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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Jun 10. 2021

[직장인의 하루] 당신은 갑인가요 을인가요

병인가요,정인가요

우리는 매 순간 갑과 을을 오고 간다.

인생에서, 회사에서, 모든 관계에서, 갑과 을 사이를 무한 반복한다.


나는 을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성을 본다


내가 승무원이었을 때 승객들이 나를 어떻게 대했던가.

내가 호텔에서 근무했을 때 고객들과 나의 관계는 어떠했었나.

내가 회사에서 대표직을 맡고 있을 때 나와 고객의 관계는 어떠했고 우리 회사에 서비스를 제공하던 아웃소싱 회사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무수히도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다. 갑과 을을 오가며 살아온 내 인생 속,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다.


회사 경영 시절 만난 고객 A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기업의 한국 사장. 그를 마주했다. 희끗한 흰머리에 수트를 풀 착장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처음 만난 나에게 약 5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사장님, 제가 비록 회사 대표이기는 하나 보시다시피 흰머리도 없고 한참 어린 데다 하물며 저는 을이라고요. 미팅 내내 그는 나에게 극존칭을 사용하며 앞으로의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무실을 떠나는 나를 문 밖까지 배웅을 해주며 또다시 허리를 굽혀 인사. 이후 우리 회사 직원이 실수를 저질러 불미스러운 주제로 다시 마주한 그는 여전히 침착했다. 큰 소리로 화를 내지도, 비난을 하지도 않았지만, 꽤나 오랜 시간 개선점에 대한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 미팅을 마치며 사무실을 떠나는 나에게 또다시 깍듯한 인사. 사장님, 한결같으시네요. 고객 클레임만 생각하고 왔지 50도 인사는 예상 못했습니다.

 

회사 경영 시절 만난 고객 B

갑질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의 본사 대회의실. 거대한 공간에 고객사의 부서장들을 비롯하여 주요 협력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중간 휴식시간에 부서장 중 한 명이 어느 협력사의 전무를 오라 손을 까딱까딱한다. 젊은 커트머리 여성인 부서장, 이미 우리 직원 몇 명을 울린 적이 있기에 내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그녀는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채로 앉아있고, 50은 족히 넘어 보이는 협력사의 전무는 그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있다. 무슨 연유인지 크게 노한 부서장은 협력사의 전무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언성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빽 소리를 질렀다. 대충 "왜 일을 이따구로 하느냐"는 말이었다. 부서장은 들고 있던 A4 용지를 전무 앞에 흩뿌렸다. 저 여성은 왜 여기서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인가. 저렇게 심각한 수준의 사회 부적응자도 대기업을 다니고 진급을 하고 팀을 운영하는구나. 그녀는 다른 이를 괴롭혔고, 무시하며 비꼬고 비아냥거렸다. 인신공격을 하고, 울며 힘들어하는 상대방을 앞에 두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었다. 그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을이어서,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을이 울어서, 자신이 권력에 우쭐해졌나 보다.

을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해, 자신의 모든 말이 옳고 넌 말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어떤 인성의 소유자인지는 알 수 있었다. 울고 있는 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던 그녀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그렇게 을을 짓밟고 의기양양한 모습이 얼마나 측은한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어린이집의 아동학대 뉴스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버린 정인이, 물고문을 한 이모, 여행가방에 아이를 가둬 고문을 한 계모, 읽으면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서 차마 글로도 읽을 수가 없는데 사람의 형상을 하고 어찌 힘없고 약한 자들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가.


엄연히 사회에서 만난 관계이기에 적절한 선과 존중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갑이라서 네가 을이라서 무례해도 괜찮다는 그런 구시대적인 발상은 도대체 언제 끝이 날것인가.


나는 남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속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를 대하는, 을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인격을 본다.


우리는 하늘 아래 모두 작고 미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우리는 생명체로써 모두 소중하고 위대하다. 갑이라서 위대한 것이 아니며, 을이라서 하찮은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타인을 하찮다 여길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가 있는 세상보다 갑을병정 없이 모든 이가 소중한 세상을 기대했는데, 오늘도 형편없는 기사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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