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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et Lounge Apr 13. 2022

우리의 관계들은 모두 건강한가요?

바야흐로 3월, 새로운 학년이 되어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초등학생의 마음은 설레면서도 긴장된다. 이제 2학년이 된 내 아이는 내향형 성격에 거침없이 친구를 사귀기보다는 상황을 관찰하고 마음이 편해졌을 때 비로소 친구를 사귀고 밝게 뛰어놀 수 있는 아이다. 2학년에 올라가면서도 마찬가지였다. 3월 내내 주변만 관찰할 뿐 마음에 쏙 드는 친구를 찾지 못한 아이는 한동안 혼자 시간을 보냈다. 부쩍 소심 해진듯한 아이의 모습을 보던 나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 보석을 쥐어주며 말했다. 


"가까워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이 보석을 주면서 '너 보석 좋아하니? 이거 갖을래?'라고 물어봐" 

아이는 멋쩍게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의 가방에는 보석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이는 보석을 친구에게 주지 않았고, 여전히 혼자 시간을 보냈다.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해진 나는 물었다. "왜 친구한테 보석 안 줬어?" 그러자 아이가 대답한다. 

 "엄마, 보석을 준다고 해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관계>라는 것을 나보다 더 정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놀랐고,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의 일부를 아이에게 주입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언제부터 나의 것을 내어 주면서, 조건을 걸면서, 당근을 주면서, 미끼를 던지며 관계를 이어오기 시작했을까. 역시 그 시작은 직장 생활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회사를 운영하며 다수의 직원을 관리해왔고,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력 관리를 함과 동시에, 인력 이탈을 최소화하여 회사의 안정성과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회사라는 곳이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면서도, 경쟁이 치열하고 개인의 노하우가 곧 회사의 힘이 되는 이 시장 속에서 한 명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다양한 이유로 회사를 떠나고자 하는 이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었을까? 


면담을 하면서 그 직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표하고, 사내 인간관계에 의해 떠나고자 하는 직원에게는 해결 방법을 약속하고, 업무 불만족인 직원에게는 대안을 제시하고, 처우 불만족인 직원에게는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 간혹 지킬 수 있을지 100% 장담할 수 없는 공약을 걸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가며 회사와 인력을 지켜나갔다. 


조건이 있어야만 관계가 성립할 수 있었던 회사라는 곳.

그곳에서 나는 너무 오랜 세월을 회사 대표로 살아왔다보다. 이러한 관계의 끝이 늘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면서도, 사회에서 관계를 지켜나가기 위한 십수 년의 세월을 보내다 보니 나의 <관계 이론>은 곧 <조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성립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한번 깨닫는다. 

관계에 있어서 조금 더 담백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 생활을 했을 때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면 나의 심적 괴로움은 조금 덜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관계란 분명히 끝이 존재한다. 작게는 초등학교 교실부터 크게는 직장이라는 곳까지, 우리는 끝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지만, 어떤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지금 당장 쉬는 시간에 놀이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없더라도 억지로 나의 것을 내어주며 친구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를 발견하고 서서히 우정을 단단히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내 아이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에 있어서도, 우리 관계에는 조건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솔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나의 기분을 맞춰주지 못했다고> 너무도 쉽게 짜증을 내고 마음에 상처를 줄 것을 알면서도 모진 말을 내뱉지는 않은지. <나에게 이익을 주고 나의 모든 편의를 들어주었을 때> 비로소 평온해지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정말 조건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지.  


지금 당장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내 주변 모든 직원들이 나보다 더 인정받고 더 나은 처우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실에 온통 잠식되어 귀한 자존감을 짓밟지 말고, 조금도 구부러짐 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꾸준히 한발 한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나를 내어주지 않더라도, 보기 좋은 선물로 환심을 사지 않더라도, 나는 참 좋은 사람이고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는 아이 손에 보석을 쥐어주는 대신, 바로 이 사실을 아이에게 알려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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