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만 불러줘
어버이날에 원래 살던 동네에 가서 엄마와 동생에게 소고기를 사주고 왔는데 엄마에게 너무 행복했고 고맙고 사랑한다며 카톡이 왔다.
같이 고기 먹으면서도 엄마는 자식복이 많아서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동생은 극도로 다정하고 나는 극도로 섬세하다. 세상 다정한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엄마가 세상 섬세한 남자를 만나 딸과 아들은 낳은 결과다.
고기를 먹는데 동생이랑 내가 엄마의 접시에 구워진 고기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올려놓았다. 엄마가 말하느라고 제 때 안 먹으면, 다시 따뜻한 고기로 바꿔놓았다.
내가 고기를 잘 못 잘라서 동생이 평소에 고기 안 굽냐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평소에 밖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일이 없다고 하니 엄마와 동생이 웃었다. 엄마가 동생에게 누나가 평소엔 안 먹는데 오늘은 특별히 사주는 것이라고 한다. ㅋㅋ
동생이 자기는 어딜 가나 자기가 구워서 잘 굽는다고 한다. 남이 못 구우면 너무 답답해서 자기가 굽는다고 한다.
밖에서 고기 대충 굽는 남자나, 한 점만 앞에 올려주고 그다음부터는 각자 먹자고 하는 남자를 보다가 착착 잘 굽고 쓱쓱 잘 잘라서 종류별로 다 먹을 때까지 끝까지 접시에 올려주는 키 크고 훈훈한데 다정하기까지 한 혈육을 보니 왜 그렇게 밖에서 다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나 온 감각으로 이해가 됐다.
밥을 다 먹고 카페에 갔는데, 평소에 엄마가 좋아하는 와인도 팔길래, 엄마한테 글라스와인을 추천해 주고, 나는 동생에게 따뜻한 밀크티를 얻어마셨다. 동생은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라떼를 시켰는데, 먹어보라며 엄마와 나에게 차례로 수저를 건넨다. 기대치도 않던 다정함이 한 스푼 훅 들어와 얼어있던 마음의 한구석이 즉시 녹았다.
나와 동생은 다정함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고, 다정하지 않음에 민감하다.
몇 년 전까지 친구들에게 나의 전화번호 저장법에 이야기할 때 해줬던 이야기가 있다. 나는 가족과 친척을 빼고 거의 모든 사람 이름을 이름 석자로 저장한다는 것이다.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성+이름 OOO으로 저장했다. 어디에 소속된 누구인지 적어놓지 않아도 이름 그 자체로 그 사람을 기억하겠다는 나름의 다정한 저장법이라고 설명했다.
동생도 이OO이라고 이름 세 글자로 저장했었다. 어느 날 동생이 우연히 그것을 알게 됐는데, 동생을 이OO으로 저장하는 것은 다정하지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내 전화번호 저장법의 규칙을 깨고, 특별히 친동생만 OO이로 바꿨다.
우리는 엄마에게 OO이나 OO아로만 불려 왔지, 이OO 으로 불린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외할아버지가 항상 OO아 라고만 부르다가 혼낼 때만 성까지 붙여 OOO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들으면 눈물이 맺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집에서 늘 다정하게만 불렸고, 대부분의 날들에 다정하게만 키워졌다. 동생이랑 내가 주식으로 먹고 싶어 하는 메뉴가 달라서 엄마는 좋아하는 걸로 밥도 따로따로 차려줬고, 시험기간에는 잠들지 않게 늦게까지 같이 공부하는데 옆에 있어줬고, 놀이공원에 가면 더 빨리 새로운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엄마가 먼저 가서 줄을 서줬다.
회사에서 해가 바뀌어 부서 사람들이 바뀌었는데 일도 잘되고, 이 사무실에서 일한 지 5년째에 마음이 제일 좋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전에는 못 느끼던 다정함이 공기를 감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혀 끝과 몸에 밴 다정함을 알아주는 다정한 차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이대리님이라는 내가 뼛속까지 싫어하던 호칭대신 내 이름을 넣어 OO대리님이나 OO대리, OO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부서에 생겼다.
그냥 자리에서 조용히 일을 하고 있는데, 나를 지칭하며 OO대리가 어쩌고 저쩌고 ~~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마음에 온기가 퍼진다.
지난 2월에 4년 동안 운동을 가르쳐줬던 다정하고 친절했던 필라테스 선생님이 아기를 가져서 그만두셨다. 조금 쉬다가 오늘 집 근처에서 새로운 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고 등록하고 왔다. 선생님이 등록 후에 배정되는 시스템이었는데, 친절하고 다정하고 조곤조곤 말하는 선생님으로 배정해 달라고 했다.
내가 같은 운동을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했던 것은 선생님이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해서였다. 수업시간에 언제나 본인보다 회원인 나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서였다.
친구랑 통화하면서 운동을 등록하고 왔다고 하니까 “그래. 운동 좀 하고 살 좀 빼” 라는 말 대신 “지금도 완벽한데, 더 완벽해지려고?” 라고 한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내가 나에게 다정한 것보다 더 나에게 다정하다. 그래서 점점 내가 나에게 더 관대해지고 다정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늘 이런 다정함이 너무나도 필요했고 다정함이 주는 온기를 언제나 원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엄마처럼, 동생처럼, 내 친구들처럼 조금만 더 다정해지자고 다짐한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하루하루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