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되지 않은 것들이 좋아

아스피가 프로틴바 먹으면 안 되는 이유

by 해센스

주먹밥을 잘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닭발이나 오돌뼈를 시키면 나오는 주먹밥을 맛있게 만든다. 라면도 남이 끓여주면 맛있다고 내가 만든 것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준 것이 더 맛있을 줄 알고 기대했다.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이 훨씬 맛있었다. 내 주먹밥이 맛있는 이유는 꽉 쥐지 않기 때문이다. 꽉 뭉쳐지지 않게 적당한 텐션으로 살살 주먹밥을 만들었더니 금방 뭉개져도 훨씬 맛있었다. 원래 주먹밥은 뭉쳐놓은 다음에 먹을 때는 적당히 풀어서 먹는 것 아닌가? 나만 그렇게 먹나?


너무 압축되어 있는 음식은 별로 맛이 없다. 흰쌀밥을 밥공기에 너무 꾹꾹 눌러 담으면 맛없어서 잘 못 먹는다. 압축되지 않게 적당히 담아서 공기층을 머금고 있어야 밥이 맛있다. 김밥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어렸을 때는 김밥을 꽤 잘 먹었다. 특히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은 잘 먹었는데 내 입안 실면적 사이즈를 고려해 작게 만들어줘서 그랬던 것 같다. 동그란 모양도 작게, 재료도 조금씩만 넣어서 부담스럽게 않게. 엄마도 아스피인지 모르겠는데 음식이 진화하지 않고 늘 그대로인 편이고, 김밥 속 재료와 사이즈도 늘 똑같으니까 엄마표 김밥은 잘 먹었다. 요즘 김밥집은 김밥이 점점 커지고 양념된 재료도 점점 많이 들어가서 파는 김밥을 피하게 된다.


엄마가 만들어준 김밥이 유난히 맛이 없게 된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밥이 질게 되어 질은 밥을 꾹꾹 압축해서 김밥을 말은 날이었다. 질은 밥을 꾹꾹 눌러 담기까지 하면 정말 최악이다. 밥알 하나하나가 윤기 코팅 되어 있어야 되고 밥알과 밥알 간에 완전히 밀착되지 않고 적당히 떨어져 있는 부분이 있어서 공기층이 들어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엄마는 나한테 잡곡밥만 주는데, 잡곡밥은 표면이 미끄러운 흑미 같은 애들이 섞여 있어서 오래된 쌀로 지어도 어느 정도 공간감이 유지되어 쌀밥보다는 비교적 잘 먹어서 그렇다. 흰쌀밥은 쌀을 많이 타지만 잡곡밥은 웬만하면 먹을 만은 하다.


마동석 양성하는 회사도 아닌데, 선배가 사무실 간식으로 단백질을 너무 많이 사다 놓았다. 누가 보면 머슬 키우는 부서인지 알겠다. 두유에, 몇 종류의 프로틴우유에 몇 종류의 프로틴 바. 초콜릿이 들어간 것, 초콜릿이 들어가지 않은 것, 라즈베리 치즈 프로틴 바 등. 인공적인 재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을 안 먹으려고 해서 나름… 다이어터긴 하지만 프로틴, 고단백이 붙은 가공식품은 안 좋아한다. 저탄고지어터라 고단백 신화의 신봉자도 아니다. 배를 채우고 싶어서 어느 날 프로틴 우유와 라즈베리치즈 단백질바를 먹은 적이 있다. 각각 다른 날이었는데, 두 날 모두 배가 아팠다. 속이 답답하고 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릴 때 닥터유 초콜릿견과류 바에 중독돼서 밤에 습관성으로 먹었었는데, 이것도 먹고 나서 늘 속이 안 좋았다.


단백질이 조그만 프로틴우유와 프로틴바에 응축된 것을 먹으면 아프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적인 형태로 분산되게 섭취해야 하는데 응축해서 먹으면 아프다. 아스퍼거는 자극에 예민하고 음식 자극도 예외는 아니다. 단백질도 과하게 투여하면 안 된다. 특히 프로틴바의 형태로 온갖 인공적인 재료들은 응축해 놓은 것을 먹으면 탈이 난다. 단백질바나 견과류 바를 먹는 것보다는 자연식품인 치즈를 먹거나 자연 상태 그대로의 견과류를 적당량 먹어야 탈이 안 난다. 두유나 프로틴우유보다 우유를 안 마시는 것, 마신다면 생우유나 락토프리 우유를 적당량 마시는 것이 컨디션에 훨씬 좋다.


아스퍼거 자체를 장내 미생물 균형 문제로 파악하는 이론이 있다. 경험 상 키토제닉 식단과 ADHD 증상 발현과는 상관관계가 높았다. 아스퍼거의 일부 증상 역시 당과 가공식품을 줄이는 식단 관리를 하면 호전될 수도 있다. 아스퍼거는 뇌신경의 구조적 차이로 발생하는 선천적인 상태이지만 장내 미생물과 뇌신경 간에 연관성이 있다면 장내 미생물의 상태가 뇌신경에도 변화를 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의학계에서는 장을 치료해서 아스퍼거를 호전시키는 치료법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관심이 있어서 전문 한의원에 방문해 볼 의향도 있다.


아무튼, 아스퍼거인들은 위와 장이 예민한 경우가 많다. 심리적인 요인 외에도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서 위장이 더 예민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먹는 것을 잘 가려서 먹어야 한다. 먹은 후에 반응을 관찰해 보고 몸에 안 받는 음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폐 성향의 어린이들에게도 무조건 골고루 먹으라고 권할 일이 아니다. 어린아이들의 편식만큼 몸과 뇌가 보내는 음식 자극에 대한 정확한 반응이 없다고 보는 편이다. 특히 아스퍼거를 포함한 자폐 성향의 아이를 양육한다면 아이의 편식을 잘 관찰하면 아이의 특성에 대해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스피의 편식은 생존이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이들에게 먹기 싫은 음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어렸을 때 편식이 심한 편이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특히 키토제닉에 대해 공부하고 생활양식에 편입한 이후에는 더 가려서 먹는다. 먹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였는데 훨씬 더 컨디션이 좋아지고 건강해졌다. 심리적으로든, 몸이 이상반응을 보여서든 어떤 음식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아주 타당한 신호이고, 이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폐인과 비자폐인 모두의 편식 생활을 지지하고 장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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