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쉬고 싶어서 여름휴가로 템플스테이를 택했다. 5월에도 한 번 갈까 했었는데 생각보다 왕복 차비와 템플스테이 참가비가 만만치 않아서 포기했다. 그 정도 가격을 지불하고 갔다 올만한 가치가 있나 싶었다.
그때 마르코 오빠가 “템플스테이 같이 갈래?” 하고 물어봐서 절에서 왜 자고 오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공기 좋은 곳에서 하룻밤 자면 좋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막연히 “템플스테이 = 숙면”이라고 생각했다. 호텔이나 펜션, 리조트도 좋지만 절은 산속에 있고 고요하니까 잠을 더 푹 잘 잘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생각이 많고 예민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나는 숙면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투자하는 편이라 조금 불편해도 조용한 곳에서 숙면만 취할 수 있다면 웬만한 숙소보다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잠을 잘 잘 수 있다는 기대와 다른 이런저런 기대를 않고 남자친구와 함께 동해로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절에서는 2인 1실로 남녀 따로따로 각자의 일일 룸메이트와 함께 잠을 자야 했다.
처음에 남자친구가 나를 남자로 신청해서 절에서 전화가 왔다. 이름이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라 “OOO씨가 여자 아닌가요?” 라며 스님이 직접 전화를 주었다고 했다.
2인 1실이지만 절에는 고요한 것을 좋아하는 고요한 사람들만 주로 올 테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에서 각자 조용조용하게 잘 준비를 마치고 9시쯤이 되면 딱 이불 속에 들어가 숙면을 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오산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새벽 3시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있다가 겨우 한 시간 즈음 대충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바로 옆방 사람과 얇은 가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벽에 바짝 붙어 누워 자는데, 플라스틱 구기는 소리에 한참을 잠에 못 들었다. 방에서 봉지과자를 먹는 건지 짐을 꾸리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초예민한 나를 잠에 빠지게 할 그런 소리는 아니었다. 조금 조용해졌나 싶더니, 나와 1인용 요 두 개 정도 들어갈 사이를 두고 떨어져 누워있는 룸메이트의 경쾌한 코 고는 소리에 또다시 신경이 곤두섰다.
잠자긴 글렀구나 싶었다. 남자친구의 코 고는 소리가 그리워졌다. 익숙해진 건지 찐사랑인지 이제는 그 소리에는 조금 듣다 보면 잠에 들 수 있는데, 낯선 여자의 코 고는 소리는 도무지 마음이 평온해져 잠에 빠질 만큼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나만 잘 못 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옆에서는 저렇게 코 골면서 잘 자는데 뜬 눈으로 지새운 나를 보니, 예민한 사람만 고생이구나 싶었다.
절에서 코 고는 소리는 단지 잠잘 시간에만 들었던 것이 아니었다. 전날 저녁에 모여 누워서 바디스캐닝 명상을 하는데, 단체로 관광 오신 것 같은 그룹의 아저씨와 할아버지 그 사이의 분이 쎅쎅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코 고는 소리를 무릅쓰고 내 몸에 집중하느라 애를 써야 했다.
템플스테이에 왔다고 다를 것은 없었다. 고요한 사람들만 올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 중의 착각이었다.
어르신들의 동호회인지, 단체 관광느낌의 멤버 중 한 명인 할머니는 첫날 모두 둘러앉아 오리엔테이션을 듣는데 몇 번이고 돌아다니며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 앉았다. 이쪽은 너무 덥고 옮겼는데 또 너무 더워서 또 옮긴다고 했다. 남자친구와 나는 ADHD 할머니라며 명명했다.
둘째 날 스님과 마지막 차담을 하는데, 단체 관광 오신 할아버지 중 한 분은 스님께 묻지도 않은 템플스테이의 개선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좋은데, 방에 있는 샤워실 위치가 다른 쪽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님은 그동안 절에 한두 명의 사람이 와서 한두 마디의 이야기를 했겠냐고 했다.
그 할아버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 좋은데, 더 좋게 하면 좋으니까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도 지지 않았다. 자기가 어제 말했다시피 절에 왔으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할배는 마룻바닥의 나무가 썩을까 봐 그런 것이라고 했다. 스님은 썩으면 그냥 썩게 두라고 했다. 또다시 더 좋게 개선하면 좋으니까~, 라며 할배는 굽히지 않았고, 스님도 그렇게 좋은 것을 찾으면 호텔에 가고, 절에 왔으면 뭘 더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있다가 가는 게 좋다고 못 박았다.
절에서의 시간을 즐거웠다. 잠깐의 오후의 차담을 마치고 무릉계곡에 놀러가 시원하게 발 담그고 있는 것도 좋았고, 저녁 명상을 마치고 평상에 누워 별을 보다가, 절을 거닐며 서울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는 별을 보며 거니는 것도 좋았다.
스님이 이곳은 별이 잘 보이고 예쁘다고 했는데, 우리 말고는 아무도 밤에 별을 보지 않고 방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깨끗한 계곡물, 병풍 같은 바위, 산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나무가 울창한 산, 밤하늘의 별, 새벽에 물에 젖은 모래를 밟는 촉감, 남자친구와 같이 모래 위를 달리던 순간, 해가 떠오르기 전 엷은 빛이 바다를 비춰 오묘한 빛으로 물든 해변가, 몇 년 만에 보는 것인지 모르는 일출, 그리고 전날 밤까지 아웅다웅했는데, 남자친구와 절에서만큼은 싸우지 않고 보낸 하룻밤까지 내게 그저 주어진 것이 좋았고, 감사했다.
절에서 머물던 방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화장실 문 앞에 물이 고여있었고, 그 물에 벌레들이 죽어있었다. 벌레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어서 벌레도 전혀 싫지 않았다. 일주일 전 이 절에 다녀온 마르코 오빠가 여기는 과일도 안 나오고 다른 절에 비해 식사가 부실한 편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그 얘기를 듣고 갔어서 ‘생각보다 잘나오네. ‘라며 밥도 맛있게 먹고 왔다.
숙면을 취할 것이라고 기대했어서 잠을 잘 못 잔 것에만 다음 날 아침에 예민하고 짜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템플스테이를 다녀온 직후에는 템플스테이에 대해 ‘돈을 내고 불편함을 감수하러 가는 곳’이라고 정의 내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삶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 나를 보니, 템플스테이는 ’아무 기대 없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러 가는 곳‘이구나 싶다.
이런 마음이 없어질 때쯤 2~3달에 한 번씩 템플스테이를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주위의 것들,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더 관대해야 나 스스로에게도 더 관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그래서 그 주변에 있는 내가 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점을 바라보려 더 애쓰지 않아서 마음이 괴로웠던 것이구나 싶었다.
감사해야 행복하다는 말에 감사할 대상을 찾아 감사하는 것에만 치중했다. 그런데 주어진 것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평온함에 이르는 마음이구나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