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출근하자마자 받기 싫은 선물을 받았다. 일본어 교재가 책상으로 배달 와 있었다. 부서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일본어 수업을 듣는다. 나는 내 시간을 일본어를 배우는 데 사용할 생각이 없어서 수강 신청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본어를 배우려면 시간도 써야 하고 돈도 내야 한다. 물론 일본어 공부도 해야 한다. 일본어와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조직이다. 굳이 사용하려면 다른 곳에 가서 쓸 수도 있지만 영원히 사용하지 않아도 회사 업무를 하는데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일본어를 사용하려면 일본어를 쓰는 아주 특수한 곳으로 노력해서 가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일본어를 쓸 일은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남자에 관심도 없고 초밥도 김밥과 비슷한 이유로 선호하지 않아서 일부러 먹으러 다니지 않고, 일본 여행뿐 아니라 해외여행 자체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AI 시대에 영어 외에 다른 외국어에 시간을 투자해서 배우기 시작해야 하나 생각도 든다.
일본어를 안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헷갈리는 것에 약하고 일본어 글자 모양은 헷갈리게 생겨서 공부하기 싫다고 했다. 그런데 독학을 해서 다음 일본어 수업부터 들어오라며 일본어 교재가 책상에 배달 와 있었다. 책을 사주겠다고 이야기는 전에 들었는데, 딱 잘라서 필요 없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말을 못 했다. 그런데 필요 없다고 해도 어차피 배달 와 있었을 것이다. 배울 생각이 없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다. 내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가끔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물어봐주시는데, 그때는 고맙다. 관심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사려 깊은 일이다. 책을 사주고 싶으면 인스타그램으로 돈 버는 방법에 대한 책을 사줘야지 왜 일본어 책을 사주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일본어책 선물을 받고 기분이 안 좋다가 눈에라도 안 보이게 서랍에 넣어두고 점심시간에 요가로 기분전환을 하고 왔는데, 또다시 다가오더니 일본어 mp3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라고 한다. 방법을 모르면 친절하게 알려주신다고 한다. OTL 내가 이번 기수 진도의 일본어를 독학해서 다음 기수부터 같이 수업 듣게 하는데 진심이다. 요가로 풀고 온 스트레스가 다시 쌓였다.
잠깐 만났던 사람이 화이트데이에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근본 있는 초콜릿을 좋아한다며 선호사항을 밝혔다. 사실 아무 초콜릿이나 먹는데 선물 받을 때 수제 초콜릿 말고 고디바 같은 세계 O대 초콜릿 등 전통과 역사 있는 해외 브랜드 초콜릿을 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동네 베이커리에서 빵 사 먹는 것을 좋아하고 초콜릿 가게도 거리에서 갈 때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직접 내부 인테리어, 재료 등에 대해 쓰여있는 것, 사장님의 느낌, 직감 등에 기반해 고른 곳이고 한 번 먹어보고 별 탈이 없는 곳만 반복해서 가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는 어떤 초콜릿집에서 산 초콜릿을 먹기가 싫었다. 어떤 재료를 쓰는지도 모르고, 아무튼 확인되지 않은 음식에 예민한 편이다. 선호사항을 밝혔는데도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겠다고 다시 말했다.
화이트데이 전에 헤어졌지만, 헤어진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내 특성을 고려하기보다 내가 싫어하는 것에 천천히 익숙해지라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내가 스펙트럼인이라는 것도 알았다. 좁고 사람 많은 골목에 가면 정신이 없다고 말했는데, 불편한 것도 접하면서 익숙해지도록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식이었다. 물론 가면 갈 수 있다. 30년 넘는 인생동안 나름의 데이터로 굳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안 가겠다는 뜻이었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에게 계단과 언덕이 많고 배리어프리(barrier-free)하지 않은 장소를 가보면서 익숙해지라는 것과 비슷한 말이다. 가면 갈 수 있겠지만, 휠체어로 다니기에 불편하니까 굳이 다른 선택지가 있으면 그런 장소를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때 배려는 익숙해지도록, 혹은 그 장소에서 다니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다른 장소에서 약속을 잡는 것이다. 오늘 일본어 교재 사건을 겪고 그 사람을 잘 정리했구나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는 숫자의 모양을 읽고 단기적으로 기억하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중국어 공부는 여러 번 시도하다가 놓았다. 한자를 외워도 오래 기억하지 못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모양들을 외우고 수업을 따라가느라 애쓰고 싶지 않았다. 물론 부서원 모두에게 이야기를 한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너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꿔 말하면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내가 자라면서 힘들었던 일도 불친절한 친절 때문인 적이 많았다. 균형 감각이 그렇게 좋지 않고 고소공포증도 있는데 , 스키는 그렇게 배우는 것이라며 아버지가 스키장의 중급 스키 코스에 바로 나를 떨어뜨려 놓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일자로 수직 하강했고 평지에 내려와서 어떤 사람을 들이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스키를 타지 않았다. 상의 없이 골프 연습장을 등록해 놓고 골프채와 가방까지 사서 락카에 넣어놓은 후 이제부터 그 연습장에 다니라고 문자로 통보받은 적도 있었다. 스키와 골프,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시키는 것, 일본어를 배울 생각이 없는데 일본어 교재가 책상에 배달 와 있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사주겠다고 하는 태도. 이런 태도가 타인을 힘들게 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배려이고 성숙한 사랑의 방식이다. 선물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좋아할 것 같은 것을 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잠시 내려놓는 태도가 필요하다. 타인에게 어떤 것을 해주려거든 아주 잠시라도 나를 잊고 온전히 그 사람이 되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