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센스 Apr 28. 2023

돌아갈 순 없어요

There is no going back

모임에서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사람한테 내가 작가라고 먼저 말해주는 일이 종종 있다. 신기해서 알려주고 싶나 보다.


영어 스터디모임에서도 최근에 내 글을 읽은 동생이 새로운 사람들한테 내가 글 쓴다고 먼저 소개해주었다. “She’s a writer. ”나 “she writes. ”라고 말한다. Writer라는 말, 작가라는 말이 정말 좋다. 회사원보다 내 본질과 더 가까운 칭호가 생긴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은 작가라는 얘기를 들으면 나에게 뭐에 대해서 쓰냐고 묻는다.


나는 심리적인 문제(psychological issues)에 대해 쓴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큰 주제는 신경학적 문제나 생물학적 문제에 가깝지만 당장 말하려다 보니 그렇게 대답했다.


에세이와 자기계발에 관련된 글을 쓴다고 말해도 되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에세이라고 말했으면 어떤 것에 대한 에세이냐고 추가 질문을 받고 어차피 결국 같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주제를 숨기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까봐 ASD라는 명칭까지 처음부터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도 브런치 링크를 걸어놨고 실제로 만난 사람 중 내 글에 더 관심을 보이면 브런치 필명을 알려준다.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 쓰는 글이다.


심리적인 이슈라고 답하니 너무 개인적이지 않냐고 묻는다.

Isn’t it too personal?


난 이렇게 대답했다.


Yeah, but there is no going back.

맞아요, 하지만 돌아갈 순 없어요.


바로 튀어나온 답변이었다. 영어가 한국어보다 때로 생각을 즉시 명확하고 위트 있게 표현하기가 쉽다. 한국어를 영어보다 잘하지만 한국어의 정서와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의 내 성격 상 “아, 예 그렇죠. ”라고밖에 말을 못 했을 것이다.


“아, 예 그렇죠. ”와 “돌아갈 순 없어요. ”의 뉘앙스는 다르다.


영어를 말하는 나의 표현력과 성격이 더 좋다. 영어라는 언어의 정서는 생각을 좀 더 본질적이고 직설적이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준다.


“There is no going back. ”을 듣고 사람들은 웃는다. 팀원 한명은 오늘의 문장이라고 말하며 다시 짚어준다. “There is no going back. ”이라고 따라 하면서.


이미 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중 몇 명이 내 브런치와 내 글을 알고, 몇 개라도 읽었다. 글을 응원해 주고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돌이킬 수도 없고 돌아갈 생각도 없다. 이미 글을 쓰며 다른 에너지와 영향력으로 살아가는 삶을 즐기고 있다. 이 뉘앙스를 모두 담고 있는 말이 바로 “There’s no going back. “이다.


편하게 영어공부하러 모인 사람들이라 길게는 두어 달 전, 짧게는 몇 주전 영어의 정서대로 솔직하게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재밌고 솔직하게 여러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일터에서 이해관계로 엮인 사람들도 아니니 편안했다.


내 글의 주제가 자폐 스펙트럼이든 아스퍼거이든 나에게 다르게 대한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내 글을 읽고 나서 사람들이 좀 더 솔직하게 자기 얘기를 했던 것도 같다.


회사에서도 몇 명만 내 브런치를 알지만 브런치를 알게 된 이후에 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의 깊이가 훨씬 깊어졌다.


나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해 주고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이야기도 나에게만큼은 더 털어놓는다. 듣고 보면 별 것인 이야기는 없다. 그저 타인의 판단이 두려워 굳이 웬만한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진짜 자신의 본질에 가까운 취미나 취향에 관한 이야기 등이다.


나도 내 글을 읽는 사람 앞에서는 더 편하게 마스크를 벗고 행동한다. 사회적 상황에서 가만히 손을 못 두니까 그냥 자연스럽게 피젯팅(fidgeting)을 하고 내가 진짜로 얘기하고 싶은 소소한 에피소드도 이야기한다.


나한테 있었던 가장 흥미로웠던 일. 예를 들면 좋은 돌들을 모아놓은 장소에서 매끈한 작은 돌을 주워왔는데 손에 쥐고 만지작 거리면 안정감이 든다는 아주 중요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그날 하루 중 가장 본질적이고 의미 있었던 일인데 판단할까 봐 절친이나 독자들이 아닌 이상에야 하지 못했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것이 진짜 교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고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걱정 없이 할 수 있어야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사람이 치유될 수 있다고 믿는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 글을 주변 사람들이 읽어주기 시작하고 내 삶에 그런 변화들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


There is no going back.
매거진의 이전글 일기대신 브런치에 매일 발행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