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독서모임에서 거의 매주 보던 분이 나보고 얼굴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전에는 조금 불안해 보였는데 연애하더니 안정되고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마음 편안하게 해줘서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다. 그래서 브런치 글의 좋아요도 줄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에 관심이 많지 행복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도 안정되고 행복한 지금과 요즘 내가 쓰는 글이 나는 더 좋다.
전에도 연애 초반에 안정감을 느꼈던 적은 있었다. 꽤 있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고 인정하고 나와 미래도 바라보며 만난다는 것을 아는 관계에서 그랬다.
하지만, 지금 느끼는 안정감은 차원이 다른 편안한 안정감이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확신,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더해 이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불안감마저 잠재워진 평온한 안정감이 든다.
전에는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이 연애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그래 길게라도 만나보자 하며 사귄 날들을 카운팅 하고, 그 숫자가 올라가는데서 오는 성취감으로 고통을 감내했는데, 지금은 숫자는 그냥 참고 정도만 한다.
오히려 우리가 사귄 날들의 숫자가 우리의 깊이를 대표해주지 않는다고 느낀다. 원래부터 비슷한 구석이 많은 탓인지, 자연스럽게 서로를 드러내며 지내게 된 탓인지, 그냥 서로를 어느 날 내게 찾아온 강아지나 고양이 대하듯 받아들이고 품어주려 하는 탓인지 함께한 날들의 숫자는 무의미할 정도로 원래부터 서로의 사람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내게 과거에 오래 만났던 사람에게 안정감 느꼈냐고 물었다. 나는 편안했지만 이런 종류의 안정감은 아니라고 했다. 이런 안정감은 처음이라고 했다. 안정감이 기간에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안정감은 연인이 나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인정받을 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아주 사소하게 불안했다가, 그가 내게 문득 전화를 걸거나 혼자 쉬고 있는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걸 보자 사소한 불안이 아주 큰 안정감으로 덮어씌워졌다.
대단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라고 인정받는 것이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식당에서 피자를 손으로 먹는 것을 보고 '이 여자는 찐이네. '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안 그러면서 내숭 떠는 여자를 정말 싫어하는데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손으로 거울에 잠시 앉은 모기를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좋게 느껴졌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는 밖에서 이렇게 안 잡는데 오빠가 모기 물리는 것을 극혐 하니까 그렇게 잡아 죽인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 이상형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스타일이다라고 말해주는 것도 물론 안정감이 들게 하지만 그냥 이런 사소하고 편안한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좋아해 준다는 것에서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안정감이 든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부끄럽고 껄끄러워하는 내 모습조차 애완동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듯 사랑스럽고 귀엽게 봐준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리고 내게 내 행동 하나하나를 이야기해 줄 때, 그동안 연애를 하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사랑을 알게 되었다. 사랑받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