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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Jul 08. 2024

착하고 성실한 그와 매력적인 나

결혼하고 싶었는데 반대방향의 이야기만 들었던 썰

남자친구와 대학로의 한 포장마차 점집에 들어갔다. 사주에 관심이 많아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궁합을 봐보고 싶었는데 그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궁합을 의뢰했다.


전에도 만났던 연인들과도 궁합을 봐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과는 뭐든 신속하게 다양한 생각과 호기심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다.


그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한다. 내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초반에 내게 자주 하던 말이 "나 그렇게 착한 사람아니야" 였다. 지내다 보니 가끔 기분이 안 좋아지면 평소보다 조금 날 선 표현이 튀어나오긴 하지만, 그는 첫인상대로 나를 자세하게 관찰하고 깊게 배려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 관계와 우리의 일상에 성실했다.


나는 착하다고는 안 했다고 했다. 연애하기는 딱 좋은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감각적이고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고 한다. 공부도 잘 안 했을 것 같다고 한다. 벼락치기했을 것이라고 한다.


음... 난 학습에는 아주 성실한데, 늘 공부하고 수양하는 학자나 수도승 같은 스타일인데 그 말은 맞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공부 위주로 하고 시험은 벼락치기하기도 했으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내게 초반에 나쁜 여자인 것 같다고 했다. 잘해주지만 맞춰주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내 기준대로 할 것 같다고 했다.


내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사실 잘 맞춰주기도 한다. 내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면 굉장히 섬세하게 맞춰준다.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만, 한두 가지에서 연인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을 꾸준하게 해 준다.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궁합 봐주시는 분이 내게 결혼 늦게 하면 좋다는 얘기 많이 안 들었냐고 한다. 이미 일찍 결혼하거나 딱 적령기에 결혼하는 것은 지난 것 같은데 도대체 얼마나 늦게 해야 되는 건지 싶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예전 같으면 30대면 늦은 건데 지금은 늦게라면 40대라고 하셨다. 이 사람하고 올해나 늦어도 내년에 결혼하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점보러 들어가기 전에 어디 방위에 같이 살 집을 구하면 좋을지 이런 것을 물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보고 결혼을 늦게 하면 좋다고 하니까 그런 질문은 하지도 못했다.


남자친구에게는 여자가 많이 들어오지는 않더라도, 한 명이 들어와도 좋은 여자 들어온다고 했다. 결혼은 정말 좋은 여자와 한다고 했다. 그분은 그게 나라고는 말씀 안 하셨다.


우리는 서로 부족한 오행을 가지고 있어서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거의 좋은 이야기의 다였다.


어쨌든 남자친구는 사주에 튀는 것이 없고 무난 무난한 좋은 사주라고 했고, 나는 튀는 사주라고 했다. 연구대상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뭘 해도 열심히 하니까 하는 일 다 잘될 것이고 자수성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이 분은 나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뉘앙스로는 이야기를 안 했다.


그저 연애할 때 매력적이라고만 했다. 톡 쏘는 면도 있지만 이성이 끌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에 대해서는 주로 안 좋게 이야기를 해서 집에 가는 길에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 남자친구에게 “오빠는 좋은 여자 들어올 사주래. 오빠가 그게 나라고 생각하면 나인거지. ”라고 툭 던졌다.


그가 내게 얼마나 확신을 느끼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궁합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든 전혀 우리 관계에 작용하지 않을 자신감은 있었다.


그는 내게 전에도 “You are the one(나한텐 딱 네가 내가 찾던 그 사람이야). ”라고 이야기해 줬었다. 그는 그 좋은 여자가 나라고 확신한다면서 다시 이야기해 줬다.


사주가 영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지만, 나도 내 단점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고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주에 혹시 미래의 배우자에게 해가 될만한 내 모습이 있다면 그 점은 더 의식해서 보완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주에 대해서는 조금밖에 모르지만, 연애나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그가 나한테 맞는 사람인 것은 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채워줄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안다.


단점마저 비슷해서 서로 힘들 때도 있고 투닥거릴 때도 있지만 그만큼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일상 속의 작은 것들에서 천진난만하게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사주나 궁합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서로의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이 정도로 같은 것들을 좋아하고 삶에 있어 큰 틀의 가치관을 공유하고 성장환경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을 만났던 적이 없었다.


궁합을 봐서 굳이 좋은 얘기만 듣고 싶었다거나 들은 이야기를 참고해서 생각을 바꿀 요량은 아니었다. 이것도 하나의 no matter what(어쨌든 간에) 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주와 궁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서로에 대한 확신이 아주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고 역시 이 사람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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