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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센스 Aug 10. 2024

모든 고민이 사라진 것 같은 하룻밤

의미 없는 일은 없기 때문에 괜찮다

절간에서 하룻밤 잠을 청하고 있다. 마음속에 있는 당장 해야 할 일은 내일 새벽같이 일어나 해돋이를 보러 가는 일뿐이다.


4시쯤 일어나 바닷가에 가서 맨발로 걷고 떠오르는 해를 보고 아침을 먹은 후 스님과 함께 구천보 트랙킹을 간다고 한다.


평소 일요일 아침이면 남자친구와 12시쯤 침대에서 커피와 브런치를 배달시켜 먹고 tv 보며 뒹굴거리다가 오후 네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갈 수 있을까 말까인데 새벽 네시에 뭔가를 할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이 설렌다는 것에 감사한 밤이다.


그 설렘 때문에 그젯밤과 어제는 최악의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버렸다. 처음으로 템플스테이를 가고 하루 휴가를 보태 짧게라도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생각에 설레 정말 고생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미뤄서 내가 자초한 일이기도 했지만 휴가 전에 끝내려면 일정이 정말 빠듯한 일들이 있었는데, 못 쉬고 못 자가며 어떻게든 급한 일들은 끝냈다. 휴가를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해야 할 일들은 하는데 오히려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전날 밤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있던 남자친구가 새벽 한시쯤 되어서 혼잣말처럼 템플스테이 가기 귀찮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 바람에 기분 그래프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싸우고 싶지도 않고 화가 나는 정도의 일이 아니라서 “그만하자. ”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힘들게 고생했고, 내가 고생했다는 것을 너무 잘 아는 남자친구가 그렇게 말하니 맥이 다 풀렸다. 그리고 결국에는 잘 해결되었지만 그가 갑자기 실직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해서 둘 다 몇 주간 엄청 마음고생을 한 후였다.


순간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맞지만 당연히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구체적으로 설명도 해줬고 아주 가끔 말실수하기는 하지만 배려심 있고 뭐든 같이 하는 것에는 의욕 있는 사람이라서 그럭저럭 이해는 했다. 나 역시 이렇게 돌변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을 그가 제일 싫어하는데, 그가 혼자 산책 다녀오더니 스스로 어느 정도 풀고 나도 불안하게 하고 마음 아프게해서 미안하다고 해서 화해를 하고 잤다.


물론 당연히 여행을 떠나는 날에도 마음이 다 풀리지는 않았다.


그는 최선을 다해 맞춰주려고는 했는데, 나는 사소한 것들에도 화가 났고 표출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여행 첫날 하루종일 분위가 안 좋았다.


여행지에 도착해 저녁에 대게 사준다고 했는데도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사람들을 마주칠 수가 없다고 했더니 뭘 사다 줘서 숙소에서 간단히 먹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다.


한 바탕 또 싸운 후 밤에 나가 바닷가 산책로를 걷고 간단히 술 한잔 기울이면서야 귀찮다 사건에 대해서는 풀었다.


오늘 아침에도 소리 높이면서 시작했다. 나는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하냐고 했고, 그는 자기는 평소랑 똑같은데 네가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 진짜로 말투가 퉁명스럽게 들려서 그렇다고 했고 그는 왜 아니라는데 몰아가냐며 옥신각신했다.


이러지 말자며 갈등을 대충 매듭짓고 아침 산책을 가서 뼈가 있는 말장난을 치며 풀었다. 동해의 풍경이 풍경이고, 사람들의 인심이 인심인지라, 언제 싸우고 언제 기분이 그렇게 안 좋았냐는 듯 서로 사랑하며 새로운 곳들에서의 데이트를 하다가 절까지 오게 되었다.


저녁때 명상에 간단한 수행이 끝나고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스님이 사는 이야기나 나누자면서, 뭐가 힘드냐고 모두들 한 문장으로만 말해 보라고 하셨다.


내 차례가 왔는데 특별히 딱 한 가지 꼽아 말할 것은 없었다. 가장 진심인 것을 말하고 싶어서 잠시 생각하다가,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까 몸이 힘들다고 말했다.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감보다는 충분히 못 쉬고 충분히 못 자는 것에서 오는 피곤함과 몸이 보내는 여러 신호들이 힘든 것 같았다.


‘이렇게 등, 허리 아프고 입안이 헐어가면서 이 휴가를 떠나기 위해 내 할 일들을 시간 쪼개서 해냈는데, 귀찮다고?’ 라는 마음에 맥이 다 풀렸던 것이었다. 그 말이 배려심이 없는 말이긴 했지만, 평소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사람의 자질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다 내가 몸이 힘들다고 느끼니까 생기는 불만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몸이 힘들면 예민해지만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면 화가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남자친구에게 우리가 더 심하게 싸웠거나 오빠가 안 갔어도 나는 혼자라도 갔을 것이라고 했더니, 너는 그럴 사람이라고 그럴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리 바쁘거나 몸이 힘들어도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타협하지 않는다.


몸이 힘들어서 힘들다고 느끼면 내가 지금 하는 일들 중에서 어떤 것을 포기할까, 더 나아가 내가 정말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고 있는 일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런데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 이렇게까지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될 일도 그냥 내가 좋아서, 내게 의미가 있어서 하고 있었다.


스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도 우울증으로 스스로 삶을 끊기도 하는 사람들도 있는 한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이 신기해할 만한 일들을 즐겁게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속에서 늘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며 의욕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다.


대체로 의욕이 있는 나는 대체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의욕을 잃는 순간은 주로 타인으로 인해 생긴다. 타인이 의욕 없는 모습을 보일 때나, 타인이 나를 지적하고 비난할 때 생긴다.


그때도 내가 진짜 무엇을 하고 싶지, 나는 세상에 무엇을 기여하기로 마음먹었지, 나는 어떤 면에서 특이하고 특별하며 그래서 나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지, 어떻게 하면 지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내가 나를 다시 동기부여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자고 다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더 초점을 두면,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일을 대하든, 또는 그 일을 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든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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