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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Sep 08. 2021

내 아이는 변호사로 키울 거야

어머니, 변호사는 과연 행복할까요


여기  변호사가 있다. 


어린 시절, 크게 될 사람이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영재 코스를 밟아왔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했다. 몸이 허약해 온갖 곳이 아파 몸에 좋다는 것은 다 먹고 자랐다. 그의 엄마는 매니저처럼 모든 일과에 동행했다. 학교 등하굣길과 학원 라이딩의 모든 코스를 함께했고,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그를 정성껏 뒷바라지했다. 공부에 쏟아부은 시간과 정성과 노력에 비해, 그의 성적은 그리 우수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타고난 유전자보다는 노력형 수재인 것 같다. 


 사실을 알기에 더욱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고액 과외도 받았지만, 기대했던 수능 점수는 자신과 부모님의 성에 차지 않았다. 재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두 번째 수능에서 일류대학을 들어갔고, 변호사가 되어 개업을 했다. 그의 부모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박 변호사"다.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를 칭할 때 "박 변호사"라 한다. 애지중지 키워서 결국 변호사가 된 자식이 얼마나 자랑스러우실까. 그러한 호칭이 십분 이해가 된다. 자식은 부모의 자랑거리 아니던가.   


변호사 명함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람. 

이 사람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자기중심"이다. 

매사에 만족함이 없다. 자기 자신이 너무 소중하므로, 자기 위주로 일처리가 되지 않거나 자기 위주로 주변인들이 배려해주지 않으면 몹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만 해왔던 그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요리도, 청소도, 심지어 자기 딸의 양육도 모두 부모님의 몫이다. 부모님을 공경할 줄도,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며, 자기 자식을 위해 정성을 쏟는 법도 모른다. 자신밖에 모르는 그런 변호사다. 


여기에 한술 더 뜬다. 

그는 심각하게 심약하다. 

대인관계에서 불편함을 겪는 그는 주변인들과 관계 형성에 익숙하지 않으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변호사로서 그는 매일이 두렵다고 한다. 법원에 가서 판사 앞에 설 때마다 긴장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의뢰인을 만날 때도 온갖 새로운 진상을 만나게 되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판사 앞에서 변론을 하기 싫고, 의뢰인을 대하기도 싫고, 그냥 서류 작업만 하고 싶다는 박 변호사. 



그는 어떤 사람일까.

멋진 직업을 갖고서도, 신형 BMW를 갖고서도,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편안한 인생을 살면서도 왜 불안하고 나약할까. 


여기에 그 답이 있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 학창 시절을 바쳤기에, 정작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이 되어줄 중요한 경험들을 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아보지도 못했고, 그들과 갈등을 겪고 슬기롭게 해결을 해본 적도 없기에 그저 사람이 두렵다. 


자신은 공부만 하고,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을 배려해주었기에, 인간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실천하지도 못한다. 남의 마음을 배려하는 법도,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법도 익숙지 않다. 


모든 종류의 경험이 부족하기에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자라나며 겪었어야 할, 성인이 되어 한번쯤은 헤치며 나갔어야 할 온갖 시련들을 정통으로 맞아본 적이 없기에, 스트레스 관리를 하지 못하고 늘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산다. 


난 그런 생각이 든다. 

그토록 정성껏 온 가족이 힘을 모으고 희생하여 키워낸 한 명의 변호사. 그렇게 만들어진 변호사 명함이 과연 얼마나 그 사람을 오랫동안 지탱해줄 수 있을까. 이렇게 심약한 심신으로 자신밖에 모른 채 살아가는 변호사는 과연 자신을 도와주던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오은영 박사가 말했다. 자식 양육의 최종 목표는 "독립"이라고.

충격적이었다.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 자식을 언제까지 끼고 살 수 없다. 이토록 어린 내 자식이고, 아직도 목욕을 시켜주고 밥을 먹여주지만, 스무 살이고 마흔 살이고 언제까지나 내가 끼고 살수는 없을터. 내 자식이 어떤 직업을 갖든지 간에, 기필코 자립심이 강하고, 마음이 건강하며, 강인한 뿌리를 가진 아이로 키워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 많은 부모들이 학업 로드맵을 세워두고 아이를 그 코스에 맞춰 넣는다.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아이를 위한 학업 로드맵이라니. 마치 박 변호사가 그랬듯, 이런 아이들은 하루에 4시간 동안 앉아서 자정이 될 때까지 공부를 한다. 소마에 다니고, 경시를 보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황소에 다니고, 과학고와 일류대를 거쳐 의사, 변호사, 판사 등 부모의 입맛에 맞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세팅되어 있다. 


박 변호사 역시 그러한 부모의 빅픽쳐 속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만을 하면서, 주변의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맞춰주는 것을 당연시하며 그렇게 자라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던져지는 직업과 사회라는 야생 속에서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사회 적응력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부모와 자식,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텐데, 그 마저도 하지 못한다. 


박 변호사는 나에게 실패한 수재의 표본이다.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친다. 

특히 자녀 교육에 사활을 거는 부모들 속에서 내가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방향을 잡는다. 

지금 당장 소마 프리미어 안 가면 어떤가. 온갖 학원의 탑반에 안 들어가면 어떤가. 


내 자식이 나이에 맞게, 아이답게, 놀이터에서 놀 권리를 찾아주는 것


친구들과 함께함 속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해보면서 단단한 자아를 만들어가게 도와주는 것


짧은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


모든 것에 당연함은 없으니 범사에 감사함을 느끼는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 


무엇이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


심신이 건강한 아이로 자라 어디서나 잘 살아나갈 수 있는 아이로 만들어주는 것


그렇게 멋지게 부모 품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내 양육의 목표다. 


저녁을 먹고 노을이 지는 지금 이 시간, 내 아이는 구몬수학을 풀다가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다. 콩알만 한 아이가 책상 앞에 앉아 덧셈을 한다. 졸리다고 침대에 가서 들어 눕지 않고 엎드려 잠깐 졸다가 다시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계속해보려고 한다. 


약속을 지키려는 모습, 끈기, 포기하지 않는 것, 어떻게든 해보려는 그 모습. 그거 하나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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