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솔직하고 당당해져야겠다는 결심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을 하는 나를 내가 사랑할 수 있는지이다. 일단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어야 어딜 가든, 무얼 하든 행복하고 당당하다.
결혼까지 생각하기에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과 가치관이 본질적으로 다르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가 채워줄 생각이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이 채워주기 어렵다고 결론 내리고 본격적으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만나보는 것을 시도했다.
5달 정도 동안 3명 정도를 진지하게 알아가 보고 2명과 사귀는 관계까지 관계를 진전시켜 봤다.
예상했던 대로 사고방식이 한국남자들보다 훨씬 더 잘 맞았다. 나는 그들을 완전히 이해해주지 못했을지언정, 그들은 내 자유를 완전히 존중해 줬다. 아주 조금도 통제받는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만났던 사람들이 정서지능이 높아서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도 잘해줬고, 선 없는 농담도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어서 재밌었고, 보통의 한국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보다 대화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좋았다.
“그런 것까지 이야기해?”란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외국남자들과는 그런 것까지 모든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잠시나마 그 누구보다 편하고 가까운 사이처럼 느껴졌다. 절친 오빠랑도 아무 선 없이 모든 농담과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그보다 더 깊이 있게 내면의 이야기도 나누고, 평가에 대한 두려움없이 다크한 유머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인을 만나면, 특히 직장 분위기나 하는 일이 비슷하면 말 안 해도 통하는 부분들이 있고, 성장환경과 문화가 비슷한 데서 오는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정서적인 공감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외국 남자들과 교류했던 부분이 훨씬 더 깊고 만족스러웠다.
그 정도의 깊이로 더 짧은 시간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이야기든 해도 괜찮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체면치레하는 문화도 짙고, 조금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아예 문 안 열어주려고 처음부터 대문에 “이런 이런 사람은 안됩니다. ”라고 붙여놓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뜯어보면 완전무결한 가정도 없고, 정서적으로 100% 온전하고 성숙한 사람도 잘 없는데,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나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줄 지보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면 아예 내 삶에 들이지 말자는 사회적인 암묵적 약속이 생겨나고 있다. 딱 그런 풍조를 대변하는 말이 육각형 남자, 여자라는 말이다.
물론 서양남자들이나 외국남자들도 똑같이 까다롭고, 불안하고, 예민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 내가 알아갔던 남자들은 대체로 더 오픈마인드였고, 내가 가진 내면적인 자질들을 더 중점적으로 보고 높이 평가해 줬다.
실제로 한 4-5개월 동안 이들과 맺었던 관계와 교류를 통해 여러 가지 면에서 내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만나면서 훨씬 더 편안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지내는 내 자신이 좋았다.
일단, 내 외모를 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되었다. 외국 남자들도 선호하는 외모가 있고 물어보면 이야기도 해주지만, 관심 있거나 만나는 여자에게 절대 자기가 평소 좋아하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가진 외모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칭찬해 준다.
자연 곱슬이라서 가만히 두면 옆머리가 알아서 웨이브 지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온 남자가 웨이브 지는 옆머리가 예쁘다고 했을 때부터 난 더 이상 매직과 펌을 안 하기로 했다. 더 이상 미용실에 돈 쓰면서, 머릿결 상하게 하지 않고 그냥 길러서 자연 웨이브를 살리기로 했다.
만났던 미국 남자도 눈, 코, 입술 하나하나 예쁘다고 만날 때나 사진 보내줄 때마다 얘기해 주니까, 세뇌당하듯이 예쁘구나, 절대 50대 돼서 쳐지기 전까지는 성형이나 시술 같은 것으로 얼굴에 손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만났던 한국남자는 이목구비 예쁜데, (그때는 피부가 안 좋았어서) 피부 관리하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했었고, 보통의 한국남자들은 그냥 예쁘다는 말까지만 했었는데,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칭찬을 들으니까 자존감도 구체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물질적인 것에 관심을 덜 두게 됐고, 쇼핑에 돈도 덜 쓰게 됐다. 유럽이나 미국사람들이 생각보다 칼뱅주의와 청교도주의 영향으로 검소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명품에 관심도 없었고, 명품 두르고 비싼 차 타는 것처럼 겉치레에 돈 쓰는 것을 허영심 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의 영향으로 돈자랑 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보는 문화가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예쁜 데 가서 인위적인 사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허영심으로 생각했다.
원래도 보여주기식에는 거부감이 있고 수수한 편이었지만, 예쁜 것은 예쁜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서 명품에 관심이 조금 있었는데, 연인이 오히려 안 좋게 볼 수도 있구나 싶으니 관심이 자연스럽게 줄었다. 그리고 뭘 입어도 칭찬해 주니까 새 옷을 사는데 그렇게까지 돈을 안 쓰게 되었고, 당분간 있는 옷 중에서 입으면서 검소하게 지내자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자기주장 뚜렷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원래도 굉장히 솔직하고 개방적인 편에 속했지만, 어딜 가나 의식적으로 더 나를 드러내 보기로 했다. 직장에서는 일이나 내가 열정 있는 분야에 나를 더 보여주고, 모임 같이 더 비공식적인 곳에서는 타인에게 비추는 모습이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나를 더 최대한 완전히 드러내는 연습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도 전에 비해 내 원래 모습과 경험, 생각을 더 편안하게 드러내게 되었는데, 마음이 자유롭고 사람들이 내 바운더리로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나를 드러낼수록 내가 있는 공간이 집처럼 편안한 진짜 내 공간이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하기로 한 것은 외국남자와 연애를 잘하려면 스스로에 대해 더 완전히 편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대하는 개방성의 정도와 어느 수준까지 친밀해지는데 걸리는 속도가 더 높고 더 빠르다.
내가 나를 편안하게 생각하고 자신감이 있어야 어딜 가든, 누굴 만나든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당당하게 소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할 수 있다.
이미 난 작년부터 나를 많이 드러내는 편이었고, 그래서 존재감없이 조용했던 대학생 때보다 인기도 많아졌지만, 앞으로는 불호자가 생기는 수준까지 더 개방적이게 되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아, 얘는 이런 면이 나랑은 안 맞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심어줄 수 있을 정도로 나를 드러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자기주장이 있는 편인데, 나를 빠르게 드러내지 못해서 자기주장을 때맞춰 못했을 때가 있었고 그게 결국에 나중에 탈이 났다. 그때그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타인의 판단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