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제법 먼 곳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한 나는 학교 근거리와 식사 제공이라는 장점을 갖은 하숙 생활을 하기로 했다. 막내딸을 타지 생활을 시켜야 한다며 근심이 가득했던 부모님은 학교 앞의 여러 하숙집 중 "내 딸처럼 잘 보살피겠다"라고 넉살 좋게 웃던 주인 아주머니를 만나 조금이나마 안심을 하며 계약을 하셨다.
이방인, 낯선 생활의 시작.
오래된 주택가 골목길에 내가 살고 있는 하숙집이 있다. 하숙집의 가운데 공간은 집주인이 사는 곳이자 하숙생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주방이 있는 곳, 우측은 여학생 3명이 사는 곳, 좌측은 남학생들이 사는 곳이다. 하숙생들은 늘 아침 8시경 주방에 모여 원형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다. 정겨운 사투리를 쓰는 주인 아주머니는 늘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하숙생을 맞이해준다. "어서 와~ 많이 먹어." 그러나 그다지 먹을 것이 많지 않은 식탁은 늘 단출하다.
2녀 중 막내인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고 남학생이 많은 학원 한번 다녀본 적이 없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내가 남학생들을 비롯하여 복학생 오빠들로 북적대는 원형 테이블에 앉아 어색한 아침식사를 할 용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늘 오전 10시 느지막이 불 꺼진 주방에 들어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자 앉아 아침 식사를 한다. 조용히 들어가, 밥과 국, 반찬 한두 가지를 꺼내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오는 것이 계획이다. 이게 무슨 꼴인지 내 모습이 우습다. 그냥 아무도 나를 보지 않고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밥을 먹고 싶을 뿐이다. 간혹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할 때면 "겨란 후라-이 해주까?"라며 계란 프라이를 한 개씩 해주시고는 한다.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사양하지만, 지글지글하며 요리된 따뜻한 계란 프라이가 그렇게 맛있다. 계란 프라이가 이렇게 맛있을 일인가.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하숙집 식탁 위에 놓이는 아주머니의 계란 프라이는 나에게 최고의 반찬이다.
하숙생들이 이른 저녁을 먹고 각자 방으로 돌아가면 집주인 가족의 저녁 시간이 시작된다. 간혹 늦은 시간 귀가하여 허기짐에 주방에 들어갔다가 가족들이 모여 삼겹살을 구워 먹는 모습을 보고 민망함에 뒷걸음쳐 나오기도 했다.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해왔던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낸 나인데, 그깟 삼겹살 냄새에 설움이 밀려온다. 친구도 미쳐 사귀지 못한 타지에서 도대체 누구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단 말인가. 못 먹는 설움이란 게 이런 것인가.
어느 날 주방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오늘은 계란이 없다며 물어보지도 않은 말에 혼잣말을 하며 서둘러 주방을 나간다. 외출이라도 하시나 보다. 주방에 혼자 남은 나의 시선이 우연히 머무른 냉장고 위, 그곳에 계란 두 판이 있다. 30개짜리 계란 두 판. 총 60개의 계란이 날 내려다보고 있다.
그때부터였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란 프라이를 할 때마다 여지없이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갓 대학생이 된 스무 살 어린 마음에 초라함과 서글픔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날카롭게 생채기를 내놨는지 지금까지도 따뜻한 계란 프라이를 볼 때면 그 날이 여지없이 떠오른다.
남들이 보면 얼마나 우스울까. 계란 프라이 하나에 트라우마라니.
마음속에 남은 아주 작은 상처는 나이가 들어서도 결코 아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니 도리어 더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늘도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상처 주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살아간다. 훌륭한 어른은 못되지만, 적어도 그렇게는 살아가고 있다. 후라이를 좋아하는 선량한 시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