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센스 Mar 28. 2024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 대하여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었다…… 생각보다

나는 그를 마침내 차단했고 소심한 복수를 했다. 차단하고 나서 그가 선물해 줬던 음료쿠폰들을 취소/환불 처리했다. 취소하면 선물해 준 사람에게 환불된다. 전에도 굳이 헤어지고 나서 만날 때 받았던 선물을 쓰기 싫어서 취소처리하고 선물함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지만, 주었던 마음마저 환불받는 느낌에 그가 기분 상해할까 봐 말았다.


그런데 기분이 그래서 기분대로 그냥 취소해 버렸다. 나한테 쏟기로 약속했던 마음도 혼자 마음대로 취소한 마당에 덩그러니 남은 쿠폰들도 직접 취소해 줬다. 카카오톡도 차단했으니 그가 왜 취소했냐는 말을 한다고 해도 난 읽지 않을 수 있다.


최소 당분간은 연락하고 지내지 않기로 했는데, 행정적인 일 때문에 연락이 몇 번 왔다. 사실상 굳이 연락할 필요는 없었다.


집에 놓고 온 물건을 보내주기로 한 것이었는데, 시간 될 때 그냥 보내주면 됐다. 보내면 우체국에서 알아서 연락이 와서 실시간 배송상태를 업데이트해 줄 필요는 없었다.


연락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소포를 언제 보내주겠다, 소포를 보내려고 했는데 주말에 안 열어서 월요일에 보내겠다, 소포를 보냈다, 소포가 오늘 도착할 것이다.


이런 내용으로 각각 따로따로 열흘에 거쳐 몇 번 연락이 왔다.


나는 글을 써서 발행하는 것으로, 그리고 나가서 걸으며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결론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려고 애썼다. 만났을 때 불편했는데, 헤어지니 편안한 것으로 보아 분명 성격이 안 맞았는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관계를 꾸역꾸역 이어나가려고 했던 스스로에 대해 연민을 가지며 다음에 맺고 싶은 인연의 성향과 특성에 대해 생각하는데 몰두하고 싶었다.


내가 원했던 것은 완전한 끝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팔로잉을 끊는 대신 인스타그램을 삭제했고, 핸드폰 속의 전자 형태로 된 파일도 모두 삭제했고, 카톡은 즉시 나갔고, 그가 카톡을 보내면 Thank you라는 아주 짧은 메시지로 최대한 빨리 대화를 끝낸 후 다시 즉시 나갔다.


내게 필요한 물건들이라 받아야 할 필요는 있었지만, 당장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서 오매불망 기다리지는 않았다. 내가 원했던 단순하고 담백한 이별의 후속조치는 마지막으로 통화하면서 내 물건을 보내주기로 했으니까, 일이 주일 내로 나에게 보낸 후 특별히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포가 오면 마음이 다시 조금 내려앉겠지만,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집 어느 구석에 방치해 놨다가 조금 기분이 활기찬 날에, 후다닥 뜯어서 정리한 후 다시 그의 이름으로 생성된 폴더는 휴지통으로 보낸 후 휴지통 비우기를 할 생각이었다.


헤어질까 봐 불안했던 마음, 그리고 결국 끝을 통보받던 마음을 추스르는데만도 적당한 시간과 적절한 회피가 필요했다. 며칠에 한 번씩 이제는 확실히 불편한 그에게서 행정적인 메시지를 받으며, 하루의 나머지가 추욱 가라앉기를 원하지 않았다.


메시지에는 핵심내용 외에도 그의 과도한 친절함이 담긴 쿠션어로 된 인트로와 하고 싶은 말은 못 참는 장황한 아웃트로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테면


“헤이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핵심 내용). ”


와 같은 형태였다.


헤이로 시작하고 한 줄 띄고 핵심 내용이 있어서 내용을 읽으려면 굳이 카톡에 들어가 그의 메시지를 누르는 수고를 해야만 핵심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뻔히 그 (핵심 내용) 때문에 연락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들어가서 읽어야 하는 귀찮음과 긴장감이 섞인 정신노동을 해야만 했다.


“고마워. “라고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의지가 없는 담백한 인사말로 답변을 보내면,


”Have a great day!(좋은 하루 보내!)“라는 식의 아웃트로를 작성해 보내는 바람에, 나는 이미 그 때문에 하루가 축 가라앉았는데 “You, too(너도)”라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치레를 했어야 했다.


내가 잠시 좋아했던 미국식 과도한 친절은, 햄버거와 핫도그만큼이나 담백하지 않았고 그가 즐겨 마시던 코코넛오일이 들어간 제로펩시망고만큼이나 입안에 인위적인 기름기를 남겼다.


그는 월요일에 소포를 보내겠다고 했고, 때마침 월요일에 우체국에서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그에게서도 메시지가 왔다.


그날은 카페인을 과다하게 섭취한 탓인지, 일요일에 갔던 트레킹이 즐거웠던 탓인지 비슷했던 그의 인사-인트로-핵심 내용에 나도 고맙다는 말에, 차마 전에는 마음에 없어서 하지 못했던 말인 “앞으로 하는 일 잘되길 바라(Hope everything goes well with you). ”라는 인사말을 덧붙였다.


진짜 마지막으로 그가 연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소포가 도착하는 날 또 연락이 왔다.


“Hey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소포가 오늘 도착할 거야. “


달걀 같은 그의 얼굴이 내 핸드폰에 뜨는 진짜 마지막 순간이구나 싶었다.


행운을 바라주는 말까지 이미 전에 했으니,


담백한 나는 “집에가서 확인할게. 고마워. ” 라고 했다.


그가 ”좋은 하루 보내!” 라고 하길래


“너도, BYE. ” 라며 마지막임을 못박았다.


그런데 역시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Thank you for everything(모든 것들에 대해 고마워). 회사에서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 ”


이 지점에서 나는 기분이 묘하게 가라앉았다. 이런 쓸데없는 친절과 신경 쓰는 듯한 태도가 싫었다.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는 진짜 친절을 베풀고 싶다면, 이별 통보했으면 깔끔하게 핵심 내용만 말하고 이런 선 넘는 가짜 친절은 빼야 하는 것 아닌가?


기분이야 어떻든 미국식 친절에 친절함으로 대꾸해야 하는 것 정도는 아는 매너 있는 나는 ”Thank you. “라며, 소포에 너네 집 주소 있냐고 네가 빌려 준 책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는 주소가 있다고 했고, 다시 친절하게 주소를 써서 보내줬다.


원래는 당장 물건을 보내며 이별에 동반되는 후속조치를 하는 그 감정을 회피하고 싶어서 책도 당분간 안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그의 친절에 나도 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소를 알려주더니 또다시 메시지가 와서는 자기는 읽을 시간 없어서 더 읽고 싶으면 가지라고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나중에 서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주겠다고 했다.


그 책을 당장 더 읽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난 아직 회피하고 싶었다. 책을 보내려면 집 어느 한 구석에서 그 책을 집은 후 가방에 챙겨서 다음 날 회사에 가져와 서류 봉투에 넣어서 그의 주소를 쓴 후 모바일로 편의점 택배를 예약한 후 가까운 편의점에 가서 무게를 달아 위탁해야 하고, 그동안 머리의 어느 한 구석을 그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야 하는데, 머릿속에서 완전히 그에 대한 생각을 밀어내는데 방해가 되는 일련의 절차였다.


그래서, 소포가 오는 날 역시 두려워했고, 뜯는 것을 회피하려고 했다.


아무튼 모든 필요한 대화를 마쳤으니, 더 이상은 그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혹시나 시답지 않은 내용으로 카톡이 올 상황을 대비해 그를 차단했다.


집에 도착하니 삐뚤빼뚤한 귀여운 글씨로 그의 주소와 내 주소를 적은 택배가 와있었다.


몇 시간을 방치하다가, 그날이 저물기 전에 일단 뜯었다. 언제라도 결혼할 사람 찾아서 진지한 연애 시작할 생각뿐인데, 끝난 인연에 대한 정리를 더 길게 끌고 갈 순 없었다.


소포에 쪽지가 들어있을지 모르겠다고 일주일 동안 문득문득 생각했는데,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종이상자의 테이프를 뜯고 열자마자 곱게 접은 쪽지가 나왔고 노트를 북 찢은 종이에 펜으로 쓴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Thank you for everything and for loving me unconditionally(모든 것들에 대해 고맙고,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줬어서 고마워). -OO-“


이미 했던 말. 들었던 말.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의 자신감에 찬 말.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구멍이 커다랗게 뚫린 나는 만 32살, 연 34살이 되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이라고 느낄 수 있게 사랑을 베풀어봤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고, 매력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냥 타이밍이 그랬다.


고통을 일찍 알아서 그런지,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아서 그런지 인생에서 웬만한 문제와 고민을 해결했고, 내 구멍을 아낌없는 표현과 사랑으로 채워주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불편한 점도 있었고, 안 맞는 점들도 있었고, 이별을 말하기 전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모습은 너무 싫었지만, 그래도 나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


그가 못 만나겠다고 했을 때 나는 완전히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만났던 그 누구도 그 정도 확신에 찬 약속을 나한테 한 적이 없었고, 그 휘발적인 언어의 무게에 난 완전히 기댔다. 그가 했던 말들이 내게는 계속 노력하고 사랑할 원동력이었다.


약속을 믿었던 것뿐인데, 그래서 평소의 나와 달리 포기하지 않았던 것뿐인데, ”무조건적인“ 사랑의 대가는 쪽지 한 장이었다.


날 사랑해 줘서 고맙다는 종이쪽지 한 장.


만약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느 날 그동안 사랑해 줘서 고맙다는 쪽지를 남기고 떠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동안 연락하지 않아도 나중에라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도움 줄 수 있는 친구로 남기엔 그는 내게 사람으로서의 신뢰도 완전히 잃었다.


이별하던 날은 찰나의 약간의 미련에, 이직하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다시 그를 만날 생각도, 연락을 받을 생각도 없다.


지금은 카톡을 차단했지만, 전화가 오면 전화도 차단할 것이고, DM이 오면 인스타그램도 차단할 것이다.


나에게 사람은 넓은 의미의 친구와 친구가 아닌 사람으로 나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친구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신이 했던 말에 책임감이 없다면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믿을 수 없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


그의 기억 속에 내가 무조적으로 사랑해 줬던 여자일지 몰라도, 내겐 지키지도 못할 말들을 남발했던 종잇장처럼 가벼웠던 남자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리의 문제, 그리고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