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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Jun 02. 2021

[직장인의 하루]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전쟁통에서 살아 나왔다.

온몸이 상처투성인 채로, 마음은 피범벅인 채로. 네 발로 기어 나왔다.



나는 중소기업의 대표다.

내 나이에 회사 대표에 억대 연봉이라니, 다들 나를 부러워한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고 치켜세운다. 아니라곤 하지 않는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허나 이쯤에서 사실관계를 바로잡아본다. 나는 사실 대표라기보다는 월급사장이다. 누군가는 바지사장이라고 표현하겠다. 뭐 그게 더 적절할지도. 월급을 받는 대표의 하루는 고되다. 겉보기에 너무나도 번지르르한, 그러나 사실은 처절하기 짝이 없는 나의 하루. 


회사의 창립자만큼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나에게 주어진 권한도 한정적이다. 그만큼 책임도 덜하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서울이라는 땅에서 살면서 내 집하나 없이 전세살이를 하는 데다 전세대출까지 가지고 있는 나는 안정적이고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다. 대출을 갚고 돈을 착실히 모아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내 집 마련에 성공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회사를 책임져야 하고, 잘 운영되게 하기 위해 나 자신을 바쳐야 했다. 월급사장 주제에 말이다. 권한은 매우 한정적이지만, 책임질 일은 매우 많다니 최악이 아닌가.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회사는 작은 사회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람 간의 문제들. 누가 누구를 욕을 해요, 누가 회사에 대해 뒷말이 많아요. 누구는 돈을 이렇게 버는데 나는 왜 월급이 이 모양인가요. 누구는 왜 인센티브 받고 나는 못 받나요. 한 명의 입에서 출발한 가볍기 그지없는 말 한마디는 사람들 사이를 떠돌다 거대한 바위덩이가 되어 내 앞에 툭 떨어진다.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사실인 양 모양새를 갖추고 직원들 사이를 떠돌았다니, 한두 번도 아니고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이런 인간관계의 추악한 민낯. 생글생글 잘 웃던 직원이 친했던 직원들의 험담을 하고 다닌 주동자였다는 것이, 앞에서는 울며 사과하고 돌아서며 씩 웃던 기괴한 모습들이, 이메일과 메신저에 난무하는 다른 직원에 대한 험담과 폄하들이, 이곳 작은 사회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난다. 남일에 크게 관심 없거니와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자를 모토로 삼고 사는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나 다양한 추한 모습들을 직면하고 이들을 중재하고 해결하면서 마음이 지치고 말았다. 몰라서 그렇지 나도 이렇게나 많은 욕을 먹고사는 거겠지. 모르는 게 약이다. 알아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는 게 참 괴롭다.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아니 없어, 시간 없다고. 있어도 없어.

실무진들의 업무량과 노고를 속속들이 알 턱이 없는 회사의 절대 권력자(=창립자)는 채용을 승인하지 않는다. 경쟁사들이 전문인력을 대거 채용하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앞날을 걱정할 수밖에. 간혹 어렵게 채용이 승인되더라도, 대기업도 아닌 중소기업에서의 채용은 늘 힘들다.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하며 충원을 기다리다 지친 직원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진다.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가장 무서운 말. 아 오늘 또 한 명이 퇴사를 하는구나. 당장 업무는 누가 어떻게 처리하지. 남은 이들에게 살인적인 업무량을 던져주고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을 수가 없기에 피가 마른다. 불안하고 초조하다. 속이 쓰려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단순 사무직이 아니기에 한 명이 빠지면 대체자가 필수 이건만, 다들 급하게 퇴사를 해버리고 남은 이들은 추가 업무를 떠안고 몸부림치다가 얼마 못가 또 퇴사를 한다. 다급해진 나는 회사에 크게 소리쳐본다.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예산을 승인해달라고. 회사는 답한다. 코로나19로 회사 상황이 좋지 않다고. 알바를 써보라고. 배꼽 잡고 웃어야 되나,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야 하나. 알바라니. 전문가를 스카우트 해와도 부족할 판에 알바라니. 위기 상황에서 투자를 택하는 쪽인 나의 경영방식과 안전을 택하는 쪽인 절대 권력자의 경영방식, 그 간극 속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대표님 잠시 시간 있으신가요"

또 뭔가. 또 누가 사고를 친 것인가.

반복되는 업무 실수로 고객이 크게 클레임을 했다 한다. 실무진 선에서 수습이 되지 못한 채로 이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문제의 이유도 해결책도 파악 못하는 어리숙한 직원은 힘들다며 마냥 운다. 울지 마라, 정말 울고 싶은 것은 나다. 고객과 미팅이 잡혔다. 미팅이란 말은 너무 근사하다. 그냥 회사 대표로 욕먹으러 가서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 날짜가 잡혔다. 어지간해서는 업무 실수도 하지 않고 자존심도 센 나는, 직원 실수를 대신해서 회사 대표로 욕을 먹는 것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며칠을 시름시름 앓다가 고객 앞에 선다. 어떤 고객은 내 면전에 소리를 질렀고, 감정 기복이 심한 어떤 고객은 분노에 목소리를 떨며 왜 이해를 못하냐며 나를 답답해하기도 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끝도 없이 펼쳐진 강변북로를 달리며 상처 난 자존심을 간신히 달래 본다. 나의 하루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아무도 모르겠지. 아무도 안 봤잖아.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남들을 속이고 나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온 지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다. 어둑해진 길을 터벅터벅 걸어 아이가 기다리는 집 앞에 도착했지만 큰일이다. 좀처럼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 둘, 셋, 이 문을 열면 웃는 거야.


그날의 오후가 선명하다. 

금요일, 오랜만에 휴가를 내어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발견한 이메일, 회사에서 일어난 중대한 사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저 바닥까지 떨어진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씹던 밥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상태로 나는 질색을 하다 급체를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였다. 심장이 제 마음대로 뛴다. 숨을 쉬기 어려웠다가 쿵쾅거렸다가, 공기가 희박했다가, 현기증이 났다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내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상담 진료를 받아보았다. 스트레스를 줄여보라는 열두 살도 할 수 있는 소리를 하는 의사 앞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어 서둘러 나오는 길에 대학병원을 예약했고 며칠간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하는 기계를 붙인 채로 생활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정말 내 심장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하니 이 회사와 내 일상이 원망스러웠다. 결과는 큰 이상 없음. 의사는 나에게 안정제를 처방해주었다. 심장이 요동치는 것 같을 때는 이것을 먹으라 했다. 작은 통에 담긴 알약, 그 반쪽자리 흰 알약이 나를 위로해준다. 괜찮다고, 천천히 숨 쉬라고. 네가 사람보다 낫구나. 그 이후로도 나는 아침에 이메일을 확인할 때면 오늘은 또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인지 두려워하며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는 증상이 생기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성공한 대표로서의 내 삶은 마치,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 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하는 공포영화와도 같았다. 나는 똑딱거리는 타이머 앞에서 손을 떨며 온갖 문제들을 해결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침몰하지 않도록 해야 했고, 거대한 댐에 난 구멍을 온몸으로 막으며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야 했었다. 회사는 전쟁터였고, 나는 최전방에서 온몸을 던져 싸웠다. 겁이 나고 걱정도 되고 아프면서도 마냥 용맹한 모습만을 보여줘야만 했다. 나의 표정과 태도가 직원들의 심리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늘 의연하고 침착해야 했다. 나의 측근은 늘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항상 침착하고 냉철하시냐고. 미안하지만 잘못 봤다. 난 전혀 침착하지 못했다. 한순간도 침착했던 적이 없었다. 침착한 표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늘 정답을 제시하는지 대단하시다며 놀라워했다. 난 놀라운 혜안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주말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답을 찾았고 그게 운 좋게 맞아왔을 뿐. 


알고 보면 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내성적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나라는 인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나에게 맞지 않는 갑옷을 입고 투사처럼 싸우면서 살았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라는 것은 참 무시무시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의 힘듦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더 잘 견딜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지만 나는 이내 깨닫는다.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 털어놓아본 적도 있지만, 넌 그런 것쯤은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지 않냐며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해버렸고 머쓱해진 나는 그 뒤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누군가 내 힘듦과 상처를 알아봐 주고 연고를 발라주려나 기대한 적도 있지만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내 상처는 그대로 말라 딱지가 되어 더 두껍게 굳어갔다. 딱지가 떨어진 곳에 남은 흉터는 영원히 내 몸에 남아 있을까?




퇴사하겠습니다.

 

긴 고민 끝에 갑옷을 벗었다. 내려놓고 나니 새삼 느껴진다. 갑옷이 이렇게나 무거웠다니. 토닥토닥하고 안아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다. 난 항상 씩씩하고 용맹한 멋진 대표였으니까. 그런 내게 토닥토닥은 어울리지 않을 것 아닌가. 나만이 나를 위로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참 고생이 많았고 잘 참고 잘 견뎠다고, 수고했다고.


내가 아닌 남들을 살피고 걱정하며 살아왔던 과거, 남들의 감정과 상태를 다독이다 상처 받은 내 마음은 모르는 척 눈감아야 했던 날들, 나 자신보다 회사와 월급을 우선으로 여기며 나를 땔감 삼아 하얗게 불태웠던 나날들은 이제 끝이 났다.


이제 눈과 목소리에서 힘을 빼고, 말랑말랑하게 살아보리라. 이제 내 마음속의 말을 들으며, 내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사람처럼 잘 살아보리라. 봄에 싱그러운 새싹을 보며 심호흡을 해보고, 여름에는 바다내음을 맡으며 드라이브를 해보며, 가을이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하고, 겨울이면 아이와 손잡고 밖으로 달려 나가 귀여운 눈사람도 만들어볼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다니. 잃어버린 나를 오랜만에 마주하니 어색하지만 기분이 좋아 자꾸 실없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더 이상 내일 아침이 두렵지 않겠지. 미소를 머금고 일어나는 아침이 기대된다.

우리의 아침은 두려워서는 안 된다. 아침이란 본래 찬란한 것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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