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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l 05. 2024

온전히 집중받는 기쁨

사랑을 잘하는 것은 집중을 잘하는 것

연애를 잘한다는 것은 집중을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유튜버이자 요즘 인생 멘토로 삼은 사람 중 한 명인 섹시한 자존감 데이먼이 그랬다.


연애를 하면 늘 그 사람의 핵심 자질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닮아가게 된다. 꽃을 물끄러미 보며 예쁘다고 말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 나도 잠시 멈춰 서서 꽃을 바라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불협화음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불협화음으로 전개되는 음악을 감상할 때 영감을 받는 사람이 된다.


내 연인은 현재에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늘 감정에 충실하고 현재에 충실하다.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 순간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무엇을 산다.


그와 시간을 보낼 때 나는 그의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된다. 내가 그 사람의 무엇이 된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그의 연인이 된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감사하게 느껴진다.


그와 함께하며 집중력이 높아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언제 무엇에 집중할지 알고 순간순간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하는 날 그의 옆에서 늘 같은 시간에 설정해 둔 알람을 두 번 끄고 느지막이 일어났다. 바쁘다면 바쁘고 분주하다면 분주한 아침이었다. 샤워하고 나왔는데 그가 침대에서 안아달라며 팔을 벌렸다. 출근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생각하며 0.3초 정도 뜸 들이다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지?라고 생각하며 바로 그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알람이 울리고 나서도 한참 서로 껴안고 애정표현을 했지만 그래도 출근준비를 하면서도 그가 안아달라고 할 때 안아주는 것이 나의 우선순위였다. 그러고 보면 7시 50분쯤 일어나 8시 20분이 조금 넘어 샤워하고 옷을 골라 입고 출근을 하는데 그 짧은 와중에서도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어제 도착한 새 레인부츠를 어제는 귀찮다며 뜯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오늘은 하루에 설레고 새로운 일이 하나 필요하다면서 커터칼로 택배상자의 테이핑 부분을 죽 가르고 부츠가 담긴 커다란 상자를 열어 부츠 한쪽을 신어보고 막간의 패션쇼까지 한다.


남자친구에게 집을 나서기 전에 냉장고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다 먹어도 된다고 말하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는데도 회사에 여유 있게 도착할 수 있는 열차에 무사히 탑승했다.


평소 같았으면 어땠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나와 다시 침대에 엎드려 굳이 그때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주식창을 열어보고 단톡방들을 차례로 열어보며 시간을 전혀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허비하지 않았을까.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언제나 있고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늘 연인에게 집중했을까, 그리고 내 과거의 연인들은 내게 집중했을까 생각한다.


지난여름 평일에 휴가를 내고 그때 만나던 연인과 서울 근교 도시로 놀러 갔다. 오후에 북까페에 앉아있는데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으로 무엇인가를 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며, 그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오늘 월급날이라 급여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고, 중요한 일을 처리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책임감 있는 그를 선택한 내가 스스로에게 뿌듯해해야 한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이다.


나는 그 당시 그 일에 서운하거나 실망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을까. 현재를 온전히 누리고, 함께하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고 있는 그를 보며 그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을까.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나는 행복했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북카페가 좋다. 이런데 혼자 와서 여유 있게 시간 보내도 좋겠다. ‘


나와 마주 앉아 있는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면 그는 나를 사랑했을까 생각한다. 스스로 인생에 사랑할 여유와 시간을 주지 않았거나 나를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늘 부족하다고 느꼈을까 생각한다.


나의 연인은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 음식을 세팅해 놓고도 마주 앉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배가 고픈데, 당장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내게 집중할 시간이 있구나.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안정감으로 채워진다.


어쩌면 그는 눈앞의 연인에게 1순위로 집중할 수 있는 연애 천재일 뿐 아니라, 현재를 온전히 누리고 살아가는 인생 천재일지도 모르겠다. 행복하다는 표현을 늘 하는 그의 옆에 있으며, 나도 행복할 때마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행복할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로 허락하며 살아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자주 말할 수 있는 사람인가 싶다.


출근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그를 안아줄 수 있는 나는 누구를 닮아갔나 생각했다. 매일 쓰는 아침일기를 쭉 돌이켜 훑어보는데 지난주에 내가 쓴 글에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아침에 오빠가 먼저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아직 누워있는 내 옆에 누워 살갗을 맞대고 안아주고 키스해 주었다. ”


누군가의 확실한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이, 그리고 기대치 않은 순간에도 그것을 확인받으며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가치감과 자존감이 단단하게 채워진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순간 온전히, 아주 완전히 집중받아야 한다. 단지 이름을 불러줄 뿐만 아니라 눈을 맞추고 완전히 집중해서 마음을 표현하고 표현받아야 한다. 그래야 찰나의 순간이더라도 진짜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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