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주부생활
우리 가족 중 나에게만 찾아온 코로나. 양성을 확인한 순간 안방에 격리가 되었고, 남편은 일주일간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예고 없는 격리였지만, 아이는 아빠와 애착형성이 잘 되어 있기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남편 역시 아이를 키워온 9년 동안 처음으로 경험하는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7일"을 크게 염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주 양육자의 역할은 보기보다 많다. 밥을 차려 먹이고, 간식을 챙기고, 시간에 맞춰 영양제를 챙겨 먹이고, 숙제를 시키고, 공부를 시키고, 채점을 해주고, 아이의 수준에 맞게 오답을 설명해주고, 책을 읽어주고, 목욕을 시키고, 고민 상담을 해주는 등 매일매일 반복되는 "돌봄"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남편은 매끼마다 열심히 아이 밥과 격리자인 내 밥을 차려주며 고군분투했다. 요리가 수준급인 남편이지만, 매일 삼시 세 끼를 매번 다른 식단으로 차려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회사를 다니며 바쁜 일상을 보내던 그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일주일간 집에서 아이와 무료한 일상을 보내며, 끝없이 요리와 설거지를 반복해야 했을 때의 그 고단함이 어떠했을지... 나는 코로나로 몸져누워 있으면서도 아이가 아닌 남편 걱정을 먼저 했다.
그렇게 5일째 돌밥돌밥(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을 반복하던 그가 마침내 울화가 터지고 말았다. 나를 위해 정성껏 차려준 밥을 내가 남겼고, 아이를 위해 굴비를 정성껏 구워 살까지 발라줬지만 아이가 굴비를 남겼다. 남편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남겼던 것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서운함인지, 실망인지, 정확한 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이 크게 나쁘다는 것은 아이도, 나도, 잘 알 수 있었다.
아빠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훈계를 들은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울었다. 지금껏 밥을 잘 안 먹어 나에게 혼났던 적도 많고, 눈물을 찔끔 흘린 적도 많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훈계를 한 대상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빠였기 때문이다.
아이는 그 후로 2주 동안 아빠의 눈을 잘 쳐다보지 못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아빠 품에 안겨 좋아하던 아이는 아빠에게 안기지 못했고, 손을 잡는 것도 어려워했다.
아빠는 그날 훈육을 했던 것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아이의 마음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대변하여 아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빠가 그때 왜 속이 상했는지 여러 차례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설명을 해주면 아이가 수긍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혼났다고 삐져버린 딸"과 같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야, 우리가 친구들이랑 놀 때도 다툴 때가 있지만 친구가 사과하면 용서해주고 이해해주지? 그런데 아빠는 우리 가족이잖아. 정말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사과를 받아줘야겠지?
"엄마, 나는 친구가 실수하고 사과하면 언제든지 용서해줄 수 있어. 그런데 가족은 안돼. 아빠는 안돼. 가족끼리는 그러면 안 되잖아"
라고 말하는 아이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그렇다. 네가 맞다.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 가족은 나를 가장 잘 아니까,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마음껏 감정을 내보인다. 가끔은 괜한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나의 문제를 가족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어디선가 얻어온 내 마음속 스트레스와 화를 분풀이 삼아 가족에게 던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에게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남들에게는 실망하고, 서운해하기도 하고, 억울하면 따지기도 하고, 화가 나면 화도 내면서 내 자신을 지켜나가야 하는 거겠지만,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자상한 울타리 속에서 서로를 아끼고 이해하며 보듬어줘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가족이란 이토록 소중한 것인데, 어른이 된 우리는 왜 그것을 잊고 살게 되는 것일까.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릴 때에도 몰랐던 것을 아이가 알려준다. 아이가 기대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그것을 지켜주는 것이 또 하나의 삶의 목표가 된다.
[번외편]
남편이 정성껏 차려준 음식들. 이렇게 정성을 쏟아부었으니 내가 밥을 남긴 것에 대해 화가 날만도 하다.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봤다면 인후통으로 인한 밥 삼킬 때의 고통을 이해해줬겠지만 남편은 알리가 없다. 나라면 "얼마나 아프면 밥 한술도 못먹었을까"라고 안쓰럽게 생각했을텐데 남편은 밥을 남겼다고 아파 죽겠는 사람에게 성을 내니 나도 서운함이 차올라 발끈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감사함과 보살핌보다는 서로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상처를 주고 받는다. 이렇게 가족에게 상처를 내며 살다니, 부끄러워진다. 정성스럽게 밥을 차려주던 남편의 예쁜 마음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남편도 내가 좀 남기더라도 코로나 잘 이겨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주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 그거면 충분한거다. 서운함은 뒤로하고, 감사함을 우선 바라보자. 우리 집에서 가장 마음 깊은 9세 어린이 덕분에 오늘도 사랑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