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 이 Apr 18. 2023

어떤 택배

새하얀 종이 그리고  이야기

문 앞에 도착해 있던 택배 상자는 달력으로 상자를 싸고 노끈으로 동여맸다. 매듭은 바싹 조여서 만든 작디작은 리본이었다. 추정컨대 야무지고 꼼꼼한 사람이 보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고 생각됐다. 날짜 지난 달력이며 사용했던 노끈은 그런 연상을 하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택배와는 다른  고고한 분위기에 상자를 푸는 손길이 경건하다.


 간 고등어가 정체를 드러냈다.  선물의 값어치를 떠나 어째서 변함없이 고등어만을 보내는지 궁금해졌다.  시어머님 앞으로 온 선물이니 당신이 알고 있을 터였다. 형님 댁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김**님이 또 고등어를 보내셨어요.”

그러자 시어머님은 “에구, 그렇게 그만 보내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먹네,”라며 역정을 내셨다.

“누군데 그러세요? 해마다 보내시는 것 같던데.... 그것 두 고등어로만요.” 궁금해서 물었다.



                                                            





           어머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오래된 달력 같지만 그 뒷면처럼 새 하얀 이야기였다.


                                                                  






어머니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딸, 딸, 딸 이후 어렵게 아들을 낳고 바로 집을 장만하는 일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세상에서라고는 못하겠지만 동네 안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다.


그 행복한 중 한 날, 저녁반찬으로 고등어를 사가지고 오시는 길이었는데 사람들이 웅성 웅성 모여 있었다. 자연스레 다가간 어머님의 눈에는 세간을 바닥에 펼쳐 놓은 채,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낙과 어린 아들 셋 보였다. 재미난 구경을 하는 듯 마을 사람들이 주변에서 쑤군거리는 것이 싫으셔서 호통을 치고 해산을 시키셨다. 당시 어머니는 마을에서 그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니는  “어째서 이러고 있어요? 누가 쫓아냈어요?” 라며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낙에게 물으셨다.

하지만 그 아낙은 눈물만 훔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바깥양반은 어디 계세요?”라고 묻자 아낙은 눈을 똑바로 뜨고 고개를 저었다, “ 혹시 돌아가셨어요?”라고  물으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통곡을 시작했다. 내장까지 게워낼 것 같은 소리에 어머니의 마음도  아파왔다. 사연인즉슨 남편죽고 여자혼자 돈벌이 할 것 없는 시골이라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내 앞 뒤 볼 것 없이  네 모자를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 문간방을 비우라고 하셨다. 처음으로 자신의 방을 가지게 됐던 형님들은 수긍할 수 없었다. 게다가 깐깐한 시아버님도 가만히 계실 턱이 만무하고.... 당장 내보내라는 말에 어머닌 열흘간 식사와 대화를 마다하시며 시아버님의 무릎을 꿇게 만드셨다. 


그렇게 그들의 한 집살이는 10년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 아낙은  읍내에서 일을 해서 방세를 내기 시작했고, 착한 첫째 아들은 가족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다. 마침내 그 아들은 서울대 합격에 이어 사법고시를 패스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후 그들의 한 집살이는 시아버님의 서울 발령으로 인해 막을 내렸다.


가끔 찾아와 어머님께 인사를 드리던 판사님을 기억해 냈다. 바로 그 아낙의 첫째 아들이었다. 때론 드라마의 줄거리를 많이 닮아있는 어머님의 라떼 이야기를 들을 때면 눈앞에서 보는 듯 세세하기도 하다. 다음에 들어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는 대화내용까지 그대로 묘사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시다. 다만 이 이야기를 앞으로 99번쯤은 더 들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두렵다. 그래도 미소가 피어오른다.


궁금증이 하나 더 남았다.

“그런데요 어머니, 고등어 하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라고 물었다.

“내가 그날 고등어 사간 걸 구워서 저녁반찬으로 내줬어. 그런데 그 고등어를 먹으면서 눈물이 바가지로 쏟아지더래. 서럽고 고마워서.... 그래도 너무나 맛있어서 먹는 걸 멈출 수가 없더래. 아직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여적 그 짓이야. 이구!”

고등어상자를 바라보았다. 저토록 고급스러운 선물과 포장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옛날에는 평야로 유명한 김제에서 고등어를 먹으려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기꺼이 고등어를 구워서 내준 마음과 진심 어린 정을 잊지 않는 사람, 아니 영원히 간직하는 사람을 생각하니 뭉클해진다. 해마다 보내는 저 고등어는 고마운 사람을 잊지 않으려는 하나의 의식 같은 게 아닐까? 


                                                                              


                                                 어머니의 새하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어머니의 별명은 ‘오지랖퍼’다. 가족들이 어머니를 ‘오지랖퍼’라고 부르는 속내에는 분명히 부정적이 감정이 깔려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주변의 누구보다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해낸 용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어머니가 젊은 시절이었을 때는 남편의 말을 하늘로 생각하는 때였다. 자신의 뜻을 점철시키기 위해 단식을 선택하는 어머니의 결단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MBTI’의 소유자.

나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주변 반응이 부정적이면 설득해내지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런 용기와 끈기가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두 가지 모두를 선보이신 분이다. 


내게 엄격하신 어머니를 사랑하는 건 아직 노력이 더 필요한 일이지만 ‘존경’이라면 이미 진행 중이다. 

저 고등어 두 손은 아무래도 가져다 드려야 할 것 같다. 어머니는 고등어를 드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알 수는 없지만 좋은 일을 해서 되받는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 아들에게 받은 용돈을 끄집어내는 오랜 지인을 안타까워하며 “ 이 비린 것을 왜 자꾸 보낸다니? 저나 먹을 것이지.”하시며 비린 것을 맛있게 자실 것이다. 


스티로폼을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그런데 이 달력포장지는 쉽사리 구겨버리지 못하겠다. "감사합니다"라고 붓 펜으로 쓴 다섯글자가 마치 지난 세월에 답하는 편지 같아서다.

작가의 이전글 저녁 어스름을 걷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