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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Dec 17. 2021

이모님이 왕이다

베이비시터를 모시고 사는 워킹맘 

손님이 왕이라는 소리는 왜 생겨났을까. 손님이 더할 수 없이 감사한 존재라서? 

나에게는 이모님이 왕이었다. 워킹맘에게는 아이를 봐주는 이모님이 딱 그러한 존재이다. 


출산 후 3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했던 나는 3개월 된 아기를 생판 모르는 이모님에게 맡겨야 했다. 좋은 분이기를, 정성으로 아이를 돌봐줄 분이기를, 행여 기사에 나오는 학대 같은 일은 발생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각종 베이비시터 구인 사이트를 통해 공고를 내고 여러 명의 시터분들을 면접 봤다. 회사 경영 경력이 10년도 훌쩍 넘어 그동안 회사 직원 면접 본 것만 수도 없었기에, 신기한 사람들 참으로 많이 만나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나였지만 베이비시터 면접은 완전히 다른 그림이었다. 


1. 어떤 분은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칭했다. 자신은 아이의 교육적인 부분만을 케어하므로, 분유병이며 아이 반찬이며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3개월 된 아기에게 무슨 교육을 시키려고 했던 것일까.


2. 어떤 분은 자신을 "이모님"이라고 칭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단기로 채용했던 이 분은 아이에게 "이모님 밥 먹을 테니까 너는 간식 먹어", "이모님이 이런 거 하지 말랬지?" 라며 5세 아이에게 스스로를 높였다. 


3. 어떤 분은 CCTV가 있는 것이 신경 쓰이니 없애달라고 했다. 무엇이 신경이 쓰이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으니 그건 꼭 봐야 한다고 했다. 


4. 어떤 분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냉장고 앞에 써둘 테니 그것을 구매해두라고 했다. 


그렇게 신기했던 면접을 마치고 다행히 좋은 이모님을 만나 오랜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5년간 봐주셨으니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그러다 보니 이모님이 언젠가 그만둘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극도의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이모님이 그만두지 못하도록 최대한 융숭한 대접을 해 드려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회사에서 조금이라도 야근을 하면, 이모님의 퇴근 시간이 늦어질까 하이힐을 신은 채로 내달려 집으로 들어왔다. 이모님이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 파라핀 치료기를 사드렸고, 허리가 아프다 하면 약과 허리 복대를 사드렸다. 휴가를 간다 하여 휴가비와 스카프를 선물했고, 아기를 보느라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하여 집에서 할 수 있는 스텝퍼를 구매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출산 후 3개월 만에 회사에 복귀해 늘 손가락과 발목이 시큰거리는 통증을 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집에 오면 즉시 아이를 봐야 했고 재워야 했기에 나는 파라핀을 할 시간조차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늘 야근에 절어있고 주말에는 에너지 고갈로 방전되어 있었기에 집에 놓인 스텝퍼를 밟아볼 기력도 없었다는 것을. 


나는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했지만, 이모님의 심신의 안정을 위해 온 신경을 쏟아부었고 눈치를 봤다.   


어느 날은 회사에서 직원 관리 이슈로 며칠 내 스트레스를 받다가, 집에 와보니 이모님이 "다른 친구들은 다 휴가를 가는데 나는 휴가가 없네, 김장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네, 요즘 손가락이 너무 아프네" 등등 나에게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말들을 쏟아놓길래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고 방에 가서 입 틀어막고 울었던 날도 있었다. 왜 다들 나한테 힘들다고 하는 걸까. 나는 힘들다 말할 곳도 없는데. 


다들 내 어깨 위에 올라앉아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나의 역할이 너무 많아서, 너무 버거워서, 나라는 인간이 펑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회사에서는 직원을 달래고 위로했고, 집에서는 이모님에게 쌍따봉을 날려가며 비위를 맞춰주었지만 정작 나는 내 마음은 모른척 했다. 

엄마는 슈퍼맨이 아니잖아


어느 날부터 이모님의 행동이 신경이 쓰였다. 인력 관리를 오래 해온 나는 상대방의 작은 행동으로도 심경의 변화를 상당히 높은 확률로 잘 맞추는 편이다. 이모님은 그만 두고 싶어 했다. 날씨가 좋으면 산으로 들로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나와 내 아이를 봐서 섣불리 그만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눈치를 채고 더 열심히 이모의 비위를 맞췄지만, 결국 이모님과의 작별은 찾아왔다. 


유치원생이던 아이는 유독 낯을 많이 가리기에 새로운 이모님으로 바뀌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이모님이 그만두면 우리 아이를 어떤 이모님에게 맡기게 될까, 그 이모님은 아이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줄까, 가슴 시린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결국 그 생각의 끝은 나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이었다. 


나는 휴직을 하거나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이모님을 빨리 구하지 못하면 회사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걱정이 슬그머니 들면서, '최대한 빨리 올 수 있는 이모님을 구해야 할까'라는 생각까지 했다. 최고의 이모님도 아니고 빨리 올 수 있는 사람으로 구하려고 했다니. 나는 정말 도른자인가. 이모님 구할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볼썽사납고 없어 보였다. 


새로운 이모님의 등장


새로운 이모님은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자칭 프로 베이비시터였다. 어느 날 그 <프로>가 아이에게 소리 높여 윽박지르는 것을 CCTV를 통해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아 집으로 달려가 해고를 했다. <프로>는 CCTV를 통해 소리까지 들리는 줄은 몰랐다고 했다. CCTV가 없어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지 의문이 갔다. 


두 번째 이모님은 초보 시터였다. 경험이 없지만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너무 착하신 분. 시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를 달랠 줄 몰랐고 모든 상황에 허둥지둥하기 일쑤였으며, 이모님의 허둥지둥 속에 아이는 세심한 케어를 받지 못했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만 착했던 그 이모님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안해하며 떠났다. 


이 어린아이가 낯선 아주머니들과 한 집에서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을까. 더 이상 아이에게 새로운 시터를 만나게 하는 것은 정서상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보루, 먼 지방에 사시는 나의 엄마에게 SOS를 했다.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 아이에게도 물론 좋았지만 더 좋은 것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물어봐준다. “밥은 먹었니?”

내 표정을 보더니 물어봐준다. “피곤해 보이네, 힘들었지?” 


아... 나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사람... 

그렇지. 이런 게 엄마지. 

곁에 있어주며 아이의 힘듦을 알아봐 주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런 존재가 엄마지. 


딸아. 

내 딸아. 엄마가 항상 네 곁에 있어줄게. 

너의 눈빛만으로 마음을 읽어주고 손 잡아줄게. 

햇살이 쏟아지면 나무 그늘이 되어주고, 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줄게. 마음이 지치면 언제든지 안길 수 있도록 바로 옆에 있어줄게. 


이모님에게 충성을 하며 이모님을 기쁘게 해 드렸고 행여 내가 이모님의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는 않을까 하며 언행을 조심했다. 이모님이 기뻐야 좋은 기분으로 아이를 잘 봐주실 거라고 믿었다. 하루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을 관리하고 사람과 관계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다. 이모님을 왕처럼 모시고 살았던 눈물 나는 워킹맘의 삶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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