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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Sep 02. 2021

스릴 넘치는 나의 하숙 생활

쭈구리의 하숙 생활

다행히도 이 순간 초라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기에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나의 과거를 이야기 함에 부끄러움은 없다.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순간들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시절 그 기억이 소중하고 애틋하기까지 하다.


나의 초라하고 쭈굴거렸던 애벌레 시절은 밀레니엄으로 떠들썩하던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앞 주택가에 자리 잡은 나의 하숙집. 나는 하숙집에서 두 명의 여자와 함께 생활을 한다. 작은 집안에 방이 세 개, 화장실이 한 개 자리하고 있다.


1번 방은 약 2.5평으로 가장 넓은 평수를 자랑한다. 근처 학교에서 근무하는 여선생님이 이곳에 살고 있으며, 이 집에서 가장 오래된 고참이기에 넓은 방을 사용하고 있다. 이 방도 단점은 있으니, 창은 달려있으나 옆집과 맡닿아 있어 해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 물론, 외부와 단절되고자 하는 이들, 아침잠을 늘어지게 자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상의 조건일 것이다.


2번 방은 우리 대학 4학년 언니가 살고 있다. 이 언니의 남자 친구는 꽤나 자주 방에 놀러 온다. 둘이 TV로 개그 프로를 보며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눈다.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외로운 하숙 생활을 하던 나에게는 TV조차 없었기에 배알이 뒤틀려 그들의 웃음소리가 좋게 들릴 리 만무했다. 낯설기 그지없는 외로움에 지친 나는 헤드셋을 끼고 Radio Head의 Creep을 들으며 그들의 웃음소리를 애써 모른 채 하려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3번 방은 내 방이다. 내가 처음 이 방을 보고,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충격이란. 화장실 옆에 붙은 작은 공간, 그곳에 흰 창호지가 붙은 미닫이 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닫이 문이라니.

미닫이 문이라니. 

미닫이 문이라니. 

그 문을 옆으로 열고 들어가니 길쭉한 골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살아야 할 방이란 말이지. 작고, 어두운 방을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이곳이 아니면 다른 곳에서의 독립은 어려울 거라는 걱정이 들어 부모님께 마음에 든다는 거짓말을 하고야 말았다.

어떻게 마음에 들겠는가. 어려서부터 제법 넓은 내 방을 꾸미고 살았던 나는 흰색과 네이비를 좋아했다. 흰 벽지에 흰 책상, 네이비 커튼을 드리운 내 방에는 전면 통창이 있어 늘 밝은 빛이 넘실댔다. 밝고 정돈되어 있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액자도 걸어둘 수 있었던 나만의 공간. 반면 하숙집의 방은 손쓸 곳이 없었다. 꾸밀만한 공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꾸미고 싶은 의지를 완전히 상실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곳은 어쩔 수 없는, 좁고, 어두운, 미닫이 문이 달린 방이란 말이다.

안전은 또 어떠한가. 미닫이 문은 잠금장치라고 해봤자 걸쇠가 전부다. 저 빈약하고 흔들거리는 걸쇠에 내 몸과 공간을 맡겨야 하다니. 미닫이 문의 창호지만 찢으면 열 수 있는(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실한 걸쇠가 마음에 걸렸던지 아버지는 근처 공업사에 가셔서 잠금장치를 하나 사와 문에 달아주셨다.


아니나 다를까, 보안에 취약하던 우리 하숙집에는 이상한 자들이 자주 접근했다. 집에 들어가니 빨래건조대 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뛰어나가지를 않나, 화장실 위 작은 창문으로 사람이 얼굴을 들이밀지를 않나. 하루는 자고 일어나니 미닫이 문이 안쪽으로 밀려들어와 살짝 열려 있었고, 아버지가 달아주신 잠금장치가 내 방문을 간신히 잡아주고 있었다. 저 잠금장치가 나를 지켜줬다는 생각을 하니 등골이 서늘했다. 시험기간 새벽녘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동네 골목길에 접어드는데 앞에 뒷짐을 지고 비틀비틀 걸어가던 아저씨 손에 들린 게 식칼이었던 것을 깨달은 순간, 달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굳어버렸던 밤. 대로변에 봉고차가 서서 운전자가 말을 걸길래 길을 물어보는 줄 알았건만 눈이 풀린 운전자가 나를 승합차에 태우려고 끌고 가던 날도 있었다. 약에 취한 건지 만취를 했는지 모를 그 운전자는 소리를 질러대는 나를 더 이상은 끌고 가지 못한 채 다시 차에 올라 사라졌고 나는 무슨 정신인지 모를 상태로 혼비백산하여 집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느꼈다. 세상 혼자 사는 거, 참 무섭구나. 무섭다고 전화하면,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속상하시고 걱정하실까. 무섭다고 전화할 남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처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 혼자 살아가는 거 쉽지 않구나. 이게 다 나의 고집과 신념 때문이기에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도 '나 외로워'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저 밝은 목소리로 안부를 전해야 했다.


이 작은 하숙방과, 이 주택가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 뒤 나는 월세살이를 하며 자취 생활을 시작했고 그 어두운 학교 앞 주택가를 떠나 신촌 번화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동네 변태들보다, 주정뱅이 대학생들이 훨씬 더 낫다고 여겼고, 불편한 한집 살이 보다 서로 모른 채 살아가는 독립된 세대가 더 편하다고 여겼기에 나는 주저 없이 하숙집을 떠났다.


안전과 보안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신경을 쓰게 된 것도 이때의 불쾌한 경험들 때문이다. 잘 때는 창문을 꼭꼭 잠그고 현관 안전고리를 꼭 걸어 잠근다. 안전장치만이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준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첫 아파트가 복도식이었는데, 주방이나 방의 창문으로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비쳤다. 하숙 시절 화장실 창문으로 머리를 스윽 내밀던 변태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라 복도식 아파트 생활은 늘 불안함이 가득했다. 밖에서 지켜볼 것 같고, 창문이 몰래 열릴 것 같고, 그런 생각에 주기적으로 악몽을 꾸기 일수였고, 복도식을 떠나 계단식 아파트에 이사하고 나서야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 악몽은 말끔히 사라졌다.


여학생의 하숙 생활은, 이처럼 외로웠고 어두웠고 무서웠다. 내가 선택한 나날들이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니, 참 어려웠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믿고 타지 생활을 하게 하셨으나 나는 절대 내 딸을 혼자 두지 않아야겠다고, 그 외로움과 무서움을 알기에 소중한 내 딸에게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하지 않으리라고, 내 자식에게 넘치는 사랑과 부족함 없는 삶을 주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2번 방의 언니가 남자 친구와 TV를 보며 웃을 때 차라리 귀를 막아버리던 나에게도 훗날 남자 친구가 생겼고 그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많이도 웃었다. 불현듯 대학시절의 외로움이 떠올랐지만 남자 친구의 손을 잡으며 안도를 했고, 그와 결혼을 하여 소중한 딸을 키우면서 소소하게 잘 살아간다. 내가 언제 그런 쭈굴이 생활을 했냐는 듯이, 따뜻하고 밝은 서재에서 글을 쓰며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도 대학가에서, 하숙집에서, 자취방에서, 반지하방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살아가고 있을 젊디 젊은 20대 청춘들에게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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