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사랑하게 된 것은 코로나 때문이었다.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이 되면서 여름휴가는 내게 가장 중요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어떻게든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만들어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직장인이 된 첫 해에는 괌을 다녀왔고 두 번째 해에는 베트남을 다녀왔고 세 번째 해에는 쿠바를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코로나 시대가 도래하며 “지구촌”은 다시 먼 얘기가 됐다. 바이러스가 우리의 하늘길을 막았다. 21세기에 바이러스 때문에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이야. 심지어는 3년째!
2020년 여름. 쿠바에서의 여름휴가를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빼앗기고 나는 제주로 휴가를 갔다. 쿠바에서의 휴가를 함께 계획했던 라모와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의 시작. 우리는 큰 캐리어에 짐을 가득 싣고 괜히 여권도 챙겼다. 굳이 굳이 종이 탑승권도 발급받았다. 기분이라도 내자. 그래도 비행기 타는 게 어디냐. 하며 여름휴가를 시작했다.
돌하르방과 귤나무, 키가 크으으은 야자수와 HELLO JEJU가 제주 공항에 내린 우리를 맞이했다. 쿠바는 아니어도 야자수를 보니 제법 멀리 온 기분이 들었다. 한시가 바빴다. 제주에서의 휴가를 얼른 누려야 했다. 우리는 택시를 잡아 타고 동쪽의 조천읍으로 갔다. 첫 숙소가 있는 동네였다. 김택화 미술관이 있었고, 조용했고, 바다가 바로 근처에 있었고, 평화로웠다. 우리의 첫 번째 숙소는 친절한 사장님 가족이 거주하는 본채와 숙박객들이 살다 가는 별채 사이에 넓은 잔디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저녁에는 숙박객들에게만 열리는 소소한 와인바가 있는 것이 우리가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동네 어귀에 내린 우리는 잔뜩 들뜬 채 알 수 없는 노래를 지어 부르며 우리의 첫 집으로 걸어갔다. 아마 이런 노래였던 것 같다. “우-리— 제주에 왔지— 여름 휴가지— 넘!모! 신나지———“ 마당의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던 사장님이 우리를 맞아주셨다. 일몰이 시작될 쯔음의 저녁이었다. 우리는 마당으로 대충 짐을 들여놓고 우선 밥부터 먹자, 하면서 저희 저녁 먹으러 갈 건데 어디로 가야 될까요? 하고 사장님께 물었다. 흑돼지구이, 제주식 백반, 갈치조림 등의 메뉴를 소개해주셨다. 제주에 왔으니 아무렴, 흑돼지를 먼저 먹어야 했다.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이리가냐, 저리가냐, 횡설수설하고 있는 우리를 잠시 지켜보시던 친절하고 다정한 사장님은 아유 갑시다! 하시더니 우리를 덥석 차에 태워주셨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의 빽빽한 골목과는 다르게 여유 있게 간격을 둔 개성 있는 집들을 지나 드디어 바다가 나왔다. 우리는 육지 사람, 그것도 분지 도시 대구 사람답게 바다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우와악! 야아아아아! 바다다, 바다!!!! 둘 중 누가 먼저 호들갑을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켰던 것은 분명하다. 마치 바다를 처음 보는 양 아우성인 두 여자애가 재미있었던 사장님은 껄껄 웃으며 에잇, 제주에 온 기분 좀 제대로 내드려야겠다! 하면서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는 쪽으로 길을 돌려주셨다. 아- 함덕. 함덕은 내게 나중에 꽤나 뜻깊은 곳이 된다. 곧 함덕에 얽힌 에피소드를 써 오도록 하겠다.
하.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그 해방감, 설렘, 감동. 첫 해외여행이었던 파리에서 에펠탑을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과 버금갔다. 지긋지긋한 회색 일상을 내내 버티다가 마침내 시작된 오아시스 같은 여름휴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 해가 한 숨 꺾인 낙낙한 여름 저녁, 바다 냄새 섞인 미지근한 바람, 아무렇게나 질서 잡은 초록 식물들, 검은 돌, 하얀 모래, 에매랄드 바다, 발갛게 익은 동그란 해, 해에 물든 핑크빛 하늘. 아이처럼 신이 난 우리를 위해 속도를 줄여 천천히 운전하고 계신 사장님의 다정함. 나는 비행기를 타고 여기, 환상의 섬으로 오고 말았다.
나는 차창 밖으로 머리를 빼고 여름휴가의 시작을 흠뻑 음미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며 온 몸에 이 멋진 여름 공기를 잔뜩 집어넣었다. 그리고 외쳤다. “여기에 내가 있다니..! 내가!!!! 여기에!!!!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