. 명사 꼭 집어서 가리킴.
2. 허물 따위를 드러내어 폭로함.
- 표준국어대사전
지적을 받으면 내 흠이 드러나는 것 같다. 꼭 흠인지 모르겠는 부분이어도 콕 집어서 문장으로 듣는 순간 흠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내가 완벽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적을 당하면 나는 심각하게 결함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완벽에서 조금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딘가 완전히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나 지적을 당하면 마음이 안 좋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지적이 더 힘든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아스퍼거인들은 자기가 다르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안다. 세상이 기대하는 것들을 수행해 내는 데 많은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학습해서 어느 정도 비슷하게 해나가려고 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다면 그 행동을 수정해서 하려고 한다.
99%가 사는 세상에서 1%의 뇌구조를 가진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에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행동을 억압해야 되는 것이다. 그래야 비슷해 보일 수 있고 그래야 눈에 띄어서 가십의 대상이 된다거나 지적받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내 행동이 결함인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이전에 99%의 기준에서 내가 나를 재단하게 되는 것 같다. 사회에서는 99%에 속하는 사람들이 맞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이 된다.
다르게 태어나서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싶다고 해도, 겉모습은 99%의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개는 개의 행동이, 고양이는 고양이의 행동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사람들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이 보이면 이야기를 한다. 사람마다 뇌의 신경학적 구조가 다르고, 이 차이가 사고방식과 행동에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 다양성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다 이렇게 하니까 누구나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에 속하는 사람은 보통 다 이렇게 하는 것에서 벗어난 행동에 대해 지적받는 경험이 어릴 때부터 누적된다. 누적된 부정적인 피드백 때문에 더 지적에 예민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타인의 입을 통해 왜 그렇냐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개는 개고 고양이는 고양이고 아스피는 아스피고 뉴로티피컬은 뉴로티피컬인데 뉴로티피컬이 아니라 아스피인 것이 문제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