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그는 내게 헤어지자고 했다. 싸우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헤어지자고 하면 믿지 않는데 그날도 물론 내 말에 그의 감정이 격해진 상태긴 했지만 이별을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서 믿었다. 나도 내심 준비 해 오던 이별을 속으로 받아들였다.
우리의 관계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밤늦은 시간에 헤어졌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렇게 하면 이제 우리가 헤어진 게 공식화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별을 덤덤히 받아들인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미 몇 달 전에 다 지워서 새로 찍은 사진 몇 장만 남겨져 있던 사진첩에서 그 몇 장을 마저 지웠다. 흔적을 다 없애 버리지 않으면 생각이 나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새벽 시간, 장식장 위에 올려져 있던 제주도에서 찍은 우리의 셀프 커플 촬영사진들과 냉장고에 붙어있는 인생네컷 사진들도 고이 모아 엎어 놓았다. 먼저 이별을 통보하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은데 헤어지자고 말한 건 그니까 죄책감마저 덜 수 있는 어쩌면 썩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연애의 끝은 결혼 아니면 이별이다. 아니, 연애의 지속, 동거, 결혼, 아니면 이별이다. 어쨌든 계속 만나거나 함께 살거나 이별하는 것이다. 결혼의 끝은 이혼, 아니면 사별이다. 어쨌든 모든 관계의 끝은 헤어지는 것이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에 헤어지든, 죽음이 갈라놓을 때 헤어지든.
그렇게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이별은 없다. 만나면서 괴로울지, 안 만나면서 괴로울지, 이별을 미뤄보고 지금 조금 덜 괴로울지, 나중을 위해 헤어져버리고 지금 좀 더 괴로울지, 아니면 나중을 위해 지금 좀 괴로운 걸 참아볼 지의 차이일 뿐이다. 알 수 없는 나중을 위해 답답하고 화나고 안 맞는, 내 존재의 일관성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순간들을 꿀꺽 삼키고, 잠 못 드는 밤을 지나 다시 두 다리 쭉 뻗고 꿀잠 잘 날까지 인내해 볼지, 나중에 후회하든 말든, 순간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일치시켜 눈 딱 감고 헤어져버릴지의 차이일 뿐이다.
그는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꺼내 우리의 추억을 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블록 장식품, 사실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가 좋아하는 모형자동차, 내가 뒤집어 놓은 사진들. 마음이 먼저 단단히 접힌다면 사실은 전혀 급하지 않은 일들을 세상에서 제일 급한 일처럼 굳이 내 눈앞에서 처리해 버린다.
한 방에 있던 그의 매트리스를 빼서 좁은 옷방에 욱여넣겠다며, 내 옷은 그 방에서 다 빼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난 당장 어떻게 빼냐며 안방에 놓을 옷장을 주문하고, 옷장이 오면 그때 빼겠다고 한다. 옷을 바닥에 두기는 절대 싫다며 옥신각신하다가 나는 결국 매트리스가 간신히 들어갈 공간만큼만 옷걸이채로 옷들을 빼서 다른 칸에 쑤셔 넣고, 그는 왕자행거의 다리와 다리 사이에 기어코 슈퍼싱글사이즈 매트리스를 놓고 만다.
금요일밤에 싸우지 않아 모처럼 사이좋은 토요일. 오후 내내 함께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새로 정주행 하기 시작한 드라마를 보다가 저녁을 먹고 나서 둘이 함께 협동해서 해야 하는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그가 오후에 티비를 보며 제안했던 일들이 마음에 걸려, 게임을 한참 하다가 내가 집중이 안되다며 꺼낸 걱정의 말에, 그가 헤어지자고 하며 시작된 사단이었다.
뭐가 됐든, 난 좋게 표현했는데 화가 난다고 대화도 회피해 버리고, 이런 회피만에도 지칠 만큼 지쳤는데, 이게 뭐라고 이별까지 통보해 버린 그. 이미 거기서 마음도 다 접혀버렸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미련을 조금 부리는 나. 옷방에 기어이 옮긴 매트리스 옆으로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가 옆으로 포개 눕고, 그의 말랑딴딴한 뱃살을 만지며 대화를 걸어본다.
이럴 때 확 뿌리치며 가라고 하지 않는 건 화가 풀린 신호인데… 그는 내게 달라질 수 있냐며 미안하다고 하라고 한다. ‘어라. 나도 마음 다 돌린 건 아닌데…’ 싶지만 일단 알겠다며 상황을 모면하려 해 본다. 싸우면서 했던 그의 만행들. 그리고 갈등과 부정적인 감정을 태하는 그의 태도. 내가 응당 받아야 될 사과도 받아낼 테지만, 어젯밤에는 이번에는 진짜 내가 미안하다고 할 일이 아니니 그냥 헤어져버려야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마음이 상한 그의 마음에 미안하다고 하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 쉬운 말로 마음을 풀어주기로 해본다.
일요일 오후, 그가 사고 싶은 게 있다며 가기로 했던 아웃렛을 가자며 씻고 함께 나선다. 집부터 먼저 원상복구 해놓으라고 했더니, 갔다 와서 자기가 다 하겠다고 한다. 아웃렛에서 걸으며, 그리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내 마음을 얘기하니 그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수용하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집에 돌아와 옷을 다시 정리하고 매트리스를 다시 옮기고 부서진 레고 블록을 다시 조립해 원래 있던 자리에 올려놓는 그.
이럴 건데 왜 그랬냐고 하니 이번엔 버릇을 고쳐주려고 헤어지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 건 통하지 않고 역효과만 난다고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크게 싸우고 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꺼내 서로의 뇌에 단어들을 박아버리고 나서야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평화로운 시간들 속에서 혼자 쌓여가는 걱정과 불만, 그리고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만남과 이별 그 사이에서 서성이게 되는 마음. 내가 나에게도 만족하지 못하고, 나도 내 가치관에 맞춰 매 순간 현명한 선택과 결정을 하지 못하는데, 상대방의 바람과 선택들은 얼마나 내 잣대로 마음대로 평가해 버리기 쉬운지, 그리고 결국 우리는 가치관이 달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싸우고 헤어지기로 해버리면 눈에 들어오는 그의 묵묵함과 희생의 흔적. 깨끗하게 치워놓은 싱크대와 우리를 위해 산 그가 산 수많은 가정용품들이 갑자기 시선을 조금씩 머무르게 한다. 당연하게 느끼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머릿속의 세상은 평화롭고 단조롭고 그 단조로움이 행복하게 느껴지는데, 실제 세상은 과장된 현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적이 있다. 내 기대치의 삶의 진폭보다 실제 삶의 진폭이 훨씬 커서 그렇다. 예상했던 것보다 행복은 더 크고 괴로움도 더 크다.
결혼은 삶을 더 밋밋하고 단조롭게 하기 위해 그래서 더 평안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함께 지내보기만 해 봐도 모든 게 더 과장된 현실이라는 느낌이 든다. 손하나 까딱 안 해도 배달음식이 도착해 있어 편하다 싶다가도, 이렇게 배달음식을 계속 먹으면 건강에도 안 좋고 우리가 지속가능하게 지금의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까 걱정에 사로잡혀 이런 사람과 함께 지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요리를 좋아하지만 만약에 내가 맨날 건강한 요리를 해야만 하는 삶이면 어떨까 하면 그건 그것대로 숨 막히고, 그가 그렇게 비싼 가정용품을 사지 않고 인색하게 굴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이왕 버는 돈에서 돈을 쓰는 거 그 자신의 취미나 바깥활동에 좀 덜 쓰고 가정을 위해 쓰는 건데 이게 더 좋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집착하는 건 평온함, 그리고 지속가능한 삶 두 가지인데 매일이 평온하기만 하면 지루해 미치겠다고 할지도 모르며, 그가 돈을 어떻게 쓰든 내가 지금처럼 벌고 지금처럼 쓴다면 사실 우리의 재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믿을 수만 있다면, 타인들의 삶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의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관계의 영원함을 바라거나 기대하지도 않고,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하고 생각보다 더 자주 기대나 예상보다 나를 더 위해주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냥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계속 만나면 만나는 대로, 뭔가 수가 틀려서 헤어지면 헤어지는 대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가면서 사는 게 내 삶의 답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일요일 밤. 다음 주 금요일에 또 싸우자며 잘 자라고 하는 단순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