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찾은 답과 결론
착한 남자를 좋아한다. 내 머릿속의 착한 남자를 굳이 정의하자면 MBTI 가운데 글자가 대문자 T가 아니라 F에 가까운 공감능력 있고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이다. 그런 남자는 감정적인 공감을 잘해주니까 처음부터 착하게 느껴진다. 쓸데없이 때아닌 팩트 폭격을 해서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착한 남자는 최소 사귀기 전까지는 확실히 착한 여자인 나를 알아본다. 그래서 사귀는 것까지는 쉬웠다.
착한 남자인 그들을 좋아하다 보니까 많이 티를 냈다. 내가 더 좋아하니까 식당도 내가 찾고, 밥값도 많이 냈다. 나는 그를 위해 시간을 늘 내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나를 우선순위 하위로 내려보냈다. 하고 싶은 것 먼저 다 하고 남는 시간에, 또는 먼저 잡은 시간 약속을 굳이 바꿔 본인한테 편한 시간에 나를 만나려고 했다.
내가 처음부터 좋게 생각했던 착한 남자는 결국 나한테 나빴다. 자기 입으로 나이스 가이, 착한 남자라던데, 그들은 나한테 결코 착하지 않았다. 나한테 미친 듯이 빠져들어 속앓이 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고, 그래서 노력해서 내 마음을 얻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먼저 좋다고 마음을 다 드러내니 그들은 내가 진짜로 100% 빠진 것처럼 착각했다.
착한 남자가 좋긴 하지만 나쁜 남자처럼 단기간에 빠질 수는 없다. 공감능력 좋은 “착한 남자”가 수려한 표현력으로 마음에도 없는 애정표현을 나한테 쏟는다면 나는 당장 눈앞에서 그래 보이는 것보다 깊게 빠지진 않을 것이다. 착한 남자가 여사친들을 아주 편안하게 만난다거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고, 심지어는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후에 원래 나를 만나기로 했던 날에 여사친을 만나서, 난 이런 것 참고 연애할 생각이 없다고 최후통첩을 날리면,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너무 빠져서 질투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그 정도는 아니다.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굳이 그런 사람과의 연애 자체를 피하는 것이다. 세상엔 연애할 때 여사친들을 따로 안 만나는 남자들도 널리고 널렸으니까.
착한 남자가 좋으니까, 오래 함께하기에 좋을 것 같은 남자니까 착한 남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금 안 끌리는 것 따위는 감수하고서라도 그들의 “착함”에 베팅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니 그래서 더, 착한 남자가 나한테 보이는 나쁜 행동을 눈감아 줄 리 없다. 그래서 “착한 남자들”을 쉽게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착한 남자들은 헤어지고 나서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나쁜 남자라 일컫는 남자는 사실상 악한 남자에 가깝다. 나와 사귈 때 초반에 보이는 행동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행동(그리고 결국 나에게도 머지않아 드러날 행동 패턴)이 판이하게 다르거나, 나르시시스트 등 인격장애에 해당하는 남자를 나쁜 남자라고 일컫는다. 나쁜 남자는 나를 좋아한다. 나쁜 사람은 자기를 잘 받아줄 것 같고, 많이 이해해 줄 것 같고, 무리한 행동과 이상한 요구마저 문제제기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점찍는다.
착한 남자를 의도적으로 택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생에서 나쁜 남자와도 꽤 엮여봤다. 연애를 처음 시작하던 아주 나이브했던 20대 초의 나,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해볼만큼 해본 근래 몇 년 새의 내가 그랬다. 그 중간에는 딱 원하는 것이 있어 내가 탐탁지 않았던 남자들이나 그렇게 속이 넓지 않은 남자들과는 엮였어도 딱히 나쁜 남자와는 엮이지 않았다.
나쁜 남자와 엮였을 때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너무 많은 인내심으로 배려심 없는 행동을 처음부터 이해해 줬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나쁜 사람들은 흡혈귀처럼 이해심과 배려심 많고 공감능력 높은 에코이스트적 사람들을 골라내고, 그들의 피를 쪽쪽 빨아먹는다. 내가 보인 이해심에 내가 결국 당했다. 항상 그것이 원인이었다.
나쁜 남자의 나쁜 행동에 끌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들도 그런 나를 알았다. 내게 다가왔던 나쁜 남자들은 과도했다. 그리고 그 과도함에 잠시 판단력이 흐려졌다. 과도하게 여자를 대하는데 능숙하다거나, 과도한 친절함으로 본질을 감췄다. 목표지향적인 나쁜 남자들은 그들이 착하다고 판단했던 여자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짧은 기간 나에게 정말 착했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기에는 나쁜 남자가 나는 너무 익숙했다. 나쁜 남자와 엮이면 어떻게 되는지 뼛속까지 새겨져 있다. 나쁜 남자 냄새가 나면 나는 대놓고 물어본다. “넌 스스로를 좋은 남자(나이스 가이)라고 생각해?“라고. 그런데, 이 질문이 나오면 이미 나쁜 남자다. 왜냐면 돌이켜보면 좋은 남자에게는 한 번도 이 질문을 한 적이 없다.
나쁜 남자들은 그들에게서 풍기는 나쁜 남자 스멜에서 주변을 환기시키기 위해 탐나는 약속들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저녁 늦은 시간에 자기 직장이나 집 근처에서 만나면 차로 데려다주겠다. ’ 그런데 좋은 남자는 그런 약속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오기 편한 적당한 곳에서 만난다. 나쁜 남자들은 약속을 많이 한다. 연애를 길게 끌기 위해 나중에 좋은 것을 하자는 언어의 덫을 놓기도 하고, 연애를 지속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알아서 결혼을 서두르기도 한다.
결론은 이 글의 착한 남자도 나쁜 남자도 모두 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평범한 남자를 만나면 된다. 여기서 정상이란 그 사람의 가장 무리한 요구나 초반의 가장 이상한 행동이 사회의 통속적인 관념의 범주에 들어오냐이다. 스스로도 싸한 느낌을 받지 않고,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게 물었을 때 ’그건 너무 일반적이지 않다. ‘라는 답변이 돌아오지 않으면 된다.
더 쉽게 말하면 혹할 것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혹할 것이 없는데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그리고 서서히 스며드는 사람을 만나면 내게 결국 나쁘게 할 착한 남자도, 긴 인생에서 내게 찰나에만 착할 나쁜 남자도 피할 수 있다.
너무 착해 보이는 남자나 “너 좋은 남자야?”, “너 나쁜 남자야?“라고 묻고 싶은 생각이 스치는 생각이 드는 남자는 모두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친구에게 초반부터 ”이 남자 너무 착해. “, ”착해서 만나고 싶다. “라고 말을 하게 된다면 경계해 보자. 왜 그가 당신에게 그렇게 착하게 느껴지는지, 그가 일부러 착한 모습만 부각하는 것은 아닐지, 당신의 마음이 끌리지 않는데 착한 그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환상으로 그를 택하는 것인 아닌지.
“너 스스로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남자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당신의 무의식이 이 위험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당신의 욕망을 정조준해 경고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