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Sunset Lounge Oct 25. 2021

연봉협상 시즌이 찾아왔다

답.정.너

예산은 정해져 있다. 인상률도 이미 정해져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가장 우수한 직원은 가장 많은 인상률을 받고, 가장 부족한 직원은 미미한 인상률을 받게 된다. 평균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인 직원은 매년 비슷한 인상률을 받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회사의 퍼포먼스 기반/능력제 연봉 인상이다. 인사고과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직원은 누가 들어도 놀랄만한 수준의 연봉 인상을 받고, 그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그저 주어진 일을 수행한 직원들은 매년 비슷한 인상률에 그치는 현상이 반복된다. 


올해 코로나로 비용 줄이기에 나선 본사는 리소스 예산마저도 가차 없이 줄였다. 최근 한국 커머스 시장의 눈부신 발전으로 쿠팡이며 카카오며 네이버며 할 것 없이 개발자를 엎고 모셔가는 마당에 이렇게 작고 귀여운 떡 하나를 주고 전 직원과 나눠먹으라고 한다. 그다지 좋지 못한 그룹사 재무 상황에서도 후하게 준 것임을 강조한다. 동결은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이 은혜 정말 감사합니다. 직원 모두 뛸 듯이 기뻐할 것 같습니다. 열심히 나눠먹어 보겠습니다.


이제 나는 이 떡 하나를 전 직원과 나눠먹기 위한 계획 수립에 돌입한다. 아무리 고심을 해봐도 누구에게도 만족스러울법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높은 인상률을 받아야 마땅한 직원에게조차 그 노력과 성과에 못 미치는 수준밖에 줄 수가 없다. 예상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과로 회사 발전에 기여한 직원들은 아마도 그들이 일 년 내내 고생해서 일한 후 연봉이 이것밖에 인상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하지 못했겠지. 돈이 충분치 못해 자식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하는 가난한 부모처럼, 나는 아끼는 직원들의 노력과 헌신에 충분히 보상해줄 수가 없음에 다시 한번 나의 한계를 느낀다.  


안 되겠다. 예산을 더 받아야겠다. 수일에 거쳐 우리 한국 지사의 올해 성장 계획과 내년 예상 매출을 근거로 리소스 예산을 늘려줄 것을 요구하는 공식 문서를 보냈다. 답은 그리 멀지 않아 도착했다. 

"불가능"


그럼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다. 내 연봉을 줄이고 이를 직원들에게 분배해야겠다. 

사장씩이나 되어서 예산 재량 없는 것도 답답한데, 이 회사 내에서 직원 급여를 흡족할 만큼 올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내 연봉을 삭감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라니. 참으로 고단하다. 어떻게든 직원을 위할 수 있는 길이 이것뿐이라는 사실을 제발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그 와중에 연봉 인상과 직결되어 있는 인사고과에서 직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퍼포먼스를 최상으로 기록한다. 물론,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고 연봉 인상이 적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평가 도구에 의해 객관적으로 성과가 평가되는 시스템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하나같이 최우수로 기록을 한다. 자신의 근면함을 평가하는 항목에 아침마다 지각을 하고 업무를 정시에 완료를 하지 못하는 직원도 자신을 최상으로 평가한다. 올 한 해 자신의 성과는 무엇인지 묻는 항목에 <열심히 일했다>라고 적고 자신을 최상으로 평가한다. 이토록 자신의 성과와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직원들이다. 난 다른 직원들 대비 성과가 없었으니, 월급이 조금만 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올해 역시 연봉 인상률이 낮다고 불만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내 연봉이 녹아있지만, 아무도 모를 것이고 누구도 감사해하지 않을 것이다.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이런 지질한 방법으로 보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를 오랜 기간 괴롭혔다. 


이제 내 연봉 삭감을 남편에게는 어떻게 설명할까. 회사 전체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서 임원들이 자체적으로 연봉 삭감에 동의했다 정도로 그럴싸하게 둘러댄다. 


경영에 있어서 위기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리소스 예산 감축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경영이 장기적으로 회사를 위한 길이며, 회사를 위한 길이 곧 직원들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현장에서 직원들과 부대끼며 힘든 순간들을 함께해온 나로서는 그들이 회사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그들의 가정사나 생활수준이 어떠한지도 잘 알고 있기에 더 많은 급여가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본사 정책>이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다. 


나는 최고경영자와 그룹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사람 중 하나였지만, 일 년 동안 속된 말로 피똥 싸며 일해준 직원들에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임금 동결을 해야 한다, 위기를 함께 하자"라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탑 매니지먼트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그들은 어떤 것을 내려놓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기에, 그리고 그들이 직원들을 위한 보상 계획을 세우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직원들에게 우리 모두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내자고 영혼 없는 소리를 할 자신이 없었다. 


최고경영자가 아닌 <하찮은 일개 사장>은 아끼는 직원들을 위한 결정 권한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고, 게다가 장담할 수 없는 말을 그럴싸하게 포장해가며 직원들을 무작정 버티게 하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본사의 리소스 예산 감축이라는 정책을 마주하고 내가 내렸던 판단과 결정들이 옳았는지 그른 것이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회사와 나는 결코 공통된 가치를 공유하지 못한다. 본사의 정책이, 회장님의 결정들이 나를 체하게 만들었다. 경영 공부를 그렇게 하고도 늘 직원들의 편에 서있었던 나는, 모든 것을 본사에서 컨트롤하고자 하는 이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사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내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면 그때는 제법 근사한 사장이 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신물 나는 본사 정책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