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의 컬렉션이 통째로 버려졌을 때
사무실의 한 코너에 있던 나의 카페 종이컵 컬렉션이 몽땅 사라졌다. 출근을 했는데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뭐가 달려졌을까 생각하다가 사무실 한 코너의 나만의 아티스틱(artistic)하고 아스피적인 면모를 드러내놓았던 컬렉션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멘탈이 붕괴되기 시작됐다.
삭막한 사무실에서 하나의 숨 쉴 틈, 나만의 행복한 추억과 시간을 모아놓은 것,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로고와 그림들, 센스 넘치는 작명의 카페 이름이 새겨진 종이컵들, 검은색과 흰색, 진한 녹색을 균형감 있게 지그재그 배열로 진열해 놓은 나의 작은 건축물들로 이루어진 도시, 나의 창의성과 독특함, 나만의 작고 완벽한 세상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스피의 컬렉션을 건드리면 아주 큰 문제가 생긴다. 통제불가능하고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이들만의 완벽한 세상에 균열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 해센스, 특정한 것들을 일단 모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의 이 작은 세상이 온전하면 된다, 아스피에게 컬렉션이란 이들을 멀쩡하게 기능하게 하는 정신적 안전판이라고 썼다. 2023년 4월 23일에 종이컵들의 사진과 함께 발행한 글에 쓴 내용이다. 그 이후에 하나의 카페로고 종이컵을 더 진열했고 5개의 건축물들이 책상 위 회색 서랍 위의 도시에서 완벽하게 아름다운 세상을 구축하고 있었다. 부장님이 나의 도시에 호기심을 가져서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해드렸다.
하나하나의 컵이 다 의미가 있고 아름답다면서 나의 도시에 찬사를 보내고 가셨다. 인정받은 도시였다. 그런데 그 건축물들이 어느 월요일 아침 싹 밀려있고, 회색 콘크리트만 덩그러니 바닥을 드러냈다. 건축물들이 사라진 도시, 삭막한 회색, 창의성이 사라진 책상, 나만의 색깔이 없어진 자리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왼쪽으로 시선을 두고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마음에서 올라오는 흐뭇함과 안정감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회색 밑바닥을 바라보며 상실감과 옅은 분노, 불안감을 느껴야 한다. 나의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예기치 못한 변화가 생기면 자폐 스펙트럼인들은 힘들어한다.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드라이기를 쓰고 드라이기의 방향을 반대로만 꽂아 놓아도, 재빨리 원래 방향대로 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데, 내 컬렉션이 몽땅 사라진 기분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성인이니까 내 작고 완벽한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도 비교적 차분한 상태처럼 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의 세상이 붕괴된 것은 또 다른 세상이 열리기 위함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다. 옅은 분노와 슬픔이 어느새 큰 분노와 애도로 번질지도 모른다.
내 컬렉션이 사라진 것에 대해 사무실에서 가깝다고 느끼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오전 중으로 원인을 찾아냈다. 청소 용역하시는 분이 버렸다고 하기엔 책상 위, 그것도 책상 위의 탁상 위에 있는 각기 다른 로고가 새겨진 정교하게 배치된 5개의 빈 종이컵이 사라진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에게 억한 심정을 품은 내부 직원이 버린 것은 아닐까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결론은 청소 용역 하시는 분이 버렸다고 한다. 연락처를 받아서 직접 통화를 했다. 직원인데, 종이컵들을 버렸냐고 여쭈었다. 버렸다고 한다. 어떻게 버렸는지 상세하게 답변을 들었다. 찌그러뜨려서 종이 버리는 곳에 버렸다고 한다. 그렇다. 내 세상, 내 건축물, 나의 행복한 시간, 추억, 힘들었던 시기 나를 지켜주었던, 나와 상반기를 함께했던 컵들은 그렇게 찌그러뜨려지고 버려졌다.
아주 조용하고 차분하게, 앞으로는 책상 위에 있는 것들 아무것도 손대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으시길래, 사과를 받고 싶다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걸로 됐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에서 보내야 한다. 내 세상이 붕괴된 일, 내 마음에 혼란이 생긴 일, 아스피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누군가가 한 일은 그렇게 공기 중으로 흩뿌려졌다.
누가 봐도 범상치는 않다. 예술을 쓰레기로 볼 수는 없다. 올해 초부터 모으던 컵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모르고 버렸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해 보이는 내 세상에 흠집을 내고 싶었다는 상상을 해본다. 사무실 책상 나의 왼쪽 코너에는 책꽂이에 내가 읽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있고 몇 가지 영양제와 MCT 오일, 치약, 머그컵, 유리컵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 바로 앞에 회색 탁상용 여닫이 서랍 두 개를 놓았고, 그 위에 내가 좋아하는 카페들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을 세워놓았다.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내 세상, 경제/경영, 신화, 인문서, 자기계발서, 주식서적들을 읽고 사무실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일을 하며 영양제들을 챙겨 먹고 카페로고가 새겨진 컵들을 수집해 한 구석에 전시해 놓는 삶에 조금의 흠집을 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본다. 작고 완벽한 세상을 구축하고 그 세상을 늘 온전하게 유지하고 싶어 하는 나의 뇌신경학적 불안정성과 나의 불안정했던 회사생활을 아주 완벽하게 감추는 나의 예술 세계에 “모르고 버렸다”라는 말로 쉽게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작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간 것을 아닐까.
편안하고 완벽해 보이는 삶을 사는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성(사무실 칸막이 명패에 사진이 붙어있다)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쾌함을 그렇게 드러낸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주머니에게 두 번 전화를 걸었고, 직접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내 건축물들을 파괴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 사과해 달라는 말을 두 번 하기 전까지 사과를 하지 않으셨지만, 결국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걸로 그렇게 넘어가려고 한다.
하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다른 세상이 구축되기 위함이라는 것을, 내 세상이 무너져도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며 또다시 작은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아스피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침범과 괴롭힘이 누군가에 의해서 행해져도 “keep calm and carry on”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되뇐다.
나는 성인이니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때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용서하고 넘어갈 수는 있는 사람이니까. 그저 다시 나의 작은 세상을 구축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번에는 더 튼튼하게, 아무도 손대지 못하도록 강력하고 치밀하게 나만의 정신적 안전판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