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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Mar 26. 2024

인스타그램을 지웠다

선택과 집중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전남친의 피드를 아무 의미 없이 방문하거나 굳이 그의 스토리 업데이트를 알림 받고 싶지 않아서 지웠다.


팔로우를 끊는 것 역시 억지스러운 행동인 것 같아서 굳이 말았다. 그가 언젠가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 나를 먼저 끊으면 나 역시 끊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무관심해서 나중에 내가 그 사실도 몰랐으면 좋겠다.


사실 엑스뿐만 아니라 모두의 스토리 업데이트를 보고 싶지 않다. 원래도 난 게시물이나 스토리를 자주 올리는 사람들은 숨김 처리해 놨었다.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일수록, 고상한 취향을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왠지 모를 피곤함에 멀리하게 된다.


소박하고 조용한 내 인생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만족스러운데, 인스타그램 속에는 마치 나는 놓치고 있는 대단히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세상이 있는 것 같다. 몰라도 되는 누군가의 행복의 원천이 클릭 한 번이나 스크롤 한 번으로 내 삶에 끼얹어지는 게 달갑지 않다.


책스타그램과 건강식단과 관련된 계정을 운영했어서 대부분의 팔로워나 팔로잉하는 사람들은 다 그 분야의 게시물만 올렸고, 좋은 영향만 주고받았다.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은 현실세계에서 언젠가 스쳤던 지인들 때문이다. 일 년에 안부 한 번도 따로 묻지 않고, 미치지 않는 이상 개인적으로 카톡 하지도 않을 완전히 과거 속의 인물들. 그리고 머지않아 과거에 스쳤던 누군가가 될 현재에 간혹 마주하는 지인들.


그들의 인생의 단편이 내 인생으로 흘러들어와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막상 지우니, 왜 더 어릴 땐 인스타그램 때문에 영향받고 고통받았나 지나간 시간과 내 판단력이 야속하기만 하다.


언젠가 직장동료의 사내커플인 여자친구가 나를 팔로우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모르는 사람인데 나를 팔로우하길래 나도 맞팔로우를 했다. 그녀는 남자친구한테 받았다며 명품가방과 같은 비싼 선물들을 인증하고, 친구들과 호캉스 하는 사진도 종종 올렸다.


그때 나도 예쁘게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내 연애에서 너무 행복했고 내가, 우리가 주인공이었다. 운동화 끈 풀리면 무릎 꿇고 앉아서 묶어주고, 새 구두 신고 와서 뒷발목이 까지면 밴드 사 와서 붙여주고, 그가 생일선물로 사줬던 운동화를 신고 같이 시장 갔다가 똥 밟아서 길거리에서 울어버렸는데 운동화 가져가서 화장실에서 그것까지 씻어줬다.


진중하고 한결같던 그에게 그렇게 공주처럼 대접받았으면 행복에만 겨워하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만족했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때로 비교했다.


월급 뻔히 아는데, 명품 사준다고 직장동료의 재력에 시기심 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저게 평균인가? 원래 저렇게 대접받아야 되는 건가 싶었다.


결국엔 모르는 사람 먼저 팔로우하고 자꾸 내 스토리 염탐하는 그녀를 먼저 팔로우 끊어버렸다.


애초에 그녀의 피드를 아예 안 봤으면, 내 연애와 내가 살아왔던 인생을 기준으로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감에만 집중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가끔씩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들 중에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다. 내가 제일 열심히 했다. 수익은 미미할 지언정 크리에이터를 내 직업 중 하나로 생각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아무리 다른 일이 많고 피곤해도 시간을 내서 게시물을 올렸다.


그것조차 쉬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을 즐겁게 하려면 내가 올리는 주제에 진심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라서 쉬기로 했다. 그리고 팔로워와 내 게시물의 노출을 늘리기 위해 해야 하는 부가적이고 기계적인 노력(다른 사람들 피드 확인하고 좋아요 하기, 댓글 달기 등)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돼서 선택과 집중을 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맡은 일, 투자와 투자 공부, 나를 위해 하는 독서와 글쓰기, 마냥 즐거워서 하는 취미, 휴식, 결혼할 사람 찾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꽉 차서 스쳐갔던 지인들의 근황과 그들의 자기애를 염탐하는 것을 인생에서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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