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등 아주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하면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생각은 늘 한결같았다. 퇴직으로 인하여 이제 시간 부자가 되었다. 뭘 하고 시간을 보내나 가 아니라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하루가 훅하고 가버린다. 뭘하고 싶은지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지워가며 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 줄줄이 사탕으로 엮어져 있어 그날그날의 상황 따라 요것조것 꺼내가며 넘실거리는 시간의 풍요로움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내가 시간을 무엇으로 보내나 보니 주로 호작질이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하셨던 말 -호작질 그만해-.애가 호작질을하고 나면 엄마에게는 그 엉망의 결과물들을 치우고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생겨난다. 안 그래도 집안일이 지천인데 너까지 그러지 마라는 엄마의 호소. 그러다 다 자라 밥벌이에 몰두하는 동안은 호작질이 멈추어 버렸고 호작질의 즐거움도 잊어버렸다
최근 "이다의 길드로잉" 수업에 가서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게 되는 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린 것이 무엇이든 내 그림을 사랑하게 하는 마음을 배워왔다. 하메가 "니가 그린 그림은 세상에 하나뿐이니 그것으로 좋지 않아"라며 또 호작질을 부추겨 준다.고맙구로 ㅋㅋ.
호작질 수준이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뭔가 많이 생겼다. 너무 너저분하지 않도록 정리하다가 개우지(나는 지우개를 이렇게 부름)가 정착할 자리가 없어돌아다니다가 가끔 숨어버리더라. 미술도구통에 개우지통을 하나 달아볼까 하고 호작질을 시작했다. 매우 진지하게 두어 번의 실패를 거쳐 개우지통을 완성해서 미술도구통에 달았다.심지어 이동식이다. 나의 호작질에 "공작"이 더 해진 경이로운 순간이다 캬~~오!!! 다양한 호작질 좋아 ㅋㅋ.
이름을 적어주다 잘못 적었다. 까칠함이 본캐였던 시절이었다면 아마도 구겨서 버렸을 것인데 집모양으로 대강 수정을 하고 마무리하는 이 "대충의 미덕"을 실천하는 내가 참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내가 어린이였던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이 아이는 말 수가 적고 무엇을 할 때 입을 꼭 다물고 해요 집중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엄마에게 전한 그 말이 이런 호작질 할 때면 생각나곤 한다. 작업물의 결과에 마음 쓰지 않고 그 과정에 몰입하고 즐거워하는 것. 호작질의 본질인 것 같다.
며칠 전 그림일기에는 병에 있는 라벨을 그리고 싶었는데 아직 그것을 유사하게라도 그릴 자신이 없어 어쩌지 하다가 ㅎㅎ 그래 오려 붙이자 하고 아주 아주 정성스레 라벨을 떼어내어 일기장에 붙였다. 그 라벨을 떼어내는 순간 행여 찢어질까 봐손에 힘 조절을 위해 저절로 숨도 고르게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경험하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정성을 들임?? 크크큭 혼자 웃었다.