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특이한 엄마들도 많고 매스컴에 나올 만큼 비정상적인 엄마들도 있었지만 그건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이 다 우리 엄마 같은 줄 알았다.
나이가 들어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언젠가부터 엄마는 내가 본받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엄마가 보여줬던 엄마의 삶이, 삶에 대한 태도가, 가족에 대한 마음이 당연한 것만은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나도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의 모습이고 싶다.
엄마는 어린이였던 나를 존중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나를 "야"라고 부른 적이 없다. 엄한 목소리로 훈육도 받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면 기다란 자로 손바닥을 맞아본 적도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내 딸"이라고 불렀고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는 늘 훈육을 하고 나서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그랬다. 혼날 때 나오지 않던 눈물이 엄마가 안아주면 그때 봇물 터지듯 흘렀다. 나의 실수나 잘못에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의 감정이, 더 나은 딸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자식을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심하게 학대하는 부모들은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의 보통의 엄마들은 엄격함의 강도만 다를 뿐 다 비슷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어떤 부모는 어린 자식에게 열여덟이라는 욕을 했다 하고,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주먹을 사용했다고 한다. 아이라서, 아직 배울게 투성이라서 미성숙한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할진대, 그걸 백번이고 천 번이고 가르쳐야 할 자가 부모일진대, 욕과 주먹으로써 아이를 다스리다니. 아이가 평생 기억할 부모의 모습이 고작 그런 모습이라니. 부모들은 과연 떳떳한가. 아이의 등짝을 흠씬 때려주면 아이는 울면서 부모의 말을 듣겠지. 과연 만족스러운가.
엄마는 "자신"보다 "자식"이 우선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내가 시터에게 어린아이를 맡기고 편치 못한 마음에 울기도 많이 울고 지쳐가고 있을 때쯤 마지막 SOS를 했던 것이 엄마였다. 엄마는 내 전화 한 통에 황혼육아를 시작하기로 결심하셨다. 서울에서 4시간 떨어진 곳에 아빠랑 사시는 엄마는 월~금은 서울에서 손주를 봐주고 토~일은 고향에 내려가는 강행군을 시작했다. 일흔 넘은 아빠는 처음으로 세탁기 돌리는 방법을 배웠고 냉동실에 쌓인 곰국을 홀로 드시며 무료한 생활을 해야 했지만 내 부모님은 견고했다. 내 자식과 내 손주를 위한 것이라면 뭐든지 해주실 분들.
오랜만에 전화를 하면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손주의 안부를 먼저 묻고 딸과 사위의 안부를 묻는 엄마. 항상 자식이 먼저인 엄마는 멀리 사는 자식들 걱정할까 봐 대수술을 했을 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몇 년 후에 알게 된 엄마의 수술 이야기. 나 자신보다 자식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엄마에게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자세를 배운다.
지역 카페를 보다 보면 친정 엄마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글을 제법 많이 접한다. 손주를 봐달라는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거나, 봐주더라도 매일같이 힘들다고 짜증내고 화내는 엄마, 용돈을 챙겨주지 않았다고 우는 엄마 등등, 딸자식의 서운한 마음만큼이나 부모의 서운함도 왜 없으랴. 우리 엄마라고 힘들고 서운한 적 없었을까. 한 번을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이, 늘 평온한 표정으로 심적으로 나를 지원해주는 엄마, 내가 과연 엄마 같은 훌륭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엄마는 부드러운 손길로 항상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자다 깨 보면 엄마가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눈만 마주치면 안아주었다. "넌 소중하다"라고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엄마의 손길과 눈빛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안정감 속에서 자라면서 "난 사랑받고 존중받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을 겪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동굴 속에 숨어버리는 모습들을 보았다. 그 부모들은 아이를 무시하는 발언, 넌 그런 것도 못하니? 다른 친구들은 다 하는데 넌 왜 못해? 네가 그걸 할 수 있다고? 그건 됐고 이거나 해. 엄마가 시키는 일이나 잘하란 말이야! 등등 아이의 자신감을 짓밟고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 겉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들 중에서도 부모의 정서적 학대를 겪으며 자라는 아이가 많다한다. 아빠를 일찍 여읜 어려운 상황에서도 홀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의 엄마는 어린 시절 받았던 그 사랑을 기억하고 고스란히 나에게 주었다. 자식을 향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그 사랑을 먹고 자란 자식은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단단한 뿌리를 갖게 된다.
늘 자식에게 준 것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엄마지만, 나에게 이토록 단단한 뿌리를 주셨으니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신 것이 아닐는지. 엄마 같은 엄마가 되겠다는 어려운 숙제를 가지고 오늘도 내 아이의 얼굴을 사뿐히 어루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